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고] 혁명의 시작 / 박경석

by 뉴미 posted Apr 24,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등록 :2017-04-20 18:05수정 :2017-04-20 20:48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피고인은 피고인 집 안방에서 다른 가족들이 없는 틈을 이용하여 집 안에 보관하고 있는 망치로 잠자고 있던 피해자의 후두부를 3회 힘껏 가격하고, 목 졸라 그 자리에 사망하게 하였다.”

 

2015년 8월26일 재판부는 친족살해 사건에 대하여 아버지인 피고인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자녀가 중증장애인이고, 피고인이 수십년간 정성스럽게 보살폈다는 점을 정상 참작했다. 피고인은 자신이 죽고 난 뒤 남은 가족들에게 중증장애인 아들이 짐이 될 것을 걱정해 살인을 저질렀다고 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통해 최저생활을 보장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가족이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가족에게 ‘부양의무’가 있다고 보고, 법 적용을 제한했다. 국가는 이 ‘부양의무자 기준’을 근거 삼아 가난한 이들을 방치하고 감시해왔다. 중증장애인 아들에 대한 부양의무를 졌으나, 그 부양의 의무를 다하기에는 힘에 부친 늙은 아버지는 자기 자식을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런 장애인에 대한 친족살해 사건은 한두 번이 아니며, 우리 사회에서 반복해서 일어나는 비극이다. 자신의 아버지에게 새벽에 망치로 맞아죽어야 했던 비극의 당사자 그 아들, ‘중증장애인’은 누구인가. 그들의 삶은 어떠한가.

 

세월호가 침몰하던 다음날, 4월17일에는 장애인수용시설에서 30년을 살다 ‘탈시설’ 한 장애인 송국현이 집에서 홀로 불타 죽은 사건이 있었다. 혼자서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려웠던 그는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찾아가 호소도 해보았지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당시 활동지원서비스는 1·2급 장애인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애 3급이었다. 그의 사정에도 국가는 외면하였고, 그렇게 송국현이 죽었다.

 

송국현, 그가 30년간 살아왔던 곳은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장애인거주시설이다. 시설이라는 곳은 어떤 공간인가. 시설은 중증장애인의 자유를 제약하고 수용하는 곳이다. 하지만 국가는 그곳을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서비스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최근 대구시립희망원의 인권침해 문제가 계속 밝혀지고 있다. 대구천주교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이 희망원에서 수용인들이 수년에 걸쳐 하나씩 죽어갔다. 지난 7년간 시나브로 309명이 죽었다. 시설은 국가권력이 중증장애인을 폐기물 취급하며 교묘하게 통제·관리하기 위해 고안한 곳, 복지라는 이름을 걸친 수용시설이다. 그들은 그곳을 ‘희망원’, ‘형제복지원’으로 불러댄다.

 

시설이 아니라 이곳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꿈꾸는 이들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 지하도에서 1700여일을 농성하고 있다. 부양의무자 기준을 규정하여 ‘가난을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쉽게 전가해 버린 국가권력, 장애등급제를 무기로 중증장애인의 삶을 파괴하는 국가권력.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던 촛불광장의 구호처럼 국가권력을 향한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외침이다. ‘문제로 정의된 사람이 그 문제를 다시 정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혁명은 시작된다’는 올해 4월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구호처럼, 우리는 국가권력에 맞서 ‘가난’과 ‘장애’를 새롭게 정의하려고 한다.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그리고 장애인수용시설을 폐지하고 아무리 심한 장애가 있어도 이곳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1608.html#csidx2f20b3aaa788ef9858e0742c6c4d3f3


  1.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2018/01/25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2년 6월 구형 받은 장애인 활동가"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노들 장애인...
    Date2018.01.29 Reply0 Views577 file
    Read More
  2. [고병권의 묵묵]‘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3999.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
    Date2018.01.29 Reply0 Views405 file
    Read More
  3. 가두지 마라

