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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21 20:15

그야말로 '먹장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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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2 00:13:43


뉴미


오늘 아침 페이스북에서 한 선배가 공유한 글을 보고,

바로 지난 세미나 때 읽은 루쉰의 '유화진 군을 기념하며'가 떠올랐습니다.?


송경동 시인이 레디앙에 쓴 글인데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벌써 3개월여 전이지만 난 이 글을 쓸 수 없었다. 함부로 쓰기엔 너무도 비극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십여일 전부터는 매일 자리에 앉아 보았지만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다.


그런 중간에도 나는 다시 네 편의 추도시를 쓰고, 읽어야 했다. 쌍용차 무급자인 임무창 씨의 추도시였고, 23년 전에 신흥정밀에서 분신해 간 박영진에 대한 추도시였다. 삼성전자에서 죽어간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와 마흔 여섯 분에 대한 추도시였고, 며칠 전 다시 쌍용자동차 노동자 열네 분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였다.


그런데 마지막 네 번째 추도시를 읽어가던 도중 나는 참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나 아닌 누군가가 내 안으로 전이되어 와 내 대신 시를 읽으며 울고 있는 거였다. 난 이상한 전율에 휩싸인 채 그 이를 대신해?울부짖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사람이었다. 비로소 나는 이 이야기를 쓸 수 있으리라 했다.


이 이야기는 1975년 이후 부산에 있는 한 조선소(대한조선공사, 현 한진중공업)를 둘러싸고 벌어진 어떤 사람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다. 아니 그 이전부터 그 조선소에서 일해왔던 사람들 이야기다. 아니 이것은 우리 시대 어떤 난장이들의 서럽디 서러운 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며, 당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모든 이들의 운명과 관계된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섯인데, 안타깝게도 넷은 죽고,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살아 남은 이는 지금 그중 한 명이 올라가 목을 맸던 가파른 크레인 위에 올라 있다. 오늘로 82일째다. 며칠 전 추도시를 읽을 때 내 안에서, 나 대신 함부로 내 글을 뺏어 읽던 이. 김진숙이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김진숙 님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하기엔 굉장히 많은 이야기)인데?

저는 송경동 시인의 글을 읽고

그야말로 어쩔 줄을 몰라 한참을 멍때렸습니다.

가슴이 먹먹해오는데,?

무엇인가 해야할 것 같은데, 그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그런데 이 먹장 비애는 가실 줄 모르고.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1997

이 글 꼭 읽어보세요.?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그리고 폭풍이 몰려온다는, 주의사항 전합니다.


정수쌤이 루쉰의 글을 보고 "망각의 기념비로서 글쓰기"라는 말을 했었잖아요. 더는 슬픔에 빠져 있지 않겠다, 이제 이 비통함을 떨치고 다음 행동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처럼 보인다고. 오늘 송경동 시인의 글을 읽는데, 이 글이 꼭 그랬어요.?

그리고 이게 그저 글처럼 느껴지지 않네요. 살아 움직이는- 꿈틀거리는- 폭발 직전의- 피처럼 뜨거운- 무언가 같달까.?


"나는 실상 할 말이 없다. 단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인간 세상이 아니라는 느낌 뿐이다."?


"나는 이미 분노를 넘어섰다. 나는 이 비인간적인 먹장 비애를 깊이 음미할 것이다. 나는, 나의 최대의 비통함을 그런 비인간들에게 보여주어 그들이 나의 고통을 유쾌하게 즐기도록 할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뭔가를 써야 할 필요를 느꼈다. 3월 18일에서 이미 두 주나 지났다. 망각이라는 이름의 구세주가 강림하려 한다. 지금이야말로 나는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


- 루쉰


루쉰의 글이 지금도 먹히는 것 같아요. 다른 글들을 볼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느낌.



그래서 85호 크레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너희는 참 좋겠구나
[추모시] 쌍용차 희생자 열네 분과 정리해고에 희생당한 모든 노동자들을 추모하며

너희들은 좋겠구나
이젠 5.18 광주에서처럼
총으로 곤봉으로 대검으로 때려죽이고 찔러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죽어가니

좋겠구나


이젠 한진중공업 박창수처럼 YH무역 김경숙처럼?
굳이 끌고 가 떠밀어 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떨어져 죽어가니

너희는 참 좋겠구나


이젠 용산에처럼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망루에 가둬두고?
짓밟고 태워죽이지 않아도
저절로 피 말라 죽어가니

너희는 정말 정말 좋겠구나


이런 만고강산 이런 태평천하
이런 누워서 떡먹기 이런 부라보
이런 룰루랄라 이런 땅 짚고 헤엄치기
시간만 가면 돈이 벌리는 이런 희안한 세상이
배 터지게 입 찢어지게?
환장하게 좋겠구나


