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활동소식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 홍은전

by 뉴미 posted Aug 12,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한겨레 [세상읽기]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기사입력2019.08.05. 오후 6:40 

최종수정2019.08.05. 오후 7:00 

0002463583_001_20190806141507761.jpg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3월, 기정(가명)의 어머니가 쓰러졌다. 85살의 어머니는 병원에 실려 갔다가 그길로 돌아오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마흔에 낳은 딸이 마흔다섯이 될 때까지 어머니는 단 하루도 이날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이 이별을 하루라도 더 지연시키는 일. 버티고 버티던 어머니는 별안간 사라졌다. 덩그러니 혼자 남은 기정은 중증 발달장애인이었다. 타인과의 의사소통이 어렵고, 혼자서는 밥을 먹고 씻고 화장실을 가는 일이 불가능했다. 기정이 먼 친척의 부축을 받으며 노들장애인야학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들은 가족이 없는 중증 발달장애인이 시설에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방법을 몰랐으므로 방법을 찾아보자며 노들은 기정의 상황을 서울시 발달장애인지원센터에 접수시켰다. 2015년 시행된 발달장애인법에 의해 센터는 ‘개인별 지원계획’이란 것을 수립해야 했다. 5월, 기정이 사는 광희동, 중구, 서울시의 장애인복지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야학 교사가 말했다. “그 회의가 정말, 절망적이었어요.” 그들이 가져온 개인별 지원계획이란 다름 아닌 ‘시설 입소’였다. 문제는 서울시가 탈시설 정책의 일환으로 2016년부터 장애인시설의 신규 입소를 금지했다는 것인데, 그래서 그들은 정신병원이나 비서울지역 장애인시설을 알아보는 중이라며 자신들의 노력을 강조했다.

무엇보다 절망적이었던 것은 순진하고 무례한 공무원들의 태도였다. 기정에겐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가 필요했다. 그러나 국가 예산으로는 지원할 수 없으니 사비로 쓰도록 하라며, 친절하게 계산기를 두드리며 금액을 알려주더라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냐고 내가 묻자 야학 교사가 대답했다. “한달에 500만원이 넘죠.” 나는 새삼 놀랐다. 그것은 늙은 어머니가 홀로 감당해온 노동의 무게이자 국가가 가족에게 떠맡긴 복지의 무게였다. 그 책임자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가족의 고통을 깎아내리며 말했다. “어머니가 간혹 때렸다고 하던데, 맞고 사는 것보단 시설에 들어가는 게 더 낫죠.”

그사이 기정은 천덕꾸러기처럼 이 보호시설에서 저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낯선 환경에 던져진 기정은 식사를 거부했고 잠을 자지 않았고 소리를 지르며 어머니를 찾았다.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계속 강제로 먹어야 했다. 5월 말, 야학 교사가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기정은 식물인간처럼 무력했다. 음식을 삼키지도 못했고 엉덩이엔 욕창까지 생겨 있었다. 그대로 두었다간 죽거나 정신병원에 가게 될지 몰랐다. “어려울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어요.” 야학 교사가 말했다. ‘방법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는 데 석달이 걸렸다. 그 말은 새삼스럽게 뼈아팠다. 방법이 있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시설에 보냈을까. 방법이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자신도 죽기를 기도했을까.

6월, 방법이 없었으므로 노들은 기정의 손을 잡았다. 함께 살아보기로, 함께 싸워보기로, 그 불확실한 미래에 함께 휩쓸려보기로 한 것이다. 기정은 석달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딸을 위해 만들어둔 누룽지와 매실액, 온갖 약재가 가득한 집에서 기정은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잤다. 노들은 대책위를 꾸렸다. 그리고 24시간 활동지원 계획을 수립했다. 여성 활동가 스무명이 조를 짜 기정의 낮과 밤을 함께 채웠다. 그리고 구청과 서울시에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를 요구하며 싸웠고 드디어 쟁취했다. 7월, 기정은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2009년, 8명의 신체장애인이 시설을 뛰쳐나와 탈시설 권리를 요구하며 싸운 뒤 10년이 흘렀다. 그들이 온몸을 던져서 만든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얻었다. 2019년의 나는 2009년의 내가 결코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에서 살아간다. 2019년의 최전선엔 기정이 있다. 처음 기정이 친척의 부축을 받고 찾아왔다던 그날처럼 나는 노들의 활동가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기정은 어떻게 살아야 돼요?” 폭풍을 함께 견뎌낸 사람들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말했다. “음~ 기정 언니는 일단 밥을 먹어야 해요.” 기정이 어서 건강을 회복하기를, 그리고 노들과 함께 이 사회의 수많은 ‘기정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기를 응원한다.

