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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6]

19세기 말 영국 시대정신 ‘다윈주의’





19세기 말과 20세기로의 전환기는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영국에게 있어 상당한 혼란과 위기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경제에서 영국이 자치했던 독점적인 지위는 1870년대부터 독일 제국을 비롯한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이 성장함에 따라 위협을 받았고, 산업혁명 이후 물질적 번영과 성장을 통한 사회적 진보를 낙관했던 분위기는 1873년부터 1896년까지 20년 이상 지속되었던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882년에 옥스퍼드 사전에 처음으로 ‘실업(unemployment)’이라는 용어가 등장할 만큼 경제적 침체에 따른 대규모 실업이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되었고, 이에 따른 도시 빈민과 범죄의 증가 또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보어전쟁(Boer War)1)을 위해 모집된 하층계급 출신 신병들의 열악한 신체적 조건과 영국의 잇따른 패배는 국민체위(國民體位, national physique)의 저하와 인종적 퇴보에 관한 우려를 확산시켰으며, 중산층에서의 출산율 감소 또한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생존경쟁(struggle for existence)에 의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의 이론을 정식화한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이 1859년에 출간된 이후, 영국에서는 인간 사회를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이라는 진화론적 관점에 의거해 설명하려는 이론들, 즉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가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그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은 물론 『생물학의 원리(Principles of Biology)』라는 책에서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윈 자신 또한 『종의 기원』 5판(1869)에서부터는 이러한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자연선택이라는 용어와 병기해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며, 생존경쟁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인구론(An 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에서 차용해 온 것이기도 합니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서 “세계의 모든 생물이 높은 기하급수적 비율로 증식하는 결과 일어나는 ‘생존경쟁’을 다루려 한다. 이는 맬서스의 원리를 모든 동식물계에 적용한 것이다.”라고 직접 언급을 하였으며, 말년에 쓴 자서전에서도 “연구를 시작한 지 15개월 후인 1838년 10월 우연히 접한 맬서스의 『인구론』으로부터 계속된 장기간의 동물과 식물의 습성에 관한 연구를 통해 모든 곳에서 생존경쟁이 일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서 자신의 자연선택설이 성립하게 된 과정을 술회한 바 있습니다.2)


그러니까 흔히 다윈은 경쟁에 의한 선택(도태)의 논리를 자연의 세계에만 적용시켰다고 이야기되며 이를 인간 사회에 확대시킨 사회적 다윈주의의 시조로서 스펜서를 들지만, 이러한 평가에는 역설적인 측면도 존재를 하는 것이지요. 경쟁과 도태의 논리는 당시 사회의 시대정신이었고, 다윈이 이러한 사회의 논리를 자연의 세계에 투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공정하게 말하자면, 맬서스의 『인구론』(1789),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스펜서의 『생물학의 원리』(1864)에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이야기하는 일종의 에피스테메(Episteme)―특정한 시대를 지배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가 작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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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스의 『국부론』(1776), 맬서스의 『인구론』(1789), 다윈의 『종의 기원』(1859), 스펜서의 『생물학의 원리』(1864)에는 당대를 지배하던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에피스테메)’가 작동을 하고 있었다. 즉, 다윈주의 자체가 사회적인 것이다.




사실 그 유명한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1776) 역시 이러한 저작들과 공통의 에피스테메에 기반을 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서로 경쟁하는 경제주체들의 세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질서를 부여한다는 인식과 생존경쟁을 벌이는 동식물의 세계(혹은 인간 사회)에 ‘자연선택(혹은 적자생존)’이 질서를 부여한다는 인식은 일정한 동형성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이로 인해 로버트 영(Robert M. Young) 같은 이는 “다윈주의 자체가 사회적이다(Darwinism is social).”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윈은 특히 1871년에 출간한 『인간의 유래, 그리고 성 선택(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에서 다음과 같은 언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문명국가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선택의 작용도 여기서 어느 정도 언급을 할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주제는 W. R. 그레그에 의해서, 그리고 그 이전에는 월리스와 골턴에 의해서 훌륭하게 논의되어 왔다. (…) 미개인들 사이에서는 몸이나 마음이 허약한 자는 곧 제거된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일반적으로 강인한 건강 상태를 보인다. 우리 문명화된 인간들은 반대로 약자가 제거되는 과정을 저지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우리는 저능한 사람, 불구자, 병자를 위해 보호시설을 세운다. 우리는 구빈법을 제정한다. 그리고 우리의 의사들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전력을 다한다. (…) 그리하여 사회의 허약한 구성원들이 그들과 같은 종류의 자손을 증식시키게 된다. 가축을 기르는 일에 종사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것이 인간종에게 대단히 해악적일 수밖에 없음을 의심치 않을 것이다.3)



