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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포토다큐] 느리지만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꿔온 노들야학 25년

by 노들야학 posted Nov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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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포토다큐]

느리지만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꿔온 노들야학 25년

뇌병변장애를 가진 이영애씨(52)가 서울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휠체어에 누운 채 공부를 하던 중 천장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국어가 제일 재밌다”는 영애씨는 야학에 나오기 전 35년을 집에만 있었다. 2007년 당시 구의동 정립회관에 있던 노들야학을 찾았던 기자를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17년째 야학을 다니고 있다.  /강윤중 기자

뇌병변장애를 가진 이영애씨(52)가 서울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휠체어에 누운 채 공부를 하던 중 천장을 바라보며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국어가 제일 재밌다”는 영애씨는 야학에 나오기 전 35년을 집에만 있었다. 2007년 당시 구의동 정립회관에 있던 노들야학을 찾았던 기자를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17년째 야학을 다니고 있다. /강윤중 기자

 

2018.11.16 14:55 입력 2018.11.16 18:50 수정

 

서울 동숭동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은 날. 1·2교시는 철학이었다. 교재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이자 철학자인 고병권 교사(47)가 수업을 진행했다. 뇌병변장애, 지적장애, 신체장애 등 다양한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모였다. “왜 이리 어렵냐?” 휠체어에 누운 채 수업을 듣던 이영애씨(52)가 활짝 웃으며 투정을 부렸다.

노들야학에서는 철학수업이 인기다. 철학자이자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인 고병권 교사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를 강의하며 학생들과 얘기하고 있다.

노들야학에서는 철학수업이 인기다. 철학자이자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인 고병권 교사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전쟁과 전사들에 대하여’를 강의하며 학생들과 얘기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지문을 읽었고, 이어 문답이 오갔다. 언어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힘겹게 말을 밀어냈고, 굽은 손가락 끝으로 글을 써 의견을 전달했다. 학생에게 바짝 다가선 교사가 말을 받아옮기며 다른 학생들과 공유했다. 수업은 쌍방향으로 이뤄졌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은 까다로운 비유로 가득한 문장들을 자기 삶의 경험으로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커다란 휠체어에 고정된 정수연씨(37)가 김유미 교사와 수학 문제풀이를 하고 있다. 수연씨는 짧은 외마디 말을 토해내기 위해 온몸의 에너지를 쏟았다. 얼굴에는 금세 땀이 맺혔다.  /강윤중 기자

커다란 휠체어에 고정된 정수연씨(37)가 김유미 교사와 수학 문제풀이를 하고 있다. 수연씨는 짧은 외마디 말을 토해내기 위해 온몸의 에너지를 쏟았다. 얼굴에는 금세 땀이 맺혔다. /강윤중 기자
 
저녁 급식 후 3·4교시는 수학시간. 1반부터 5반까지 수준별로 나눴다. 그중 2반은 ‘正(바를 정)’자를 써가며 5배수를 기준으로 수를 셌다. “바를 정이 다 채워지면 몇 개죠?” “바를 정이 두 덩어리면 10이라고 했죠?” 김유미 교사(36)가 물었다. 학기 내내 반복해 진행하는 수업이라고 했다. 김 교사는 커다란 휠체어에 몸을 고정시킨 정수연씨(37) 옆에 서서 함께 문제를 풀었다. 수를 세보이며 “언니, 맞아요?”라고 확인하자, 수연씨는 “…어….” “…아니….” 외마디로 답했다. 이 짧은 소리를 입 밖에 내기 위해 그는 온몸의 에너지를 사용했다. 얼굴에 땀이 맺혔다. “잘 했어요”라는 교사의 말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기뻐했다. 퀴즈로 재미를 더했지만 수업이 있는 곳에 졸음도 따르는 법. 김 교사가 부드럽게 외쳤다. “인성님~, 눈 뜨세요.”
 

