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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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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21 22:29:04


기픈옹달

1. 

2008년 3월 나는 상해에서 봄바람을 맞았다. 멋진 정원에서 만난 강렬한 매화향기는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강렬한 추억이 하나 더 있는데 이것을 좋은 기억이라 해야할지.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은 기억. 그냥 충격이라고 부르기에 적절한 경험이리라. 2008년 3월 둘째주인가 셋째주로 기억한다. 난생 처음 가보는 남구로 역에 내려 어떻게 가야하나 전화를 해봤지만 전화가 되지 않았다.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길가 칼국수 집에서 국수 한 그릇을 비운 뒤에야 전화가 닿았다. 몇번이나 헤매고 찾아간 곳은 시끄럽고 지저분한 곳. 파랑새 지역 아동센터였다.

첫날, 첫 만남의 기억은 이것뿐이다. 아마 다음주부터 수업을 하기로 했던 것 같다. 다음 주 첫 수업. 아이들은 처음 만나는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아, 그 중엔 연구실에 와서 나를 봤다고 기억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시끄럽고 정신없는 첫 수업이 끝나고 두근 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한 친구(진호)가 내 팔을 잡았다. ‘선생님 식사하고 가시죠.’ 그 첫 마디 말이 지금까지 가슴에 남는다. 

대치동에서 그 또래의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매번 쉬는 시간을 두고 옥신각신 했어야 했다. 5분, 10분을 더 얻기 위해 거래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과 나는 몇 달을 보냈지만 친해지지 못했다. 파랑새 친구들에게는 뭔가 다른 감성이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되었다. 거리낌 없이 행동하는 아이들. 아마 나는 안중에 없었으리라. 옆에서 밥먹던 찬영이가 갑자기 물었다. ‘선생님 그 눈깔 안드실꺼면 제가 먹을께요.’ 그날 나온 조기 눈깔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옆에 있던 훈이도 거들었다. ‘다른쪽 눈깔은 저 주세요' 내 생각일지 모르지만 그렇게 난 인심이 후한 선생이 되었다.


2. 

공부의 ‘공’자만 들어도 싫은 아이들에게 한문 공부란 때론 죽기보다 싫은 일이 아닐까? 아니, 싫다는 저항감 보다는 15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을 이끌어 간다는 자체가 더 문제였다. 공간은 눅눅하며, 어두웠다. 좁은 바닥에 다닥다닥 붙어 앉으면 팔하나 움직이는 데도 이리저리 아우성이다. 누가 먼저 발을 건드렸네 아니네를 두고 한시간도 싸울 친구들이다. 

그런 소란스러운 와중에 혜성이는 울상이다.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손이 아파 못쓰겠어요.’ 칠판에 적어놓은 한문을 공책에 쓰라고 했는데, 고작 한 글자를 쓰고 두번째 글자를 쓰는 중이었다. 진심어린 말. 어쩌면 연필이라고는 10분도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는지 모른다. 삐뚤빼뚤, 한문이 어렵다기 보다는 연필을 잡는 것 자체가 힘든 친구였다.

드디어 한쪽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목소리가 커지고 주먹이 오갈 기세다. 목소리 크기로 질세라 나도 큰 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하고 제대로 앉아!’ 급기야 센터장, 성태숙 선생님이 호출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그대로. 아이들 소리에, 부산한 분위기에, 또다른 선생님의 잔소리가 얹힌 꼴이다. 지하 좁은 방이 시끄러운 소음으로 웅웅거린다.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저녁식사가 준비되고 있다.

급기야 지하철에서 굵은 죽비를 사왔다. 죽비로라도 겁을 주려는 생각에서였다. 딱딱 울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으라고 했건만 아이들은 히죽 웃으며 시원하게 때려달란다. 그 중에는 직접 머리를 대며 여기에 서비스를 해달라고 친히 요청하는 친구도 있다. 아플텐데… 등짝에 '딱'소리 나도록 맞으면 하나도 안 아프건만 머리를 대는 바람에 ‘똑' 소리가 나고 말았다. 눈물만 그르렁. 결국은 울어버렸다.


3. 

