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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 01:13

장애학, Why & What?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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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3] 장애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다들 아시다시피 장애학에 대한 영어 표기는 ‘Disability Studies’입니다. 우리말로 직역을 하자면 ‘장애 연구’로도 옮길 수 있겠지요. ‘Culture Studies’가 ‘문화 연구’로 옮겨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앞선 글에서 이미 언급했던 것처럼, 사실 ‘장애’에 대해 ‘연구’를 하는 학문은 장애학 말고도 많이 존재를 합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의학․재활학․심리학․사회복지학․특수교육학 등을 들 수가 있겠지요. 그렇다면 이런 학문들과 장애학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살펴보면 장애학이란 어떤 학문인지도 대략 파악을 해볼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2009년에 출간된 졸저 『장애학 함께 읽기』에서 저는 장애를 다뤄 왔던 기존의 학문들과 비교하여 장애학이 지닌 차이점을 ①사회 문제로서의 장애에 대한 연구 ②학제적 연구 ③차별 철폐와 권리 확보를 향한 실천지향성 ④해방적 연구 접근법의 4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당연히 이것이 어떤 정답은 아니고, 추가적으로 다른 중요한 특징과 차이점도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장애학이 어떤 학문인가를 파악하는데 있어 ‘사회적(social)’, ‘학제적(interdisciplinary)’, ‘실천지향적(praxis-oriented)’, ‘해방적(emancipatory)’이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나름의 유용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미나 프로그램의 진행을 위해 쓰인 그 책에서는 이 내용이 조금 건조하고 딱딱하게 서술된 측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여기서 이 4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장애학의 성격과 특징을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키워드1: 사회적


2000년대 후반부터 장애학 서적이 조금씩 번역되어 출간이 이루어지고 있고, 또 외국에서 장애학을 공부하고 돌아오신 분들이 생겨나면서 관련 논문들이 학술지에 기고도 되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한글로 접할 수 있는 장애학 관련 텍스트는 양적으로 매우 한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장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저도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나마 외국의 장애학 저널이나 단행본을 뒤적이게 되곤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영어로 쓰인 장애학 문헌들을 보다보면 참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social’입니다.


장애학 관련 텍스트에서 이처럼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은 기존의 장애 관련 연구들이 장애를 이와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다루어 왔음을 함의합니다. ‘사회적’의 반대말이 뭐지요? ‘개별적(individual)’ 혹은 ‘개인적(personal)’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즉, 의학․재활학․심리학․사회복지학․특수교육학 등의 학문이 장애를 연구해 왔지만, 그러한 학문들은 장애를 개별적․개인적인 문제로서 다루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애학이 성립하던 시기 장애학의 개척자들은 기존의 장애 관련 연구들이 ‘개별적 장애모델(individual model of disability)’에 입각해 있다고 비판을 하면서 ‘사회적 장애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을 주창하게 됩니다.


장애학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은 사회적 장애모델을 정립한 영국의 장애학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모델론자들이 장애인을 표기할 때 ‘disabled people(혹은 the disabled)’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것에서 간접적으로 확인을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영어권에서 가장 먼저 사용되었던 장애인에 대한 공식 용어는 ‘disabled people’입니다. 그렇지만 이후에는 장애보다는 사람이 먼저라는 소위 ‘피플 퍼스트(people first)’라는 지향에 입각해서 사람을 앞쪽에 내세운 ‘people with disabilities’가 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의미와 뉘앙스를 지닌 ‘disabled/disability’라는 단어를 아예 사용하지 않는 ‘physically[mentally] challenged people’이라는 표현과 더불어 최근에는 ‘differently abled people’과 같은 완곡어법도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자는 ‘신체적[정신적]으로 도전을 겪는 사람’이라는 정도의 의미이고, 후자는 ‘다른 능력을 가진(다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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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적응을 해야 하는가, ‘할 수 없게 만드는(disabling)’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가?




