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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6 22:53:37


소현

4월 14일 화요일 

 노들야학에서 하는 탈시설 워크샵에 따라갔다. 연구실 화요토론회가 있는
 날이었는데, 노들야학에서 탈시설 관련 논의와 엮어서 함께 토론 하기로 했다.
 다양한 단체가 모여 발표하고, 토론하고, 야학 학생들이 하는 연극과 전시를 준비해서
 함께 봤다. 그때까지는 그러려니 하고 듣기만 했는데, 마지막에 모든 일정이 끝나고
  3개정도 조를 나누어 각자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날 발표자였던 김동림씨와  교장선생님인 박경석 선생님과 우연히 한 조가 되
  좀 긴장이 되었다. 박경석 선생님은 안티고네와 나, 고3 정란씨 등이 모인 자리에서
 시설이 좋은 건지 안 좋은건지를 물었다. 꽃 동네를 가서 봉사활동 점수를 받은 경험이
 있었던 정란씨와 선배가 있어 소쩍새 마을에 가본 나는 시설이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설에서 살아 온 동림씨의 발표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개밥을 먹고, 5-60명이
 한방에서 지내고, 변기 옆에서 자고, 매일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설. 봉사활동 한다고 와서
 간간히 생색내고 가는, 뜨네기들은 은폐된 시설의 장애인들의 삶을 결코 체험하지 못한다.
 겉보기와 실제는 많이 다르고, 장애인들은 시설을 감옥으로 느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버지에게 '저거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든가 '내다 버리라'는 말을 듣고서, 결국
가족의 포기로 자의반 타의반 시설에 들어간 동림씨. 시설이 감옥처럼 느껴져도,
시설의 관리자들이 폭행을 가해도 호소하거나 저항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이들.
은폐된 곳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호소하지 못했던 이들의
가혹한 인생을 직접 들으니 할말이 없어졌다. '최옥란 평전'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만 이해된
 그녀의 삶이, 동림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실감처럼 느껴져 몸이 떨렸다.

가족이 포기해 시설로 온 장애인들, 탈-시설 투쟁을 하신다고 했는데, 시설을 벗어나면
어떻게 된다는 건가요? 라는 물음에 박경석 샘은 니가 '탈-시설' 투쟁도 모르고 왔구나.. 라고
말해서, 부끄러웠다.  선생님은 탈-시설 투쟁은  장애인들의 생활 자립을 위한 투쟁이라고 하셨다.
감옥같은 시설에서 벗어나 자신들을 포기한 가족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주거 공간을
확보하고 그룹홈이나 임대 아파트를 얻어 자립 생활을 해 갈 수 있는 단계적 절차를 구체적으로
현실화 시켜가는 투쟁. 천막 농성을 하는 것은 장애인들이 실질적인 생활자립이 가능하도록
임대 아파트나 거주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장애인 복지 예산을 받아내려는 투쟁이란다.

동림씨에게 물었다. 자신을 홀대한 가족과, 시설에서 자신을 개처럼 대한 사람들을 만났으면서도
어떻게 지금 다시 사람에 대한 희망이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느냐고. 동림씨는 그런 문제와 싸우고
그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생각하는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함께 할 때부터
다시 사람과 마음을 틀 수 있었다고 한다.

동림씨의 꿈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돕는 것, 전국 일주를 해보는 것,
그리고 지금은 연락처도 모르는 가족을 다시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돕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옷 못입고, 혼자 밥 못먹고, 씻지 못하는 친구들을 조금 옆에서 거들어
주는 거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일로 뭔가 거창한 걸 생각했던 나. 무슨 문제가 생기면 늘 피하고,
 싸워야 할 일에도 겁먹고 포기하고, 도망치고 절망하기에 바빴던 나. 노들야학 분들을
만나고 와서 난 내가 오히려 심각한 삶의 장애인임을 느꼈다.

이제는 이들에게 싸워야 할 일에 싸우고, 분노해야 할 일에 분노하며, 스스로의 삶을 일궈나가고 
희망을 키워가는 법을 잘 배워야 할 것 같다. 4. 20일에는 거리 투쟁이 있는데
거기에도 함께 참석해 걸어봐야겠다.  

엮인글 : http://commune-r.net/xe/index.php?mid=hyunjang&document_srl=637&act=trackback&key=ff7

댓글 '1'

김디온

2009.04.19 19:03:08

노들에서, 갈 때마다 마주치면 인사하고 웃고 했던 분이 불과 1-2년 전에 시설에서 탈출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또 석암비대위에서 오신 분들의 생생한 시설 이야기를 들으며 시야가 잠시 출렁 했습니다.
멀지만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가깝지만 전혀 보이지 않는 시설. 외면의 반대말은 대면일 것 같지만,
대면은 바라봄 그 자체에서 멈추지 못하게 한다는 데에서 뭔가를 자꾸 덧붙여야 설명될 것 같습니다.
시설 경험자분들이 탈시설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결국은 돈이야, 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돈 아닌 것들을 얻기 위해 정말로 싸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횡설수설... 글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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