노동자들만 눈물바다구나
평생을 뼈빠지게 일하며 눈물바다
평생을 생존권에 쫓겨다니며 눈물바다
평생을 길거리에서 싸워가며 눈물바다
급기야 저절로 목숨까지 반납하며 눈물바다
짜디짠 눈물 바다 뿐인?
노동자 세상이 참 좋겠구나


이 더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이 서러운 세상을 어떻게 사나
더 이상 물량과 생산성에 쫓기지 않고
더 이상 구사대 경찰에게 쫓기지 않고
더 이상 실업과 생활고에 쫓기지 않고
먼저 가서 자네는 좋겠네 라고 얘기해야 하나
차라리 먼저 가서 자네는 행복하겠네 라고 말해야 하나


무한 경쟁 무한 생산 무한 소비로
벼랑에 도달한 것은 자본인데
왜 등 떠밀려 묻혀야 하는 것은 착한 우리들만인가
얼마나 더 많은 노동자민중들이 살처분당해야
너희의 위기는 해소되는가


돌려 말하지 마라
이것은 계획된 살인
이것은 준비된 학살
이것은 우리 시대 모두를 향한 자본의 테러다
우리는 더 이상 묻힐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을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야 하는 것은 너희다
이 참혹한 땅에 매몰되어야 하는 것은 이 열 네명이 아니라
수백, 수천, 수만, 수십만, 수백만 해고노동자들과 비정규직들이 아니라
이 시대의 가장 악독한 산재이며 구제역인
자본과 권력 너희다


너희를 묻지 않고
우린 이 열 네분의 참혹한 시신을 묻을 수 없다
너희들을 단죄하지 않고
우린 어미 아비를 잃은 이 아이들의 슬픈 눈망울을 쳐다볼 수 없다
더 이상 이런 아픈 추모시를 쓸 수 없으며
더 이상 이런 뼈아픈 추도사를 읊을 수 없다


그러니 우리 일어서자
더 이상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엄마, 아빠 제발
죽지 말고 일어서자
여보, 제발 쓰러지지 말고?
죽지 말고 일어나 싸우자
이 시대의 악성종양
이 시대의 흡혈귀
저 자본과 권력을 죽이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 일어서자
일어서자 일어서자


?? ? ? ? ? ? ? ? ? ? - 송경동?


* 이 시는 25일 정리해고철회 및 정리해고희생자 범국민 추모위원회(정리해고희생자 추모위원회) 주최로 광화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정리해고 철회 및 희생자 범국민 추모제’에서 낭송된 것입니다.


2011.04.02 07:35:38

일어서자 일어서자는 말이 좀더 분노의 침묵 속에 잠겨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은 그저 멀리 있는 나의 냉소이기만 할까. 중반가지는 참, 좋네요. 암튼, 오랜만에 경동이 형의 시를 정독해서 보네요. 감사. 경동이형이랑은 구로노동자 문학회에서 만났죠. 포크레인에서 농성하다 떨어져 집에 누워있다는 소식을 두 달전에 들었는데.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빨리 쾌차하시길. 그래서 또 저렇게 살아 펄떡거리는 언어를 낚는 싸움을 계속하시길

고추장

2011.04.02 10:13:25


은유

2011.04.02 10:24:45

루쉰 글 중 '먹장비애' 부분에서 호식샘이 물었습니다. '먹장이 무슨 뜻인가요?'

일주일 내내 '먹장비애'란 말이 이상하게 가시질 않았는데..

유미샘이 먹장비애를 말씀하시니, 이 글을 읽으려고 그랬나봅니다          


뉴미

2011.04.02 21:55:07

덤 / 저도 시 끝에 일어서자 일어서자에서 의문이 들었어요. 어떻게? 언제? 지금? 뭘 해야 할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글과 시를 읽고 먹장 비애가 닥치긴 했지만, 그래서 뭘 어찌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흡혈귀 같은 자본 앞에 이 개미 같은 존재감으로 무엇을 어떻게. ;; 시는 이 정도면 자기 할 일을 다 한 걸 수도 있겠지만.

 

고추장 /  핫. 고맙다니요오오.. 잘 지내시죠? 먼 데 가 계신데, 곁에 있는 듯 느껴지는 건 뭘까요? 글들 때문인가. 요상합니다. ^^

 

은유 / 저도 배운 걸 이렇게 빨리 써먹게 될 줄이야. ;;


형호

2011.04.12 02:18:43

유미샘 말처럼 정말 가슴 뭉클한 시이네요.
저도 이 시 읽고 난 후 가슴 한구석에서 알수 없는 무언가가 북받치네요!(눈물도 한방을 찍금...!)
다들 유미샘 주의사항 꼭 유념 하소서! 정말 폭풍이 몰려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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