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 홍은전

by 뉴미 posted Jul 18,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00503121_20170327.JPG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날 박진영씨가 종이에 뭔가를 써와서는 세 부를 복사해 달라고 하더래요. 복사해주니까 그걸 하나하나 봉투에 넣더니 시청, 청와대, 경찰서에 보내 달라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칼로 자기 심장을 찔렀대요. 구급차로 이송하던 중에 돌아가셨어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심장을 너무 깊게 찔러서. 주민센터 담당자 말이, 두 달 동안 정말 ‘매일’ 찾아왔대요. 어릴 때 발병해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장애등급 하락됐다고 갑자기 자기를 ‘근로능력자’라고 하면, 당장 어딜 가서 돈을 버느냐고. 괴팍한 장애인이었대요. 만날 와서 따지고 화내는. 그러니 공무원들은 짜증나고 싫었겠죠.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이것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집행위원장 이형숙의 말. 박진영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에 들어온 네 번째 영정의 주인공이다. 나는 박진영을 이토록 피가 돌고 생생한 표정을 가진 존재로 이야기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이형숙이 말했다.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박진영의 유서를 핸드폰에 넣고 다녔다. “나는 비장애인이 되는 게 꿈이었어요. 장애인들은 구질구질하니까.” 그랬던 그녀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출근길 도로를 점거하고 으리으리한 국제대회장에 난입해 구호를 외치다 사지를 들려 끌려가는 ‘괴팍하고 구질구질한’ 장애인이 되었다. 며칠 후 그녀는 벌금 탄압에 항의하는 노역투쟁을 벌일 참이었다.

휠체어도 압수된 채 편의시설이라곤 없는 감방에 던져진 장애인이 그저 ‘냄새나는 존재’로 전락하는 데에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녀는 2년 전에도 노역을 살았다. ‘그 힘든 걸 왜 또 합니까?’ 내가 묻자, 그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럼 누가 합니까?’ 노역이 얼마나 고역인지 잘 아는 얼굴,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오래전 한 장애여성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당신은 왜 싸웁니까?’ 그녀가 대답했다. ‘싸운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뼈가 저리도록 처절하게 알지. 그래서 싸우는 사람들의 곁을 떠날 수가 없어.’

그땐 몰랐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두 문장 사이에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떠났다. ‘안다는 것’과 ‘감당한다는 것’ 사이엔 강이 하나 있는데, 알면 알수록 감당하기 힘든 것이 그 강의 속성인지라, 그 말은 그저 그 사이 어디쯤에서 부단히 헤엄치고 있는 사람만이 겨우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영복은 ‘아름다움’이 ‘앎’에서 나온 말이며, ‘안다’는 건 대상을 ‘껴안는’ 일이라 했다. 언제든 자기 심장을 찌르려고 칼을 쥔 사람을 껴안는 일, 그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세상엔 자신의 유서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싸움은 그들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싸움의 지속은 타인의 유서를 품고 사는 사람들에게 달려 있다. 김소연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람의 울음을 이해한 자는 그 울음에 순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람의 구질구질함을 이해한 자는 그 구질구질함에 순교한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누리던 그마저의 권리도 내려놓고 창살 ‘있는’ 감옥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아름답다. 17일, 이형숙·박옥순·이경호 세 사람이 국가의 벌금 탄압에 저항해 노역투쟁에 들어갔다. 농성 기간 5년 동안 그들과 그 동료들에게 지워진 벌금은 5천만원이 넘었다. 연대와 후원을 바란다. 국민은행 477402-01-195204 박경석.
 

