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활동소식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by 노들야학 posted Aug 15,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등록 :2014-04-08 15:50수정 :2014-04-10 09:36

  • 페이스북
  • 트위터
  • 스크랩
  • 프린트

크게 작게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화재로 질식한 장애여성 활동가 김주영씨의 노제 시위로 2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박승화 기자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화재로 질식한 장애여성 활동가 김주영씨의 노제 시위로 200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박승화 기자
자진 노역 들어간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어떤 사람은 일당 5억, 어떤 사람은 5만원…‘야만스런 법 질서’

 

 

벌금 254억원을 내지 않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원짜리 ‘황제노역’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고 있을 때, 벌금 200만원을 내지 못한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일당 5만원짜리 노역형에 처해졌다. 지난 3월29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그가 4월2일 시민 모금으로 출소하기까지 과정을 기록한 ‘25만원어치 노역 일기’를 <한겨레21>에 보내왔다. ‘벌금의 계급’은 한국 사회 불평등의 심부를 보여준다. _편집자

 

 

3월29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벌금 200만원 때문에 자진 노역한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나는 2012년 10월30일 활동보조인이 퇴근한 집에서 홀로 잠을 자다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질식사(10월26일)한 중증 장애여성 활동가 김주영의 노제를 지내면서 도로의 차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고 수배 상태에 있었다.

 

 

검찰청 직원 “이따위 정책이 어디 있어”

 

 

기자회견을 마치고 검찰에 출두했다. 검찰은 휠체어를 탄 지체장애 1급인 나를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이동시키지 못했다. 나는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리프트 차량의 이용을 요구했고 검찰은 준비하지 못했다며 곤란해했다.

 

검찰청 직원들은 서울시와 경기도 의왕시의 ‘장애인콜택시’에 전화했다. 모두 “이용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울시 장애인콜택시는 서울구치소가 있는 의왕시까지 운행하지 않았고, 의왕시는 며칠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다고 했다. 검찰청 직원은 “이따위 정책이 어디 있어”라며 화를 냈다. 그는 “가까운 인접 도시에 갈 때조차 이용하지 못한다면 무슨 장애인콜택시냐”며 소리 높였다. 검찰 직원조차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허탈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이토록 무관심한 사회를 향해 우리는 2001년부터 13년이나 외치고 있었구나.

 

검찰은 그로부터 4시간이 지나서야 나를 구치소로 옮길 수 있었다. 나를 마중하기 위해 따라온 활동가들을 뒤로하고 구치소의 두꺼운 담을 지나 홀로 철문 앞에 섰다. 혼자 가야 하는 길은 참 외로웠다. 그러한 길이 어찌 구치소에 들어가는 길뿐이겠는가.

 

구치소에 들어가자마자 신원을 확인했다. 머리가 길기 때문에 묶고 있던 머리끈을 포함해 모든 물건을 맡겼다. 벌거벗고 신체검사를 한 뒤 죄수복으로 갈아입었다. 비누와 칫솔, 수건 두 장이 담긴 비닐봉지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비장애인과 달리 나는 오줌통 하나를 더 받았다.

 

토요일 밤 내가 간 곳은 독방이었다. 누워서 팔을 양쪽으로 뻗으면 완전히 펼 수 없을 정도의 크기였다. 발을 뻗고 누우면 발끝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칸막이 없는 좌변기가 있었다. 나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좁아터진 공간의 좌변기는 절대 이용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양쪽 벽면은 스펀지처럼 푹신한 것으로 덮여 있었다. 처음 수감된 사람의 경우 정신적 충격 때문에 자살할 위험이 있어 이런 방에 유치한다고 구치소 관계자는 말했다. 나는 그곳에서 2박3일을 송장처럼 누워만 있었다.

 

모포는 까는 것과 덮는 것 하나씩 주어졌다. 나는 척수장애라는 사실과 장애 상태를 교도관에게 다시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욕창 때문에 수술도 몇 차례 한 상황이라 누워 있을 때 바닥에 모포 하나만 까는 것은 위험하니 침대나 매트리스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말단 교도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래서 세 겹으로 겹쳐 깐 모포 위에 휠체어와 분리된 채 들려서 눕혀졌다. 독방은 원천적으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는 구조였다. 내 휠체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고, 나는 밤새 꺼지지 않는 형광등 불빛 아래서 눈만 깜빡여야 했다.

