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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9] 단종법의 시행




자본가들의 지원 속에 우생학기록보관소와 미국우생학회의 활동이 광범위한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하면서 미국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우생학 법률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법률들로는 우선 우생학적 원칙과 인종차별에 근거한 이민제한법을 들 수 있습니다.

 

1921년에 제정된 「존슨법(Johnson Act)」은 1910년의 인구조사를 기준으로 당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을 출생 국가별로 구분하여 각 국적별 인구의 3%까지만 이민을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존슨법」은 인구조사 기준이 1910년이었기 때문에 이미 1880년대부터 유입된 남동유럽인들에게는 강력한 제한을 가할 수가 없었지요.1) 이러한 이유로 1924년에 기준이 더욱 강화된 「존슨-리드법(Johnson-Reed Act)」이 새롭게 제정됩니다. 이 법은 1890년의 인구조사를 기준으로 각 국적별 인구의 2%까지만 이민을 허용했고, 이로 인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계와 남동유럽 국가 국민들의 이민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미국에서는 약 30개주에서 우생학적인 혼인법(marriage law)이 새롭게 제정되거나 종래의 법이 우생학적으로 개정되었습니다. 예컨대 1905년에 제정된 인디애나주의 혼인법은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 유전적 질병이 있는 자, 습관성 알코올중독자의 혼인 금지를 구체적으로 명문화하였으며, 다른 주의 혼인법들도 발달장애인이나 정신장애인의 결혼을 무효화하거나 다양한 형태의 부적자에 대한 혼인을 제한하는 조항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2)

 

그러나 미국의 우생학 법률 중 가장 악명이 높은 것은 무엇보다도 단종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단종법은 주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발달장애인과 정신장애인을 비롯한 장애인, 유전성 질환자, 성범죄자와 성매매여성, 강력범죄자, 알코올중독자, 부랑자들, 심지어 어떤 주는 흑인과 아메리카 선주민들까지도 그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미국단종법통과시킨 주 지도

▲1935년 1월 1일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단종법을 통과시킨 28개 주(빗금)와 통과 예정인 7개 주(검은 색)를 보여주는 지도




미국에서는 이미 1890년대 말 캔자스주립정신박약아시설(Kansas State Institution for Feeble-Minded Children)과 인디애나주립소년원(Indiana State Reformatory)에서 단종수술이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며, 최초의 공식적인 단종법은 1907년 인디애나주에서 통과되었습니다. 1935년이 되면 28개 주에서 이러한 단종법이 제정되고 7개 주에서는 입법 발의 후 의회 통과를 기다리는 상황으로 발전하였으며, 특히 미연방대법원이 단종법의 합헌성을 인정한 1927년의 벅 대 벨(Buck vs. Bell) 사건 판결은 단종수술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캐리 벅(Carrie Buck)은 버지니아주 샬러츠빌(Charlottesville) 태생으로, 지적장애를 지니고 있는 그녀의 어머니가 린치버그(Lynchburg)에 있는 시설에 수용됨에 따라 양부모 밑에서 자라다가 17세 때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녀는 조카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양부모는 출산한 아이를 빼앗고 그녀를 어머니가 있는 시설로 보냈습니다. 당시 존 벨(John Bell)이 원장으로 있던 시설 측은 1924년에 제정된 버지니아주의 단종법에 의거하여 벅에게 단종수술을 시행했고, 이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으로 옮겨갔습니다.

 

미연방대법원은 버지니아주의 법률이 다수의 안전과 복지를 추구하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지 않고 “퇴보한 후손들이 범죄를 저지르도록 기다리거나 그들이 저능함 때문에 굶어죽도록 놓아두는 대신에, 명백하게 부적자인 이들이 그 종을 잇지 않도록 사회가 막는 것이 전 세계를 위해 유익한 일이다. 강제접종을 유지하려는 원칙은 나팔관을 잘라내는 데에도 적용 가능하다. 저능아는 3대로 족하다.”며 시설 측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더군다나 이 판결문을 작성한 이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한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무려 173건의 소수의견을 내며 자유와 인권의 수호자로 이름을 날린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 Jr.) 대법관이었습니다.3)

 

이처럼 단종수술이 국가의 공인된 정책으로 확립되고 그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미국에서는 1974년 단종법이 모두 폐지될 때까지 공식적으로만 6만 5천명 이상이 강제로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종수술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단종수술 정책은 전 세계적인 단종법의 제정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1930년대 나치의 우생학 운동과도 긴밀히 연결되었습니다. 대븐포트는 하버드대학교의 300주년 기념일에 독일의 우생학자들을 초청하였으며, 로플린은 유전적 순수성을 보존하는 활동을 한다는 공로로 1936년에 하이델베르크대학교로부터 명예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28년 설립된 인간개량재단(Human Betterment Foundation)의 이사장 폴 포페노(Paul Popenoe)는 베를린대학교 교수였던 프리츠 렌츠(Fritz Lenz)와 함께 양국의 우생학 성과를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였지요. 이 뿐만이 아닙니다. 록펠러재단은 1920년대부터 독일의 주요 연구소들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하여 독일의 우생학 연구를 발전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합니다.

 

히틀러 자신 또한 1920년대 중반에 쓴 자서전 『나의 투쟁(Mein Kampf)』에서 미국의 인종차별주의 정책들을 찬양하고 단종법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바 있는데요, 그의 유대인 강제 수용과 집단학살 정책은 미국이 아메리카 선주민을 다룬 방식에서 영감을 얻은 바가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이 독일의 우생학과 유대인 집단학살의 기원이라고 주장을 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입니다.4) 그럼 다음 글에서는 독일에서 인종위생학(racial hygiene)이라는 이름아래 우생학 정책이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실행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각주 1) 김호연,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 176쪽.

각주 2) 같은 책, 177~178쪽.

각주 3) 김두식, 『불편해도 괜찮아』, 창비, 2010, 139쪽.

각주 4) 김택균(Beilang), 「우생학: 순수와 우월을 지향하는 근대의 폭력(2)」, 『수유너머 Weekly』 106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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