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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9 16:34

장애학, Why & What?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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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 장애학은 왜 필요한가




기존의 장애 관련 학문에는 장애인의 삶이 담겨 있는가



이번 글에서는 우선 제가 어떤 계기를 통해 장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왜 장애학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는지를 개인적인 경험 두 가지를 통해 설명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1974년생 범띠인데요, 제 또래들보다는 조금 늦게 96학번으로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진학 문제로 부모님과의 갈등이 좀 심했고, 그래서 아예 집을 나와 3년 정도 학습지 외판원, 환경미화원, 호프집 주방일 등을 하며 완전한 독립을 위한 자금과 학비를 모았거든요. 나름 어렵게 원했던 학과에 들어갔기 때문에 초기에는 특수교육이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의욕도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학과 소모임에서 선배들과 세미나를 하나 하게 되었는데요, 저는 거기서 무척 충격적인 사실을 한 가지 접하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우리나라 장애인 두 명 중 한 명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이하라는 것, 그러니까 학교를 아예 안 다녔거나,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두었거나, 초등학교까지만 다닌 장애인이 전체 장애인의 절반을 차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지요. 사실 최근 자료를 살펴봐도 이러한 현실은 크게 변함이 없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펴낸 『2011년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지금도 전체 장애인 중 44.7%가 초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저는 당시엔 그 말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이 된 지 오래고 세계적으로도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해서,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보면 초등학교 취학률이 99%가 넘고, 초등학교 졸업생의 99% 이상이 중학교에 들어가고, 중학교 졸업생의 99% 이상이 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그리고 그 고등학교 졸업생 4명 중 3명은 대학에 가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장애인은 절반이 초등학교 졸업 학력 이하라고 하니 납득이 되지를 않았습니다. 통계에 오류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도 했지요. 이미 제 세대만 해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고등학교 정도까지 다니는 것은 일종의 ‘상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 이후 수업을 듣고 학교생활을 계속해 가면서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충격적인 장애인 교육의 현실에 대해, 왜 그런 현실이 발생하고 유지되는지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현실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에 대해, 제가 대학을 다니며 특수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샀던 수십 권의 책 속에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비록 40명 정원 중 끝에서 두 번째의 성적으로 졸업을 할 만큼 공부를 제대로 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교재는 꼬박 꼬박 다 샀는데 말입니다. 교재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수업에 들어오는 교수들 중에서도 그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 무언가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들 속에는 장애인의 ‘삶’이 담겨 있는가?

▲이 책들 속에는 장애인의 ‘삶’이 담겨 있는가?



우리나라에서 장애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장애와 관련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가게 되는 학과가 크게 세 군데가 있습니다. 흔히 장애 관련 3대 학과라고 해서 특수교육과, 재활학과, 사회복지학과를 꼽지요. 장애 관련 정책을 다루는 토론회에 나오는 소위 ‘전문가’도 대부분 이런 학과의 교수들이거나 전공자들이고요. 그런데 과연 그런 학문들에 장애인들의 삶이 녹아들어가 있는 것인가, 그런 학문을 배우면 장애문제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인가, 즉 기성의 장애 관련 학문들이 장애문제를 진정성 있게 다루고 있는 것인가에 대해 얼마간 회의감을 느끼고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주류 공론장과 담론에는 장애인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가


어쨌든 저는 이런 저런 계기로 인해 학과 공부와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데모만 열심히 하다가 4학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바다복지회 비리재단 퇴진 투쟁 때 알게 된 노들장애인야학 박경석 교장 선생님의 꼬임에 넘어가 연봉 600만 원에 스카우트가 되어, 2학기 때부터는 아예 학교에도 나가지 않고 노들야학의 첫 상근교사 겸 사무국장으로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때가 2000년 8월이지요.