 

 

3월30일 일요일

 

새하얀 형광등 불빛의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다. 두 눈에 보이는 구치소 독방의 철문 구멍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아침을 먹지 않은 채로 교도관을 불러 다시 한번 부탁했다. 정말이지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내 장애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했다. 괜한 동정을 받는다는 기분과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나는 구치소에서 만나는 교도관마다 내 장애 상태를 반복 설명하면서 생리현상을 해결할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

 

 

‘오줌싸개 교장샘’이라면 어쩌지

 

 

“교도관님, 나는 소변 조절이 자유롭게 되지 않습니다. 잠자는 도중에 소변이 흘러넘쳐서 모포를 적실 수 있습니다. 모포가 젖지 않도록 조치가 필요해요. 흘러넘친 소변 때문에 몸을 씻어주어야 하는데 화장실에는 가기도 힘들고 내가 씻을 수도 없게 되어 있어요. 조치를 좀 취해주세요.”(노들장애인야학에서 이 사실을 알면 나를 ‘오줌싸개 교장샘’이라 할까 쑥스럽다.)

 

교도관은 “오늘은 일요일이니까 내일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앵무새처럼 답했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오늘 당직 책임자에게 지금 흘러넘친 소변을 처리하고 샤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겁니다.”

 

당직 교도관은 “여기가 당신 집인 줄 아냐”고 고함쳤다. “벌금 내면 되지 왜 벌금을 안 내고 사람 귀찮게 하는 겁니까.”

 

머리가 핑 돌고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한참 옥신각신했지만 나는 그저 장애를 핑계로 엄살떨고 있는 한 명의 ‘골통’으로 취급됐을 뿐이다. 모포는 소변에 푹 젖었고 그대로 누워 있기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 한번 요청했다. 잠시 뒤 직급이 조금 높은 사람이 왔다. 그는 문도 열지 않은 채 문구멍에 대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가버렸다.

 

“사소한 것으로 꼬투리 잡아서 귀찮게 하지 마시오. 경고합니다!”

 

경고? 귀찮게 하면 지금보다 더 힘든 곳으로 보내겠다는 뜻인가? 더 힘든 곳은 어디지? 나는 그렇게 방치된 채 2박3일을 지내야 했다. 재소자에게도 인권은 있다. 그래? 개뿔이다. 인권은 무슨 인권.

 

그때부터 나는 밥을 먹지 않겠다고 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교도관들의 비웃음만 돌아왔다.

 

 

3월31일 월요일

 

날이 밝자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진정서를 작성해 접수했다. 교도관은 “지금 진정서를 쓴 수감자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어요. 인권위 직원이 나온다면 아마 당신의 40일 노역이 다 끝난 뒤일 것”이라며 기계적 말투로 접수했다. 이건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막막했다.

 

아침에 면회 온 동지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인권위에 긴급 진정을 부탁했다. 동지들은 “오늘 저녁 노들야학 수업을 아예 구치소 앞에서 현장수업으로 진행한다”고 전해주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고마웠고 힘이 났다.

 

면회를 마치면 의무반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드디어 의사를 만났다. 내가 요구했던 모든 것은 의사의 허락을 받아야 가능했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만난 셈이다. 그러나 그가 조치해준 것은 다른 구치소 방 환경과 똑같은 병동 구치소로의 이동뿐이었다. 여전히 나는 한 마리 짐승으로 방치됐다.

 

 

화재로 질식사한 장애여성 활동가 김주영씨의 노제를 마친 장애인들이 2012년 10월30일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도로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화재로 질식사한 장애여성 활동가 김주영씨의 노제를 마친 장애인들이 2012년 10월30일 ‘24시간 활동보조 보장’을 요구하며 서울 광화문 도로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4월1일 화요일

 

아침에 인권위에서 긴급조사를 나왔다. 구치소 내부의 진정 절차에 따른 것이 아니라, 외부 동지들의 긴급 진정이 받아들여져서다. 나는 인권위 조사관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조사관들은 구치소 소장을 만나보겠다 했고 내가 있는 방도 보고 갔다.

 

 

노역거리 없어 사실상 징역형

 

 

오후에는 구치소 소장을 면담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설명하고 공식적인 사과와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소장은 “사과 문제는 상대적인 것”이라며 “앞으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얼버무렸다. 그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복역 중인 방으로 옮겨졌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구치소에서 욕창 방지용 매트리스를 사다 깔아주었다. 몸도 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노역 없는 노역살이는 고통스러웠다. 휠체어 없이 누워만 있는 시간은 더할 수 없이 괴로웠다. 나는 구치소 입감 첫날부터 노역 일거리를 요청했다. 봉투접기라도 시켜달라고 했으나 구치소 쪽은 일거리가 없다며 거절했다. 한 해 4만 명이 단지 벌금 낼 돈이 없어 노역형을 살고 있다. 하지만 구치소에선 그들에게 시킬 노역거리가 없어 사실상 징역형을 살게 하는 것이 한국 벌금 시스템의 웃지 못할 현실이다.