등록 :2017-07-17 18:27수정 :2017-07-18 17:12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03166.html?_fr=mt5#csidxe1f6594c766370085c9a4fb9c78f4e2


  1.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2018/01/25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2년 6월 구형 받은 장애인 활동가"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노들 장애인...
    Date2018.01.29 Reply0 Views577 file
    Read More
  2. [고병권의 묵묵]‘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3999.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
    Date2018.01.29 Reply0 Views405 file
    Read More
  3. 가두지 마라

    가두지 마라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이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 중인 박경석 교장이 1월9일 집시시위...
    Date2018.01.23 Reply0 Views316 file
    Read More
  4.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등록 :2018-01-08 18:09수정 :2018-01-08 19:02 ​​​​​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장...
    Date2018.01.09 Reply0 Views323
    Read More
  5. 홈리스뉴스 카드뉴스입니다

    Date2017.12.23 Reply0 Views239 file
    Read More
  6. [고병권의 묵묵] 후원자의 무례

    [고병권의 묵묵]후원자의 무례 동정하는 자가 동정받는 자의 무례에 분노할 때가 있다. 기껏 마음을 내어 돈과 선물을 보냈더니 그걸 받는 쪽에서 기...
    Date2017.12.21 Reply0 Views320 file
    Read More
  7.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어느 날 나는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서울로 7017’ 위에 ...
    Date2017.12.21 Reply0 Views204 file
    Read More
  8.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경향]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7.11.01 14:14:00 수정 : 2017.11.0...
    Date2017.11.01 Reply0 Views354 file
    Read More
  9. [세상 읽기] 선감도의 원혼들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1974년 열세 살의 이상민(가명)은 청량리역에서 신문팔이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역전 파출소 경찰들이 마구잡이로 ...
    Date2017.10.23 Reply0 Views231 file
    Read More
  10. [고병권의 묵묵] 약속

    [고병권의 묵묵]약속기사입력 어떤 사람들은 시설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시설을 함께 둘러보던 사람 중에는 시설이 생각보다 깨...
    Date2017.08.27 Reply0 Views288 file
    Read More
  11.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 홍은전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날 박진영씨가 종이에 뭔가를 써와서는 세 부를 복사해 달라고 ...
    Date2017.07.18 Reply0 Views293 file
    Read More
  12.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세상 읽기]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등록 :2017-06-19 19:49수정 :2017-06-19 19:54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동네에 현수막을 걸었다. &ls...
    Date2017.06.23 Reply0 Views325 file
    Read More
  13. [고병권의 묵묵] 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의 묵묵]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입력 : 2017.06.04 21:17:01 수정 : 2017.06.04 21:...
    Date2017.06.23 Reply0 Views257 file
    Read More
  14. [세상 읽기]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스물넷에 뇌출혈로 우측 편마비와 언어장애를 입은 송국현은 스물아홉에 꽃동네에 들어가 24년을 살았다. 2012년 그...
    Date2017.04.26 Reply0 Views254 file
    Read More
  15. [기고] 혁명의 시작 / 박경석

    등록 :2017-04-20 18:05수정 :2017-04-20 20:48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피고인은 피고인 집 안방에서 다른 가족들이 없는...
    Date2017.04.24 Reply0 Views271 file
    Read More
  16. [고병권의 묵묵]내 친구 피터의 인생담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내 친구 피터, 그는 목소리가 정말 컸다. 말하는 게 사자후를 토하는 듯했다. 은유 ...
    Date2017.04.10 Reply0 Views264 file
    Read More
  17. [세상 읽기] 최옥란의 유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3월26일은 장애해방 열사 최옥란의 기일이다. 추모제에서 낭독할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그녀에 대한 자료들...
    Date2017.04.10 Reply0 Views263 file
    Read More
  18. [세상 읽기] 어떤 세대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아버지를 힘껏 밀어 쓰러뜨린 날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애인야학 교사가 된 나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
    Date2017.04.10 Reply0 Views258 file
    Read More
  19. [세상 읽기] 당신처럼

    [세상 읽기] 당신처럼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고향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고속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였다. &l...
    Date2017.02.05 Reply0 Views195
    Read More
  20.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등록 :2017-01-02 18:18수정 :2017-01-02 19:20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나는 박현이다. 1983년에 태어나 201...
    Date2017.01.10 Reply0 Views26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