 

 


  1.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 홍은전

    한겨레 [세상읽기]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기사입력2019.08.05. 오후 6:40 최종수정2019.08.05. 오후 7:00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3...
    Date2019.08.12 Reply0 Views113 file
    Read More
  2.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만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만나다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연대 등록일 2016.11.15 12:04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
    Date2019.01.11 Reply1 Views632 file
    Read More
  3. [고병권의 묵묵] 열두 친구 이야기

    [고병권의 묵묵]열두 친구 이야기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경향신문 오피니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
    Date2018.12.06 Reply0 Views227 file
    Read More
  4. [한겨레] 장애인 시설 밖 생활, 녹록지 않지만 살 만해요

    ?자장애인 시설 밖 생활, 녹록지 않지만 살 만해요 장애인 시설 밖 생활, 녹록지 않지만 살 만해요 입력 2018.11.15 15:43 수정 2018.11.15 17:23 [한...
    Date2018.11.25 Reply0 Views244
    Read More
  5. [경향신문]“처벌 감수하며 불법 집회 여는 건, 무관심보단 욕먹는 게 낫기 때문”

    ? “처벌 감수하며 불법 집회 여는 건, 무관심보단 욕먹는 게 낫기 때문”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입력 : 2018.11.05 18:16:00...
    Date2018.11.25 Reply0 Views173
    Read More
  6. [경향신문 포토다큐] 느리지만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꿔온 노들야학 25년

    [경향신문 포토다큐] 느리지만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꿔온 노들야학 25년 뇌병변장애를 가진 이영애씨(52)가 서울 동숭동 노...
    Date2018.11.25 Reply0 Views209
    Read More
  7. 국회 안에서 쇠사슬 목에 건 장애인들 "예산 확대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국회 안에서 쇠사슬 목에 건 장애인들 “예산 확대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기습 시위&rs...
    Date2018.11.06 Reply0 Views188
    Read More
  8.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등록 :2014-04-08 15:50수정 :2014-04-10 09:36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
    Date2018.08.15 Reply0 Views418
    Read More
  9. "리프트 대신 승강기"…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http://bit.ly/2Men1QE ​​​​​​​"리프트 대신 승강기"…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JTBC] 입력 2018-08-14 21:39 수정 2018-08-1...
    Date2018.08.15 Reply0 Views250 file
    Read More
  10. 선심언니 이야기 - 경과보고

    [긴급 진정 기자회견] 우리 야학학생 선심언니, 살려주세요! 폭염속에 장애인 죽음으로 몰아넣는 복지부 활동지원24시간 보장거부 인권위 긴급진정 기...
    Date2018.08.06 Reply0 Views229 file
    Read More
  11. No Image

    mbc 뉴스투데이_마봉춘이 간다_노들야학 급식마당 행사 :) 소식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214&aid=0000844748&sid1=001 [뉴스투데이]◀ 앵커 ▶ 보통 학교가 문 닫을...
    Date2018.06.08 Reply0 Views250
    Read More
  12.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구형에 대한 나의 항변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구형에 대한 나의 항변 [기고] 장애인 차별에 맞서온 박경석 교장 2년 6개월 구형에 반대하며   등록일 [ 2018년01월15일...
    Date2018.02.19 Reply0 Views520 file
    Read More
  13. 어차피 깨진 꿈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집시법 위반으로 2년6개월 형을 구형받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최종 선고일이 모레로 ...
    Date2018.02.06 Reply0 Views306 file
    Read More
  14. 박경석이라는 계보

    김원영( 변호사·장애학연구자)   박경석이라는 계보   “물러서지 맙시다. 여기서 물러서면 또 수십년씩 집구석에 처박혀 살아야 합니다.”   노들장애...
    Date2018.02.06 Reply0 Views262 file
    Read More
  15.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2018/01/25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2년 6월 구형 받은 장애인 활동가"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노들 장애인...
    Date2018.01.29 Reply0 Views239 file
    Read More
  16. [고병권의 묵묵]‘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3999.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
    Date2018.01.29 Reply0 Views211 file
    Read More
  17. 가두지 마라

    가두지 마라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이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 중인 박경석 교장이 1월9일 집시시위...
    Date2018.01.23 Reply0 Views169 file
    Read More
  18.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등록 :2018-01-08 18:09수정 :2018-01-08 19:02 ​​​​​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장...
    Date2018.01.09 Reply0 Views155
    Read More
  19. 홈리스뉴스 카드뉴스입니다

    Date2017.12.23 Reply0 Views121 file
    Read More
  20. [고병권의 묵묵] 후원자의 무례

    [고병권의 묵묵]후원자의 무례 동정하는 자가 동정받는 자의 무례에 분노할 때가 있다. 기껏 마음을 내어 돈과 선물을 보냈더니 그걸 받는 쪽에서 기...
    Date2017.12.21 Reply0 Views155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노들공간대여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