 

저녁에는 당뇨에 따른 저혈당 증세가 찾아왔다. 더 이상 단식을 이어가기가 버거웠다. 일요일 저녁부터 시작한 3일째 단식을 마무리했다.

 

 

4월2일 수요일

 

나는 시민들의 모금으로 벌금을 내고 5일 만에 구치소를 나올 수 있었다. 5일간의 노역 대가인 25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벌금을 납부했다.

 

나의 구치소 노역 소식을 듣고 126명이 ‘소셜펀치’(www.socialfunch.org/nofain)와 계좌이체로 무려 1084만4533원을 모아주셨다. 이 돈으로 나를 포함해 김주영 노제 과정에서 18명에게 부과된 벌금 1535만원의 상당액을 갚을 수 있게 되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탈세와 횡령으로 부과받은 벌금 254억원 중에서 5일간의 노역으로 25억원을 탕감받았다. 나는 도로 차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부과받은 벌금 200만원 중 5일간의 노역으로 25만원을 탕감받았다. 노역을 많이 살수록 탕감액 격차가 천문학적으로 벌어지는 구조다. 그 구조의 핵심엔 야만스러운 돈 냄새를 풀풀 풍기며 우리를 지배하는 ‘법질서’의 실체가 도사리고 있다. 노들야학이 3월31일 구치소 앞에서 현장수업을 할 때 인디 뮤지션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불러준 <돈만 아는 저질>이란 노래가 있다. 내 귀엔 사법부를 위한 찬송가로 들린다.

 

벌금의 불평등은 헌법 제11조 1항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 위반이라고 아무리 외친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구치소에 간 것은 돈이면 무엇이든 되는 현실과 제도 앞에서 너무 쉽게 ‘평등’을 포기한 채 살고 싶지 않아 세상을 향해 날리는 ‘똥침’이었다. 어떤 상황이 닥치고 어떤 곳에 있더라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싶지 않은 작은 저항의 ‘몸부림’이기도 했다.

 

구치소에서 고병권 선생님이 쓴 <살아가겠다>를 읽었다. 책에는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전태일의 이야기가 나온다.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시장에 나가 등불을 들고 “인간을 찾노라”라고 한 것처럼, 나는 구치소에서 등불을 들고 “평등을 찾노라” 말하고 싶었다. 비록 혼자만의 ‘원맨쇼’로 치부될지라도.

 

 

구치소에서 “평등을 찾노라”

 

 

장애인인권운동을 시작한 이래 법원은 내게 2001년부터 2012년까지 23차례의 벌금을 선고(2874만원 납부)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는 나를 비롯한 90명에게 6845만원을 부과했다. 나를 구치소에서 꺼내준 시민들의 모금은 나를 포함해 장애인운동을 하다 벌금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연대’라고 생각한다. ‘나를 아는 모든 나’, 그리고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에게 부치는 전태일의 유서처럼 ‘그대 영역의 일부’로서 장애인들을 받아들여주길 요청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평등과 연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 아닐까.

 

이제 4월10일이면 또 재판이 시작된다. 김주영이 죽은 해(2012년) 12월2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1박2일을 머물며 ‘높으신 의원님들’께 주영이의 죽음을 알리고 장애인활동보조 예산을 올려달라고 기자회견을 한 일 때문이다. 검찰은 공동주거침입죄로 나와 2명의 장애인을 기소했다. 이미 3명의 장애인에게는 350만원의 벌금이 부과(계속 발생 중)된 상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장애인인권운동 벌금 모금: 국민은행 477402-01-195204(박경석)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31763.html#csidx0b25007843d401ea13eaaa7cf4a0c52 


  1.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등록 :2014-04-08 15:50수정 :2014-04-10 09:36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
    Date2018.08.15 Reply0 Views128
    Read More
  2. "리프트 대신 승강기"…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http://bit.ly/2Men1QE ​​​​​​​"리프트 대신 승강기"…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JTBC] 입력 2018-08-14 21:39 수정 2018-08-1...
    Date2018.08.15 Reply0 Views54 file
    Read More
  3. 선심언니 이야기 - 경과보고

