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갇힌 존재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언제나 꽃님씨가 떠오른다. 꽃님씨는 서른여덟에 장애인시설에 들어갔다 3년 만에 그곳을 벗어났다. 그 후 10년간 악착같이 모은 돈 2천만원을 탈시설 운동에 써달라며 기부했다. 2016년의 일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이 지면에도 쓴 적(‘혹독하게 자유로운’)이 있는데 이것은 그 뒷이야기쯤 된다.
그해 2월 꽃님씨가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그는 노들야학 학생이었고 나는 교사였다. 그날 그가 갑자기 발표했다. 2천만원을 모았고 노들야학에 기부하겠다는 것이었다. 감동적이었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나는 먹던 밥이 얹힐 지경으로 당황했고 표정 관리를 하느라 애를 먹었다. 어떤 권력관계가 뒤집히는 순간이랄까. 말하자면 ‘소외된 이웃’이 거액 후원자로 변신한 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그에게 상처 준 말이나 행동을 떠올리느라 머릿속이 하얘졌다. 너무 많아서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어쨌든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고많은 교사 중에 굳이 나를 부른 건 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일 거라고 말이다. 이것은 이미 5년 전에 예고된 일이었지만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전 어느 날, 꽃님씨에게 이런 이야길 들었다. “학교에 다닌 적 없어. 취학통지서도 못 받았어. 주민등록이 안 되어 있었거든. 나는 이름도 없었어. 가족들은 나를 그냥 갓난아, 하고 불렀지. 스무 살에 처음 주민등록을 했는데 그때 내가 내 이름을 지은 거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름은 세상으로부터 받는 첫 선물인데 그는 그것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스스로 선물을 준 것이었다. 이상하게 전설 같고 어딘가 멋있는 이야기였다.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돈을 모으고 있어. 시설 나온 지 10년 되는 날까지 2천만원을 모으는 게 목표야. 그걸 야학에 줄게. 시설에 있는 사람들 한 사람이라도 더 데리고 나와.”
꽃님씨는 야학 제일의 자린고비였다. 가게에 걸린 옷 하나를 마음에 두고 며칠을 끙끙 앓던 그에게 그렇게 궁상스럽게 살지 말라며 면박을 주었던 게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됐어, 언니 옷이나 사 입어요.” 하지만 그가 정색하며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웃음을 거두었다. “이거 비밀이야.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면 너하고 나하고 끝이야. 너한테 말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흔들릴까 봐서야. 이렇게 말해두면 흔들릴 때마다 도움이 되겠지.”
어느덧 5년이 흘러 무수히 흔들렸을 그가 굳건한 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꽃님씨가 말했다. “그 돈, 지금 이 방에 숨겨져 있어. 내가 매달 수급비 50만원에서 20만원씩을 빼서 현금으로 모았거든.”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조선시대야? 왜 돈을 집에다 보관해요!” 꽃님씨가 항변했다. “통장에 넣으면 재산으로 잡혀서 수급권 탈락해.” 나는 또 말문이 막혔다. 그에게는 이상한 일들이 참 많이 일어났다. 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었고 누워서 생활했다. 활동지원사 없이 혼자 남겨진 밤이면 옆집에서 다투는 소리만 들려도 저러다 불이라도 지를까 걱정돼 잠을 잘 수 없다고 했다. 나는 꽃님씨가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현금 2천만원 이야기를 듣자마자 이렇게 외친 것이다. “불이 나면 어쩌려고요! 도둑이 들면 어쩌려고요!” 그제야 그가 살아낸 10년이 얼마나 위대하고 위태로운 것인지, 그가 모은 2천만원이 얼마나 치열한 것이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는 2천만원을 받아 가장 가까운 은행으로 걸어갔다. 스쳐 가는 모든 사람이 강도처럼 느껴져 가슴 속 돈봉투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한번이라도 꽃님씨를 이 돈뭉치처럼 귀하게 여긴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자 눈물 나게 부끄러워서, 이것은 꽃님씨의 복수가 분명하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 복수가 너무 아름다워서 자꾸만 목이 메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은 거리에서 싸웠잖아. 그 싸움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는데 집에 누워 있는 게 항상 미안했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싸운 거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씨에게서 배웠다.
<한겨레>에 실린 글입니다.
등록 :2020-05-11 17:55 수정 :2020-05-12 14:43
원문보기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44488.html#csidx590d470f807484997db6caa6d1f521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