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500 속 '장애등급제 폐지' 요구, 이완구 총리에게 전달

장애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불의의 화재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故송국현 씨의 1주기를 맞아 장애인들이 다시 한 번 장애등급제 폐지의 목소리를 높였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아래 420공투단)은 故송국현 씨의 1주기인 17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약속한 '장애등급제 폐지'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17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국무총리 산하 범정부 기구를 설치할 것을 촉구했다.

420공투단은 특히 현재 복지부를 중심으로 장애등급제 개편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장애등급제는 소득·고용 보장, 각종 감면할인 등 다양한 문제가 얽혀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복지부 주도의 논의로는 한계가 있다며, 국무총리 산하에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범정부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최근 이완구 국무총리가 부정수급 적발 및 유사·중복 사업 통폐합을 통해 복지예산 3조 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히고, 문형표 복지부 장관이 ‘선심성’ 복지 사업을 하는 지자체에게는 교부금 등 예산 배분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 것 등을 규탄하며, 복지 축소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하고 있는 김동림 씨는 “작년 이맘때 시설에서 나와 살고자 했던 송국현이 장애등급이 3급이라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못 받고, 장애등급심사센터에 항의도 해봤지만 무조건 안 된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며 “먼저 간 송국현을 대신해 이 정부에게 왜 등급을 이유로 서비스를 못 받게 하는지 따지고 싶다”라고 밝혔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바로 어제(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유가족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에서 유가족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너무나 비참한 것 같다”며 “세월호에 차가운 바닷물이 차오르는데 누구도 어린 학생들을 구해주지 않았고, 송국현 씨가 뜨거운 불길 속에 갇혀 있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고 비참한 마음을 토로했다.

명숙 활동가는 “저들이 원하는 것은 세월호 유가족은 유가족대로, 비정규직은 비정규직대로, 장애인은 장애인대로 각자 싸우는 것”이라며 “저들의 방식대로 싸우지 말자. 우리는 우리의 방식대로, 서로 연대해 싸워나가고, 결국 장애등급제를 폐지하자”라고 호소했다.

▲구호를 외치고 있는 참가자들.

기자회견을 마친 후 420공투단은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국무총리 산하 범정부 기구 구성 △사회보장기본법 26조를 근거로 한 중앙정부의 지자체 자체 복지 사업 삭감 조치 중단 △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 24시간 보장 등의 요구를 담은 면담 요청서를 ‘비타500’ 상자에 담아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 전달하고자 했다. 이 총리가 2013년 국회의원 보궐선거 당시 故성완종 전 경남그룹 회장으로부터 비타500 상자에 담긴 선거자금 3천만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을 풍자한 것이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는 “복지부 주도하에 장애등급제 개편을 위한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일부 서비스양만을 조정하는 것일 뿐 의학적 기준에 따라 장애인을 갈라놓기는 마찬가지다. 복지부는 등급제를 폐지할 의지도 실력도 없다”면서 “국무총리가 책임지고 모든 부처를 모아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논의 틀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 또한 “이완구 총리가 요즘 ‘비타500’ 때문에 많이 바쁜 건 알지만, 그래도 그만 두기 전에 할 일은 하고 가셔야 한다”면서 범정부 기구 구성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오후 3시 10분 경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향하려던 참가자들은 경찰의 제지에 가로막혔다. 이들은 30여 분간 경찰과 실랑이를 벌였지만 경찰 방패에 막혀 횡단보도조차 건너지 못했고, 결국 총리실 민정민원비서관실 관계자가 나와 ‘비타500’ 상자에 담긴 면담 요청서를 받아가면서 충돌 상황은 정리됐다.

한편, 420공투단은 이어 오후 5시부터 ‘장애등급제 희생자 故송국현 동지 1주기 추모제’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진행한다.

▲경찰에 가로막혀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비타500 상자에 담긴 면담요청서.

▲국무총리실 민정민원비서관실 관계자가 나와 '비타500' 상자에 담긴 면담 요청서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