    [긴급 진정 기자회견] 우리 야학학생 선심언니, 살려주세요! 폭염속에 장애인 죽음으로 몰아넣는 복지부 활동지원24시간 보장거부 인권위 긴급진정 기...
    Date2018.08.06 Reply0 Views76 file
    Read More
  4. No Image

    mbc 뉴스투데이_마봉춘이 간다_노들야학 급식마당 행사 :) 소식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214&aid=0000844748&sid1=001 [뉴스투데이]◀ 앵커 ▶ 보통 학교가 문 닫을...
    Date2018.06.08 Reply0 Views86
    Read More
  5.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구형에 대한 나의 항변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구형에 대한 나의 항변 [기고] 장애인 차별에 맞서온 박경석 교장 2년 6개월 구형에 반대하며   등록일 [ 2018년01월15일...
    Date2018.02.19 Reply0 Views310 file
    Read More
  6. 어차피 깨진 꿈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집시법 위반으로 2년6개월 형을 구형받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최종 선고일이 모레로 ...
    Date2018.02.06 Reply0 Views150 file
    Read More
  7. 박경석이라는 계보

    김원영( 변호사·장애학연구자)   박경석이라는 계보   “물러서지 맙시다. 여기서 물러서면 또 수십년씩 집구석에 처박혀 살아야 합니다.”   노들장애...
    Date2018.02.06 Reply0 Views146 file
    Read More
  8.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2018/01/25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2년 6월 구형 받은 장애인 활동가" -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노들 장애인...
    Date2018.01.29 Reply0 Views120 file
    Read More
  9. [고병권의 묵묵]‘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내일’을 빼앗긴 그들의 4000일         3999. 어떤 날을 거기까지 세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최강 한파가 덮친 지난 금요일, 세종로공원 한편...
    Date2018.01.29 Reply0 Views118 file
    Read More
  10. 가두지 마라

    가두지 마라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이며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활동 중인 박경석 교장이 1월9일 집시시위...
    Date2018.01.23 Reply0 Views113 file
    Read More
  11.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세상 읽기] 비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 홍은전 등록 :2018-01-08 18:09수정 :2018-01-08 19:02 ​​​​​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장...
    Date2018.01.09 Reply0 Views71
    Read More
  12. 홈리스뉴스 카드뉴스입니다

    Date2017.12.23 Reply0 Views63 file
    Read More
  13. [고병권의 묵묵] 후원자의 무례

    [고병권의 묵묵]후원자의 무례 동정하는 자가 동정받는 자의 무례에 분노할 때가 있다. 기껏 마음을 내어 돈과 선물을 보냈더니 그걸 받는 쪽에서 기...
    Date2017.12.21 Reply0 Views75 file
    Read More
  14.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어느 날 나는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서울로 7017’ 위에 ...
    Date2017.12.21 Reply0 Views27 file
    Read More
  15.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경향] 장애인단체 대표, 서울 중부경찰서 화장실서 점거농성 벌인 까닭 이재덕 기자 duk@kyunghyang.com 입력 : 2017.11.01 14:14:00 수정 : 2017.11.0...
    Date2017.11.01 Reply0 Views88 file
    Read More
  16. [세상 읽기] 선감도의 원혼들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1974년 열세 살의 이상민(가명)은 청량리역에서 신문팔이 생활을 했다. 어느 날 역전 파출소 경찰들이 마구잡이로 ...
    Date2017.10.23 Reply0 Views32 file
    Read More
  17. [고병권의 묵묵] 약속

    [고병권의 묵묵]약속기사입력 어떤 사람들은 시설이 그렇게 끔찍한 곳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시설을 함께 둘러보던 사람 중에는 시설이 생각보다 깨...
    Date2017.08.27 Reply0 Views86 file
    Read More
  18.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 홍은전

    [세상 읽기] 그 사람 얼마나 외로웠을까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그날 박진영씨가 종이에 뭔가를 써와서는 세 부를 복사해 달라고 ...
    Date2017.07.18 Reply0 Views84 file
    Read More
  19.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세상 읽기]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다 등록 :2017-06-19 19:49수정 :2017-06-19 19:54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동네에 현수막을 걸었다. &ls...
    Date2017.06.23 Reply0 Views81 file
    Read More
  20. [고병권의 묵묵] 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의 묵묵]우리 안의 수용소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고려대 민연 연구교수 입력 : 2017.06.04 21:17:01 수정 : 2017.06.04 21:...
    Date2017.06.23 Reply0 Views70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Next
/ 3
노들공간대여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