권익옹호반 수업에서 학생들이 오는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폐지로 바뀌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권익옹호반 수업에서 학생들이 오는 2019년 7월 장애등급제 폐지로 바뀌는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영어시간. 이영애씨가 휠체어에 누운 채 고개를 돌려 교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 계절과 관련된 단어를 배웠다. /강윤중 기자

영어시간. 이영애씨가 휠체어에 누운 채 고개를 돌려 교사를 바라보고 있다. 이날 계절과 관련된 단어를 배웠다. /강윤중 기자

 

노들음악대 학생들이 타악그룹 ‘페스테자’와 함께 노래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반복해 부른 교가 ‘불어라 노들바람’은 학생들이 가사를 쓰고 페스테자가 곡을 붙였다. /강윤중 기자

노들음악대 학생들이 타악그룹 ‘페스테자’와 함께 노래수업을 하고 있다. 이날 반복해 부른 교가 ‘불어라 노들바람’은 학생들이 가사를 쓰고 페스테자가 곡을 붙였다. /강윤중 기자

 

노들장애인야학은 장애를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장애성인들이 함께 배우며 장애인 차별과 싸워 온 상징적인 공동체다. 1993년 장애인복지시설인 정립회관 내에서 시작해 2008년 대학로에 독자적인 교육공간을 마련했다. 세월만큼 규모도 커졌다. 현재 25명의 교사와 8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수업은 주말과 수요일을 제외하고 오후 5시부터 진행된다. 일반 교과목(국어, 수학, 영어, 역사, 과학)뿐 아니라 인문학(장애학, 철학, 시사)과 특별활동(권익옹호, 영화, 음악(노들음악대), 방송, 미술, 검정고시), 성교육(웅성웅性) 등 다양한 교육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권익옹호반 학생들은 외부와 연대해 장애등급제 폐지 등 현안 관련 집회와 농성에도 참여한다.

 

 

김명학씨가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자신의 ‘60번째 생일잔치’에서 참석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야학의 박경석 교장(왼쪽)이 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강윤중 기자

김명학씨가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자신의 ‘60번째 생일잔치’에서 참석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있다. 야학의 박경석 교장(왼쪽)이 이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강윤중 기자

 

노들야학 25년 역사의 산증인 김명학씨가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감회에 젖어 있다. /강윤중 기자

노들야학 25년 역사의 산증인 김명학씨가 자신의 생일잔치에서 감회에 젖어 있다. /강윤중 기자

 

김명학씨가 영어수업이 끝난 뒤 교실에 남아 그날 배운 것을 공책에 기록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김명학씨가 영어수업이 끝난 뒤 교실에 남아 그날 배운 것을 공책에 기록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9일 밤,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1·2교시 수업을 마친 학생과 활동지원사, 교사들이 일제히 공원으로 향했다. 노들야학 25년 역사의 산증인 김명학씨의 ‘60번째 생일잔치’다. 어둠이 내린 공원에서 휠체어 위의 김씨가 고깔을 쓴 채 감회에 젖었다. “명학이형은 학생이자 활동가로 평등세상을 만들어온 주인공입니다.” 배우고 행동하며 살아온 그의 삶에 대한 동료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김씨는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야학수업을 앞두고 김수지씨가 이혜미씨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야학수업을 앞두고 김수지씨가 이혜미씨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고 있다. /강윤중 기자

 

장애경(왼쪽)씨와 김탄진씨는 부부다. 시설에서 만나 비밀연애를 했다. 10년 전 시설을 탈출해 결혼했다. /강윤중 기자

장애경(왼쪽)씨와 김탄진씨는 부부다. 시설에서 만나 비밀연애를 했다. 10년 전 시설을 탈출해 결혼했다. /강윤중 기자

 

안홍경씨(58)가 활동지원사와 얘기하며 웃고 있다. 안씨는 개인전을 연 화가이다. 팔에 붓을 끼워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안홍경씨(58)가 활동지원사와 얘기하며 웃고 있다. 안씨는 개인전을 연 화가이다. 팔에 붓을 끼워 그림 하나를 완성하는 데 6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강윤중 기자

 

이인성씨(53)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세상’ 다짐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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