무슨 호기인지 1년 반이 지나서 중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새로 수업을 개설하기로 했다. 저녁을 먹은 뒤, 책을 읽고 글쓰는 수업을 열었다. 싫다고 온몸으로 저항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좁은 방에 둘러 앉아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었다. 한달, 4주 정도 읽었나? 수업이 끝나는 날까지 로미오는 남자고 줄리엣은 여자라는 점을 이야기해줘야 했다.

200자 원고지에 쓰는 글은 엉망이었다. 문장이 어그러져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 글이 나왔다. 읽어보라고 했더니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겠단다. 왜 그러냐면 그냥 웃지요… 그래도 몇 달이 지나니 200자 원고지 채우는 것을 껌으로 아는 친구들이 하나 둘씩 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책은 읽어올 생각을 도통 하지 않는다.

평균 15명 + 10명… 도합 스무명이 넘는 초중고 학생들과 씨름하고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피곤하다. 지하철 1호선에는 어찌 그렇게 항상 사람이 많은지. 집에 들어오면 KO.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다른 일이 있다는 핑계로 수업하러 가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한 두번 있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나아진 것이 있다면 이력이 난 것일까? 조금은 덜 피곤하다는 점. 그리고 아이들에게 불평도 줄었다는 점. 


4. 

2010년 가을, 구로에 열었던 연구실 문을 닫았다. 고집에서인지 욕심에서인지, 아니면 그 무엇 때문인지 일주일에 한번은 파랑새 공부방에 출근하기로 했다. 아침 10시에 교사 세미나, 오후 4시에 서당 수업, 저녁 7시에 청소년 강좌. 10월부터 석달을 버텼는데 몸이 너무 힘들었다. 그나마 재미라면 오후에 잠깐 짬이 있을 때 사우나에 가서 피곤을 푸는 정도랄까.

결국 저녁 청소년 강좌는 포기했다. 아이들도 반기는 눈치. 2011년 겨울엔 아름다운 청소년 공부방이 새로 문을 열었다. 파랑새 공부방에서 중고등학생 일부가 이 공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은 신났다. 마녀라 부르던 악독한 센터장 성태숙 선생님의 품에서 드디어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해방은 절반의 해방에 불과했는데, 또다른 악마의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친구들이 문제였다. 한 주는 수업을 하러 갔더니 거의 아무도 없었다. 햇수로 3년을 함께 공부한 친구들이 나몰라라 밖에서 축구를 하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들어왔다. 나중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들은 폭풍같은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지도. 그러고보니 이 녀석들은 모두 중학교 1학년 또래 남자 아이들이다.

위클리 돌 잔치가 있어서 공부방의 큰 형 노릇을 하는 고등학교 2학년 준호에게 공연을 부탁했다. 그 다음주, 공연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정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모두 싫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한 녀석은 나를 두고 들으라는 건지, 자기의 귀한 휴일을 낭비할 수 없단다. 그 말 때문인지, 아니면 피로가 쌓였기 때문인지 정나미가 뚝 떨어져 버렸다. 수업이 재미없어졌다.


5. 

고민이 많았다. 청소년이 되었다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다고 아이들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며 강의를 하려 했는데 그런 꿈은 산산조각나 버렸다. 한달을 의무감으로 버텼다. 일단 시작한 것은 끝을 봐야 한다고. 지난 주 늦지 않겠다고 약속한 문제의 또래 집단이 단체로 또 지각하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한시간 넘게 대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있는 대로 모든 말을 쏟아내었다.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고. 수십개의 접시를 설겆이 하며(가위바위보에서 졌다. ㅠㅠ) 생각했다. 마음에 남기지 말 것. 친절함을 버리고 마음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니 후련했다. 언제부턴가 친절해지려고, 배려의 명목으로 마음 속에 쌓아둔 묵은 감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곳의 매력은 바로 그런, 날 것 그대로 만나는 그 무엇이었는데…


6. 

2011년 3월. 만 3년이 된다. 새로 프로그램을 계획했다. 앞으로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도 몇 달 미뤄두기로 했다. 어쩌면 지금 필요한 게 인내가 아닐지, 그저 견디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 답답함을 지켜보는 시간이 아닐지… 지루함을 어떻게든 털어내보기로 했다. 아니, 피로감과 지루함이라는 고난들과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을까.

