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14 21:40:55
어깨꿈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629
무기여 잘 있는가(?)
- 장애인차별금지법 시행 1년을 평가하며 -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다. 첫 돌이라는 짧은 역사에 맞지 않게 장차법은 너무나 많은 산전수전을 겪었다.
장차법이 만들어질 때를 돌이켜 보면,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될 만큼 겉보기에는 모두가 환영한 법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반색하면서 축하하였다. 청와대도 장애인계 사람들을 모두 모아 대통령이 직접 그 법안에 서명하는 행사를 벌일 정도로, 모두가 그 탄생을 좋아했다.
마찬가지로 장애인 당사자들도 법이 제정되자 국회 앞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좋아했었다. 물론 장차법이 1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법의 목적, "모든 생활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은 사람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통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구현함"에 있어 진정으로 강제력을 가지고 있는 법인가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의 바람보다 일정 정도 후퇴한 법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비록 장차법이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해도 장애인 당사자들은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의 의미-장애인당사자들의 피눈물 나는 7년 투쟁의 결과-와 자신들이 평생을 감내하면서 살아왔던 야만적인 차별을 해결하는 데 유효한 무기가 생겼다는 점에서 희망을 보았던 것이다.
모두가 환영한 법, 그러나…
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도전에 직면했었다. 장애인 입장을 대변한다고 말하는 복지부가 타 부처의 눈치를 보면서 법이 보장하는 장애인의 권리를 지연시키고 통제하려 할 때 장애인들은 분통터져 했었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만든 우리의 무기를 버릴 수 없었다. 시행령을 통해 더욱 견고해져야 할 법의 칼날이 무뎌지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1년을 보내야 했다. 그렇게 시행령이 완성되고, 2008년 4월11일 장차법이 시행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외벽에는 '우리 함께 만들어 봐요! 장애인이 행복한 나라!'라는 글귀가 담긴 대형형수막이 펄럭였다.
실제로 법이 적용되기 시작한 지도 이제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차법을 근거로 한 수많은 진정이 제기되었다. 일부는 받아들여져 세상이 조금 변하는가 싶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장애인 인권의 현실이 너무나 야만적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살기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식의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반면 이 1년이라는 시간은 정부와 장애인계 사이에 끊임없는 공방이 오고간 시기였다. 정부 특히 복지부는 장애인의 입장에 서서 장애인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 보다는 타 부처와 자본의 입장에서 문제를 조율하려고 하는 이중적 태도를 유지해왔다. ‘가장 힘없는 부처’라는 핑계로 줏대 없이 움직이고, '우리는 같은 식구'라는 말로 장애인계에 친화적 태도를 취하면서 뒤에서는 뒤통수 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장차법을 통해 좋아진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장애인을 위해 책임져야 할 의무를 어느 정도까지 강화할 것인가, 자본이 양보하는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있다. 하지만 현재의 장차법이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권이 실현’될 수 있을 정도로 정부와 자본을 강제하고 있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장차법을 보다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법 개정을 진행하는 게 맞다. 의무조항도 강화하고 장차법을 지키지 않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개인에게 보다 강력한 제제를 가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면에서는 장차법에 대한 효과적인 홍보와 교육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고, 함께 대화를 통해 장애인차별 문제를 풀어가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과연 복지부는 그것을 수행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것인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무기여 잘 있는가, 자신에게 물어보라
장차법이 장애인당사자들에게 장애인의 차별을 해결하기 위한 무기라면, 정부와 자본은 입으로는 장애인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그 무기를 쓸모없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 자본과 장애인당사자들 사이에 1년 동안의 공방이 있었던 것처럼, 이런 긴장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무기여 잘 있는가?'라는 장차법을 둘러싼 이 물음은, 장애인당사자들이 끊임없이 자문해야 할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