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을 위한 글쓰기 교육에서 강의를 했다. 나는 ‘당사자들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며 내가 만났던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아마 조금 울먹였던 것 같다. 수업이 끝나자 한 여성이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은 감수성이 뛰어나신 것 같아요.” 조금 부끄러워진 내가 손사래를 치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순간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비장애인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당사자니까….” 그녀의 말엔 조금의 비아냥도 없었으므로 나는 마음이 처연해졌다. 한동안 그 말이 내 몸속을 돌아다니며 잊힌 기억들을 툭툭 건드리고 다녔다.
노동절 집회 도중 체포된 남편에게 구속영장이 신청된 날이었다. 너무 무서웠는데 무섭다는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질 않았다. 남편이 구속될 위기에 처한 아내에게 형사가 보인 멸시와 푸대접이 비현실적일 만큼 적나라해서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들은 남편을 가두거나 가두지 않을 권력을 쥐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납작 엎드리는 일뿐이라는 걸. 불타는 분노는 우리를 도우러 온 따뜻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의 몫이었다.
처음으로 ‘비참’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오랜 시간 절박한 이들과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어디까지나 연대하는 사람이었을 뿐 당사자가 아니었다는 걸, 둘의 세상은 완전히 다르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손 벌리는 자’의 마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잡아주는 자’의 자부심으로 살아왔던 시간이 부끄러워서 펑펑 울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길을 여행할 때였다. 값싼 숙소에 한데 뒤섞여 지낸 각국의 여행자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영어를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후자인 나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현지인이 영어를 못한다는 사실조차 불만이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자기 나라 말을 요구하는 자들의 그 엄청난 권능이 부럽고도 싫었다. 그땐 그것이 ‘남자로 살아가는 것’과 비슷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는 그 무지함이 평생의 내가 그랬듯,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걸 깨닫는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이 꿈도 꾸지 못할 자유를 아무 노력 없이 누리면서도 일상의 작은 불편조차 장애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그들을 격리하고 가두는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인구의 10%가 장애인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드러나지 않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비장애인들은 일상적으로 자신들의 가해 사실을 인식할 수조차 없다. 한때 남성들이 자신이 여성 혐오의 잠재적 가해자임을 선언하는 장면에 나를 대입하면 식은땀이 난다. 나는 장애인 차별의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확실한 가해자이며, 이 시스템의 분명한 수혜자이다. 비장애인인 내가 이 지면에 장애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 그 증거다.
‘장애인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가 너무 크진 않은가 신경이 쓰였으나, 이 지면의 새로운 필자에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이 있어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았다. 세상의 변화는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닥쳐온 어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작되며, 그것은 이 폭력적인 사회에서 아무런 제약 없이 살아가는 90%의 사람들이 비로소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성찰할 때일 것이다. 나는 그것을 글쓰기 교육에서 만났던 그 장애여성으로부터 배웠으므로, 당사자의 말하기, 그 어려운 일을 그녀가 이미 해냈다는 점만은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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