다윈의 입장에 따르면 인간에게 존재하는 협동능력․이타심․도덕이라는 독특한 본능은 인간이 생존경쟁을 겪으면서 진화한 결과로 갖게 된 것입니다. 다윈은 이 점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를 강조했는데, 문제는 이러한 독특한 능력 때문에 인간은 더 이상 서로 죽고 죽이는 경쟁을 하지 않는 상태에 가까워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다양한 복지 정책 덕분에 사회적 약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국제적인 비난 때문에 약한 종족을 제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즉 진화의 결과로 더 이상의 자연적인 진화(자연선택)가 어려워진 상태에 이르게 된 셈입니다.4) 그리고 이로부터 우생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선택을 넘어선 인위선택(artificial selection)의 필요성 내지 당위성이 도출될 수 있지 여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위의 인용문 앞부분에서 언급되고 있는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다윈의 사촌으로, 그가 바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하나의 ‘과학’으로서의 우생학을 정립한 인물입니다. 골턴은 1874년의 저서 『영국의 과학적 지식인들: 그들의 천성과 양육(English men of Science: Their Nature and Nurture)』에서 자신의 유전 이론에 근거하여 오늘날 일반화되어 있는 천성 대 양육이라는 이분법적 대립구도를 확립하였으며, 1883년에 『인간의 능력과 그 발달에 관한 탐구(Inquiries into Human Faculty and Its Development)』에서 처음 우생학(eugenics)이라는 개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5)


그리스어에서 ‘eu’는 ‘well(좋은)’을 뜻하고 ‘gene’는 ‘genesis(발생)’을 뜻하므로, eugenics는 어원상으로는 ‘좋은 태생(well-born)’에 관한 학문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골턴에 의하면 우생학은 “정신과 육체의 양면에 있어 차세대 인류의 질을 높이거나 낮추는 작용 요인에 대해서 연구하고 이를 사회의 통제 아래에 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과학”으로, 혹은 “인종의 질적 개량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인, 그리고 인종의 질을 최대한 발전시키는 데 관련되는 모든 분야를 취급하는 학문”으로 정의됩니다.6)


이러한 우생학은 크게 보자면 포지티브 우생학(positive eugenics)과 네거티브 우생학(negative eugenics)으로 구분이 되는데요, 전자가 우수한 형질을 지닌 사람들의 재생산을 촉진하고자 한다면, 후자는 열등한 형질을 지닌 사람들의 재생산을 막는 데 초점을 둡니다. 그리고 우생학이라는 과학이 일정한 신념에 기반을 둔다고 했을 때, 인간은 선천적으로 우등한 자 내지 적자(適者, the fit)와 열등한 자 내지 부적자(不適者, the unfit)가 있으며, 그처럼 우등한 인간종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위선택이 필요하다는 믿음 내지 이데올로기를 ‘우생주의(eugenicism)’라고 정의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19세기 후반 남아프리카에서는 영국이 케이프 식민지(Cape Colony)를 기지로 소위 종단정책을 추구하며 세력을 확대시켰고, 그 북방에는 네덜란드계 백인인 보어인이 1852년과 1854년에 각각 건설한 트란스발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1867년 트란스발에서 금광이, 오렌지강변에서 다이아몬드 광산이 발견되자 이에 대한 이권을 둘러싸고 영국인과 보어인 사이에 갈등과 분쟁이 계속되었으며, 1899년 10월 마침내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영국이 두 나라의 주력군을 제압하고 합병을 선언했지만, 이후 보어연합군은 게릴라전을 통해 영국군을 잇달아 패퇴시키고 영토의 대부분을 수복했으며 영국령 식민지까지 넘보게 되었다. 그러나 장기간의 전쟁은 결국 50만에 가까운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 영국의 승리로 귀결되어 1902년 5월 베레니깅 평화조약(Treaty of Vereeniging)이 맺어졌고, 트란스발공화국과 오렌지자유국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각주 2)  김호연,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 아침이슬, 2009, 74~75쪽.


각주 3)  Charles Darwin, The Descent of Man, and Selection in Relation to Sex (Vol. 1), New York: D. Appleton and Company, 1871(http://books.google.co.kr/books?id=ZvsHAAAAIAAJ&printsec=frontcover&hl=ko&source=gbs_ge_summary_r&cad=0#v=onepage&q&f=false), pp. 161~162[찰스 다윈, 『인간의 유래 1』, 김관선 옮김, 한길사, 2006, 216~217쪽].


각주 4)  홍성욱, 「진화와 진보」, 『진보평론』 41호, 메이데이, 2009년 가을, 47쪽.


각주 5)  Francis Galton, Inquiries into Human Faculty and Its Development (2nd Ed.), London: J. M. Dent & Co., 1907(http://galton.org/books/human-faculty), p. 17.


각주 6)  염운옥, 『생명에도 계급이 있는가: 유전자 정치와 영국의 우생학』, 책세상, 2009, 21쪽, 46~47쪽; 김호연, 『우생학, 유전자 정치의 역사』,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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