1, 2월 아이 생일도 있고, 명절도 끼어 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지출이 크게 나왔다. 만년 적자지만 어떻게 근근히 생활해왔던 게 크게 어그러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한 명이 벌어 세명이 먹고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어떻게 알바를 뛰어야 하나 고민하지만 마땅한 곳도 찾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겨우 최저 생계비를 웃도는 지출이지만 갑갑하기만 하다. 답답한 마음에 낮에 사왔던 빵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스트레스는 먹어야 풀린다. 가난한 이들 가운데 의외로 비만이 많은 것이 이해간다.

이럴 때면 공부방 아이들과 만나는 이 시간을 저울질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시간을 낸다면 가장 먼저 접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서당 수업? 명확히 답이 그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올해 들어 지난 두 달 힘들었던 것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 아닐지. 시간이 지나고 견뎌보면 다른 답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별로 그렇지는 않아보인다.

구로에서 연구실을 접기 전, 어떤이와 비슷한 문제를 두고 다투었다. 나는 이렇게 이야기 한듯. 돈을 벌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고,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돌아온 대답은 ‘난 돈 없이도 할 수 있다'는 야몰찬 말이었다. 요즘 그 말을 곱씹어보고 있다. 아마도 그 말이 진심이었겠지만 합당한, 옳은 말이었는지에 대해.

어느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선가 ‘왜'라는 질문은 접어두기로 했다. ‘왜 지역 아동센터 친구들을 만나'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정답을 찾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보다는 ‘어떻게’ 만날 것인가를 생각하기로. ‘무엇’을 할것인가 생각하기로. 한 걸음을 더 가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답은 앞의 어딘가에 놓여있는 발견해야 할, 발굴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닌지 모른다. 말하고 고백하는 가운데 탄생하는 게 아닐지. 


그냥. 아름다운 공부방 <수요서당> 대박을 기원하며.



덧.

지난 주 정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앞으로 수유너머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냐는. 자신의 꿈은 SF작가가 되는 거란다. 소설을 멋지게 써서 건담 애니로 만들어보고 싶단다. 그 꿈에 무슨 토를 달겠는가. 앞으로 가능한 토요일에 연구실에 나와 공부하기로 했다. 일단 SF를 좋아하니 집에 있는 SF 만화책을 한 보따리 읽으라고 가져다 주었다. 어쩌나 보자 약속을 잘 지키는지... 토욜에 연구실 출근하는 분들은 이쁘게 봐주시길. 문제 생길경우 민원접수 받습니다.


죠스

2011.02.22 00:57:36

음,,  공감도 가고,, 고민의 세월이 묻어나는 글이구먼,, 내가 밥 살 것이 있으니, 찐하게 밥 먹으면서 만인 공통의 스트레스 해소 통로인(?) 애들 '뒷담화'를 좀 까보자구 ㅎ

beforesunset

2011.02.22 08:47:04

정현이 보고싶던데. 우리 위클리 생파 때 달인시리즈 하던 서커스단  친구 맞지? ㅎㅎ  현식이나 죠스가 쓴 글 읽으면.. 자식 키우는 거랑 고민강도가 비슷하다. 징글징글하지. ㅋ 밑빠진 독에 물 붓다 보면 팔 근육도 길러지고 좋아^^ 화이팅~

안티고네

2011.02.22 13:36:57

정말 비포선셋님 말씀처럼...징글징글하다... 정도 사랑도 관계도^^ 언제 화려한 뒷담화의 시간을 만들어 보자


박카스

2011.02.24 10:49:38

글 잘 봤어요~ 형.

벌써부터 구로에 갈 날들이 기대됩니다.

또, 어떤 공부를 하게될지요~^^

어여쁜

2011.02.25 11:59:22

글 읽어내려 가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오네요....

저번에 주신 김사과씨 글 읽고도 몇날동안 계속 맘에 남았는데..

구로에서 맛있는 고기 쏠게요... 무조건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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