그런데 사회적 모델론자들이 ‘disabled people’이라는 용어를 고수하는 것은 이 용어가 무언가를 드러내 준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게 된(disabled)’이라는 수동태의 표현은 이미 그 맞은편에 ‘할 수 없게 만드는(disabling)’ 작용을 가하는 무언가를 상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러니까 장애인들은 그들 자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라 할 수 없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고, 이처럼 그들이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disabled people’을 완전히 풀어서 표현하자면 ‘people disabled by society’가 되는 것이지요.1)


결국 사회적 모델론자들이 ‘disabled people’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것은 ‘disabling society’를 염두에 둔 것이고, 장애학에서 연구의 초점이 되는 것은 ‘장애인’이 아니라 이처럼 장애인이 무언가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문제의 원인이 장애인의 몸(손상)이 아닌 사회에 있다고 보니까요. 영국의 오픈 유니버시티(Open University)에서 1975년에 최초로 개설되었던 장애학 과정은 1994년에 폐지되기 전까지 두 번에 걸쳐 프로그램이 갱신되는데, ‘disabling society’는 바로 그 최종 프로그램의 타이틀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장애학도 오로지 사회만을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인도 다룹니다. 그렇지만 이때의 장애인은 개별화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장애인이 아니라,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 속에서 파악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장애인이지요. 요컨대 장애학은 장애인이 무언가를 할 수 없도록 만들어내는 ‘사회’를 다루며, ‘사회적’ 존재로서의 장애인을 다룹니다. 그러니 ‘사회적’이라는 단어가 장애학에서 하나의 키워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키워드2: 학제적


다른 나라들에서도 장애학이라는 학문은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신생 학문에 속하기 때문에, 장애학 과정이 개설되어 있는 외국의 대학이나 장애학을 연구하는 기관의 홈페이지에 가보면 장애학이 어떤 학문인지에 대해 소개를 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소개에서 꼭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장애학은 학제적인 연구 분야라는 것입니다.


‘학제적’이라는 단어가 낯선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 의미는 ‘국제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국제적으로 논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누군가가 국가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그러한 경계들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활동을 한다는 것을 뜻하지요. 장애학이 학제적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장애학이 기존에 존재하는 여러 분과학문들의 경계에 얽매이지 않고 장애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문학․역사학․철학․인류학․사회학․정치학․정치경제학․사회정책학과 같은 여러 인문사회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때로는 자연과학의 경계들까지도 넘나들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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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분과 학문의 유기적 결합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장애학의 학제적 특성이 강조되는 이유가 장애학은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겠지요. 여러분, 이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학문들이 존재하는데요, 그러한 학문들은 다 왜 존재를 합니까?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문제를 진단하고 분석하고 성찰하고 해결하기 위함이지요. 그런데 장애인도 인간이지요. 그럼 장애인이 맞닥뜨리는 장애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그런 학문들이 당연히 필요한 것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서 장애문제는 의료․재활의 문제나 복지의 문제로만 다루어져 왔습니다. 장애문제를 해결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면 다 보건복지부로 가라고 떠밀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이동권 투쟁을 하면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를 찾아가니까 장애문제를 가지고 왜 여기로 오냐, 보건복지부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장애문제는 ‘철학적’ 문제이기도 하고, ‘역사적’ 문제이기도 하고,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며,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고, ‘경제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러한 모든 학문들이 장애문제를 제대로 연구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억압을 하고 회피를 해왔다는 것입니다.


즉, 장애학이 학제적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장애문제가 총체적 성격을 지니며, 인간이 지닌 다양한 보편적 문제들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루되어 있음을 함축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란 인간 일반의 문제에 부차적으로 덧붙여져 다루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 적대와 차이, 공동체라는 문제에 있어 회피될 수 없는 무엇이며, 그것들을 온전히 해명하기 위한 하나의 키워드 내지 매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각주 1) 이와 관련해서는 Lisa Egan, xoJane, “I’m Not A “Person With a Disability”: I’m a Disabled Person”, Nov. 9, 2012(http://www.xojane.com/issues/i-am-not-a-person-with-a-disability-i-am-a-disabled-person)를 참조하라.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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