그리고 2001년 2월에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장애인용 수직형 리프트 추락 참사를 계기로 우리나라 장애인운동의 새로운 부활을 알린 이동권 투쟁이 시작됩니다. 당시에는 장애인운동의 상황이 매우 열악해서 현장 투쟁을 이끌 만한 제대로 된 장애인운동 단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문적인 운동단체도 아닌 노들야학이 장애인이동권연대의 간사 단체를 맡게 되었고, 노들야학의 유일한 상근자였던 저는 좋으나 싫으나 이동권 투쟁에 실무자로서 열심히 참여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희는 지하철 선로 점거, 버스 점거, 도로 점거 등 점거를 참 많이도 해서 시민들로부터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에 함께했던 다른 사회운동단체의 활동가들도 사실 조금 우려 섞인 조언을 하곤 했지요. 우리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고 힘 있게 투쟁을 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전술이 반복되다 보면 여론의 악화 등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러나 그때마다 박경석 교장선생님은 “야, 욕을 바가지로 먹든 한 트럭을 먹든, 욕을 더 많이 먹어서라도 우리 문제가 「100분토론」에 한 번 나와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그러고는 더 열심히 점거 투쟁을 조직하셨지요.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이동권 투쟁 이후 우리나라의 장애인 대중들은 자신들의 억눌렸던 요구를 폭발적으로 쏟아내며 수없이 많은 투쟁을 벌여왔고, 또 일정한 성과들도 만들어 왔습니다. 굵직굵직한 것만 몇 가지 언급해 보더라도, 2005년에는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되었고, 2007년에는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과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내는 것과 더불어 활동보조서비스(현 활동지원서비스)의 전국적 시행을 일구어 냈습니다.


또한 기만적인 형태로나마 2010년에 「장애인연금법」이 제정되었고, 2011년과 2014년에는 각각 「장애아동복지지원법」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2012년 8월부터 시작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에서의 농성은 현재까지 무려 1,000일 가까이 지속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해보니 2001년에 박경석 교장 선생님이 이야기했던 그 소원이 14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이루어지지를 않았더라고요.


무슨 얘기인가 하면, 우리나라의 KBS, MBC, SBS 3개 지상파 방송사는 각각 「심야토론」, 「100분토론」, 「시사토론」1) 과 같은 대표적인 토론 프로그램을 다 하나씩 운영해 오지 않습니까. 이런 토론 프로그램들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영향력이 큰 대표적인 공론장(public sphere)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서는 ‘함께’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선별해서 매주 한 차례씩 토론이 진행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까지 그런 프로그램에서 장애문제를 가지고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 프로그램들이 다룬 2천개가량의 이슈들 중 장애문제는 단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들이 다룬 2천개가량의 이슈들 중 장애문제는 단 한 번도 포함되지 않았다.




3개 방송사에 1년이 52주이니 지난 14년간 대략 2천개가량의 이슈가 다루어진 것인데, 그 수많은 이슈들 중 장애문제는 단 한 번 낄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장애인들이 잠잠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시기도 아니고, 그들의 울분과 요구와 목소리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터져 나왔으며 굵직한 이슈도 셀 수 없이 많았던 지난 14년 동안 말입니다. 그러니까 주류적 공론장에서 장애문제란 ‘함께’ 해결해야할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 ‘따로’ 처리되면 그만인 ‘너희(타자)’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양상은 사실 소위 시민사회 내에서 벌어지는 주요 학술행사나 토론행사에서도 대동소이하게 나타납니다. 그런 공론장에서도 장애는 함께 공유하고 논의해야 할 무엇으로서 좀처럼 초대를 받지 못합니다. 한국 사회의 장애인들은 무수히 많은 말들을 해왔지만, 어떤 면에서 그러한 말들은 좀처럼 사회화되지 않았고 담론화되지 않았던 것이지요.


굳이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같은 학자를 참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말과 담론이라고 하는 것이 권력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상관관계 속에서 힘 있는 자들의 말은 또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서 반복되고 담론의 체계 내에서 증폭되고 재해석 되며 의미를 획득해 갑니다. 그러나 권력을 박탈당해온(disempowered) 존재인 장애인들의 말은, 그 치열한 목소리들의 대부분은, 이 사회를 향해 내뱉어진 뒤 날 것의 말 그대로 소멸되어 갔던 것입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SBS의 경우에는 2004년부터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어 가며 토론 프로그램을 운영해왔으며, 가장 오랫동안 타이틀을 유지한 것이 「시사토론」이었다. 그러나 「시사토론」 후속으로 2013년 2월부터 방영된 「토론공감」이 같은 해 9월에 폐지된 이후에는 더 이상 토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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