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생활인들은 모두 1급장애인이었는데 대부분이 언어와 지체, 지능 등의 중복장애를 안고 있었다. 실태조사를 위해 조금이라도 대화가 가능한 소수의 사람들을 만났다. 대화라고는 했지만 힘겹게 낳은 단어들을 한 개씩 모으고, 손짓과 표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가능한 대화였다. 옆 방에서는 몇몇 사람들이 세상을 등진 것처럼 모로 누워 있었고, 한 젊은 남자는 전라의 몸으로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내 눈이 휘둥그레진 걸 본 생활교사는 ‘쟤는 원래 저래요’라고 했다. 그리고는 심상한 풍경을 보듯, 아니 아무 것도 보지 못한 듯, 그냥 하던 일을 마저했다. 밀폐된 공간이 아니었는데도 거기서 나는 숨쉬기 힘들었고, 어디 부딪히거나 묶인 적이 없는데도 근육통을 느꼈다. 무언가 안에서 차올랐는데 목 언저리에서 막혀 나오질 않았다.
무언가 안에 쌓인 채 억눌려 있는 것. 그것을 ‘억울’이라고 한다. 나는 그날 억울을 체험했다. 그러나 거기서 내가 억울할 일은 없었다. 그러니 그 억울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것이었다. 언어장애가 있어 말할 수 없고, 지적장애가 있어 생각해낼 수 없는, 그러나 수십 년의 시설생활 동안 쌓여왔던 것. 아마도 내 몸은 그들 몸에 쌓인 억울을 모방했던 모양이다. 답답했고 아팠고 나가고 싶었다. 몸 곳곳의 작은 성대들이 ‘내보내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바로 이 느낌 때문에 이번 칼럼의 제목을 ‘장애인들을 석방하라’고 쓸까 했다.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사실상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들, ‘우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너희’는 거기 그렇게 갇혀 있어라는 선고를 받은 사람들. 그들을 석방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시설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시설을 함께 둘러보던 사람 중에는 시설이 생각보다 깨끗하고 생활교사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도 얼마 전에 여기 입소했다는 아이를 보는 순간, ‘어쩌다 이런 데 왔냐’며 눈물을 왈칵 쏟는다. 그런데 실은 그 아이 곁에 앉아있는 중년 남자도 삼십 년 전 누군가의 손을 잡고 여기에 온 아이였다.
시설 조사를 마치고 나오던 늦은 오후, 결국 한 사람이 나를 붙잡았다. 대화 중에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만약 나간다면 누구랑 살고 싶냐는 물음을 듣고는 나를 붙들었다. ‘나간다’는 말 한마디가 그를 일깨운 것이다. ‘언제, 언제요? 언제 나가요? 언제 나갈 수 있어요?’ 계속해서 내 손을 붙잡고 물었다. 요양시설이니 본인이 원하면 언제든 나갈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와 눈을 오래 마주치지 못했다.
그 사이 또 한 사람이 내 손을 잡았다. 휴대폰을 가진 극소수 중 한 사람인 그는 내게 휴대폰이 켜져 있는지를 봐달라고 했다. 한 달에 한 번 걸려오는 엄마 전화를 놓치면 안 된다고. 그러고보니 거기 사람들 대부분은 텔레비전이 있는 안쪽 거실이 아니라 출입문 쪽 거실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면 일제히 고개를 든다. 그들 모두가 수십 년 간 그렇게 물어온 것이다. ‘언제, 언제요? 언제 나가요?’라고.
내가 이번 칼럼 제목을 ‘약속’이라고 잡은 것은 지난 금요일 아침의 일을 적어두기 위해서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광화문 지하 역사의 농성장을 찾아왔다. 장애인 단체들이 ‘장애인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의 철폐를 외치며 농성한 지 5년을 넘기던 시점이었다. 그는 농성장에 모셔둔 영정 속 장애인들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광화문 농성장의 염원을 담아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약속했다. 장애인등급제와 부양의무제를 단계를 밟아 완전히 폐지하겠으며, 장애인 정책을 수용시설 중심에서 탈시설로 바꾸겠다고. 정부를 대표해서 탈시설을 약속한 것을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다. 그는 분명히 말했다. 장애인들이 수용시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함께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장관은 우리 앞에서 약속했지만 그것은 우리에 대한 약속일 수 없다. 그 자리에 있던 우리는 시설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이미 탈시설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장관은 우리 앞에 섰지만 우리 역시 누군가의 앞에 선 사람들일 뿐이다. 거기 서는 것이 불가능한 사람들, 현관문이 열릴 때마다 일제히 고개를 들었던 사람들, ‘언제, 언제요? 언제 나가요?’라고 물었던 사람들. 지난 5년 간 우리는 그들의 입이었을 뿐이다. 그들은 지난 금요일의 약속 또한 우리의 귀를 통해서 들었다. 우리 안에서 그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정부가 잊지 말기 바란다.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