    가두지 마라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이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 중인 박경석 교장이 1월9일 집시시위...
    Date2018.01.23 Reply0 Views316 file
    Read More
  4.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등록 :2018-01-08 18:09수정 :2018-01-08 19:02 ​​​​​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장...
    Date2018.01.09 Reply0 Views323
    Read More
  5. 홈리스뉴스 카드뉴스입니다

    Date2017.12.23 Reply0 Views239 file
    Read More
  6. [고병권의 묵묵] 후원자의 무례

    [고병권의 묵묵]후원자의 무례 동정하는 자가 동정받는 자의 무례에 분노할 때가 있다. 기껏 마음을 내어 돈과 선물을 보냈더니 그걸 받는 쪽에서 기...
    Date2017.12.21 Reply0 Views320 file
    Read More
  7.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어느 날 나는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서울로 7017’ 위에 ...
    Date2017.12.21 Reply0 Views204 file
    Read More
  8.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경향]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7.11.01 14:14:00 수정 : 2017.11.0...
    Date2017.11.01 Reply0 Views354 file
    Read More
  9. [세상 읽기] 선감도의 원혼들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1974년 열세 살의 이상민(가명)은 청량리역에서 신문팔이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역전 파출소 경찰들이 마구잡이로 ...
    Date2017.10.23 Reply0 Views231 file
    Read More
  10. [고병권의 묵묵] 약속

    [고병권의 묵묵]약속기사입력 어떤 사람들은 시설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시설을 함께 둘러보던 사람 중에는 시설이 생각보다 깨...
    Date2017.08.27 Reply0 Views288 file
    Read More
  11.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 홍은전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날 박진영씨가 종이에 뭔가를 써와서는 세 부를 복사해 달라고 ...
    Date2017.07.18 Reply0 Views293 file
    Read More
  12.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세상 읽기]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등록 :2017-06-19 19:49수정 :2017-06-19 19:54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동네에 현수막을 걸었다. &ls...
    Date2017.06.23 Reply0 Views325 file
    Read More
  13. [고병권의 묵묵] 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의 묵묵]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입력 : 2017.06.04 21:17:01 수정 : 2017.06.04 21:...
    Date2017.06.23 Reply0 Views257 file
    Read More
  14. [세상 읽기] 아직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스물넷에 뇌출혈로 우측 편마비와 언어장애를 입은 송국현은 스물아홉에 꽃동네에 들어가 24년을 살았다. 2012년 그...
    Date2017.04.26 Reply0 Views254 file
    Read More
  15. [기고] 혁명의 시작 / 박경석

    등록 :2017-04-20 18:05수정 :2017-04-20 20:48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피고인은 피고인 집 안방에서 다른 가족들이 없는...
    Date2017.04.24 Reply0 Views271 file
    Read More
  16. [고병권의 묵묵]내 친구 피터의 인생담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내 친구 피터, 그는 목소리가 정말 컸다. 말하는 게 사자후를 토하는 듯했다. 은유 ...
    Date2017.04.10 Reply0 Views264 file
    Read More
  17. [세상 읽기] 최옥란의 유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3월26일은 장애해방 열사 최옥란의 기일이다. 추모제에서 낭독할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으며 그녀에 대한 자료들...
    Date2017.04.10 Reply0 Views263 file
    Read More
  18. [세상 읽기] 어떤 세대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아버지를 힘껏 밀어 쓰러뜨린 날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애인야학 교사가 된 나와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
    Date2017.04.10 Reply0 Views258 file
    Read More
  19. [세상 읽기] 당신처럼

    [세상 읽기] 당신처럼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고향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고 고속버스운송조합 홈페이지에 접속했을 때였다. &l...
    Date2017.02.05 Reply0 Views195
    Read More
  20.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세상 읽기] 벗바리 / 홍은전 등록 :2017-01-02 18:18수정 :2017-01-02 19:20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나는 박현이다. 1983년에 태어나 201...
    Date2017.01.10 Reply0 Views260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