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by 어깨꿈 posted Jan 10,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등록 :2017-01-02 18:18수정 :2017-01-02 19:20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나는 박현이다. 1983년에 태어나 2016년 12월22일에 죽었다. 나는 지금 광화문 광장 지하,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에 있다. 그곳 빈소에 줄지어 있는 열두 개의 영정 중 머리에 초록색 물을 들인 남자, 그게 바로 나다. 그날, 독감이 폐렴으로 진행되었다고 의사가 입원을 권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만 견디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다. 참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삶을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에게 고통은 익숙하다.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가 고작 감기 따위로 죽는 것은.

 

“친구들 있는 곳에 가자.” 열세 살의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데려간 곳은 꽃동네였다. 가는 길에 엄마가 말했다. “나를 ‘이모’라고 불러야 한다.” 엄마는 왜인지 꽃동네 입구에서 들어가지를 않고, 함께 간 동네 아주머니가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엄마가 금방 데리러 올 줄 알았다. 무섭고 서러운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이 지나 ‘면회’를 온 ‘이모’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고 울기만 했다. 집에 가고 싶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나를 포기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나만 없어지면 다 잘될 거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넘었을 때 ‘자립생활’이란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도 사회적 지원을 받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 왜 아무도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나. 나는 음성군청에 찾아가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 말하고, 나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를 변경해 달라 요청했다. 그것은 법에 명시된 나의 권리였다. 군청은 이를 거부했다. 나는 인권활동가들의 도움을 받아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시설이 발칵 뒤집혔고 엄마가 달려와 소송을 취하한다는 문서에 내 지장을 강제로 찍었다. 소송은 끝내 패소했다. 나는 시설에 그저 버려진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결박당해 있었음을 그제야 알았다. 그곳을 벗어나는 데 3년이 더 걸렸다.

 

2011년 1월, 서울에서 자립생활을 시작했다. 전입신고를 마친 후 종이 위에 쓰인 나의 주소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그것은 나와 이 사회를 연결하는 탯줄 같았다. 그것 하나 얻기가 그토록 어려웠다. 행복했으나 두려웠다. 집과 시설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는 태아처럼 무력했다. 턱없이 부족한 생계비와 활동보조서비스를 받는 나에게 하루 24시간은 한없이 길었다. 그 막막한 시간을 건너올 수 있었던 건 팔 할이 동료들의 덕이었다.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따뜻한 음식을 나누어주었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함께 손잡고 싸워주었다. 나는 그들을 통해 비로소 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탈시설 장애인들의 모임인 우리들의 이름은 ‘벗바리’. 누구도 포기하지 않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란 뜻이다.

 

사람들은 강자가 사라져야 약자가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나는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이 사회가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그것은 혹시 우리를 버려서가 아닌가.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버리고, 병든 노인들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한 자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었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상처 난 곳으로 온갖 악한 것들이 꿀처럼 스며드는 법이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가장 아픈 곳으로부터 연결된 근육들의 연쇄적인 강화만이 우리를 함께 강하게 만들 것이다. 생명을 포기하는 곳, 연대가 끊어지는 그 모든 곳이 시설이다. 그러니 모두들, 탈시설에 연대하라.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7050.html#csidxc413bc2d2d09248be8ec8f9e2c5882f


 


  1.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2018/01/25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2년 6월 구형 받은 장애인 활동가"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노들 장애인...
    Date2018.01.29 Reply0 Views546 file
    Read More
  2. [고병권의 묵묵]‘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3999.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
    Date2018.01.29 Reply0 Views382 file
    Read More
  3. 가두지 마라

    가두지 마라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이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 중인 박경석 교장이 1월9일 집시시위...
    Date2018.01.23 Reply0 Views292 file
    Read More
  4.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등록 :2018-01-08 18:09수정 :2018-01-08 19:02 ​​​​​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장...
    Date2018.01.09 Reply0 Views298
    Read More
  5. 홈리스뉴스 카드뉴스입니다

    Date2017.12.23 Reply0 Views214 file
    Read More
  6. [고병권의 묵묵] 후원자의 무례

    [고병권의 묵묵]후원자의 무례 동정하는 자가 동정받는 자의 무례에 분노할 때가 있다. 기껏 마음을 내어 돈과 선물을 보냈더니 그걸 받는 쪽에서 기...
    Date2017.12.21 Reply0 Views296 file
    Read More
  7.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어느 날 나는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서울로 7017’ 위에 ...
    Date2017.12.21 Reply0 Views181 file
    Read More
  8.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경향]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7.11.01 14:14:00 수정 : 2017.11.0...
    Date2017.11.01 Reply0 Views331 file
    Read More
  9. [세상 읽기] 선감도의 원혼들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1974년 열세 살의 이상민(가명)은 청량리역에서 신문팔이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역전 파출소 경찰들이 마구잡이로 ...
    Date2017.10.23 Reply0 Views199 file
    Read More
  10. [고병권의 묵묵] 약속

    [고병권의 묵묵]약속기사입력 어떤 사람들은 시설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시설을 함께 둘러보던 사람 중에는 시설이 생각보다 깨...
    Date2017.08.27 Reply0 Views259 file
    Read More
  11.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 홍은전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날 박진영씨가 종이에 뭔가를 써와서는 세 부를 복사해 달라고 ...
    Date2017.07.18 Reply0 Views262 file
    Read More
  12.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세상 읽기]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등록 :2017-06-19 19:49수정 :2017-06-19 19:54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동네에 현수막을 걸었다. &ls...
    Date2017.06.23 Reply0 Views301 file
    Read More
  13. [고병권의 묵묵] 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의 묵묵]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입력 : 2017.06.04 21:17:01 수정 : 2017.06.04 21:...
    Date2017.06.23 Reply0 Views237 file
    Read More
  14. [세상 읽기]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스물넷에 뇌출혈로 우측 편마비와 언어장애를 입은 송국현은 스물아홉에 꽃동네에 들어가 24년을 살았다. 2012년 그...
    Date2017.04.26 Reply0 Views233 file
    Read More
  15. [기고] 혁명의 시작 / 박경석

    등록 :2017-04-20 18:05수정 :2017-04-20 20:48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피고인은 피고인 집 안방에서 다른 가족들이 없는...
    Date2017.04.24 Reply0 Views246 file
    Read More
  16. [고병권의 묵묵]내 친구 피터의 인생담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내 친구 피터, 그는 목소리가 정말 컸다. 말하는 게 사자후를 토하는 듯했다. 은유 ...
    Date2017.04.10 Reply0 Views235 file
    Read More
  17. [세상 읽기] 최옥란의 유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3월26일은 장애해방 열사 최옥란의 기일이다. 추모제에서 낭독할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그녀에 대한 자료들...
    Date2017.04.10 Reply0 Views234 file
    Read More
  18. [세상 읽기] 어떤 세대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아버지를 힘껏 밀어 쓰러뜨린 날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애인야학 교사가 된 나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
    Date2017.04.10 Reply0 Views235 file
    Read More
  19. [세상 읽기] 당신처럼

    [세상 읽기] 당신처럼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고향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고속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였다. &l...
    Date2017.02.05 Reply0 Views174
    Read More
  20.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등록 :2017-01-02 18:18수정 :2017-01-02 19:20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나는 박현이다. 1983년에 태어나 201...
    Date2017.01.10 Reply0 Views24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