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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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수업을 한 학기 했다. 수업은 시설과 지역사회에서 거주하는 발달장애인분들과 일주일에 한 번 버스를 타보고, 시장에 가보고, 극장이나 놀이공원, 수족관, 박물관에 가보는 체험 수업이었다.

 

나의 짝꿍은 김현장(가명) 형이었다. 나이는 40대 초반. 나보다 몇 살 위였다. 나는 현장형과 짝꿍인 것이 좋았다. 현장형이 그 날 그 날 체험에 대한 소감을 들려주는 것이 특히 그랬다. 디즈니 박물관에 가서 오늘 뭐가 기억에 남으세요?” 라고 물으면 라이온 킹.” “다른 것들보다 라이온 킹이 특히 멋있지.” 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덕수궁에 가서는 덕수궁, 고종황제가 왕에 오르고 여기서 덕혜공주를 낳았지.”라고 몇 번씩 말했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소개하면 재밌다 덕수궁”,“그랬구나”,“신기해라고 답해주었다. 미술관에서도, 극장에서도, 연극 공연장에서도, 수족관, 놀이공원에서도 여기는 처음이야. 이런 곳에는 처음 와 보네. 우와 너무 신기해. 너무 재밌어.” 라고 말하곤 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시설에 있던 형에게 처음으로 어떤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왔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 매주 매번 듣게 되다 보니 정말 이렇게 까지 나와 본 적이 없어도 되는 건가싶은 답답함도 곁들었다.

 

현장이형과 짝꿍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을 꼽으면 그건 피플 퍼스트 대회에 갔을 때였다. 행사가 시작하고 주제발표시간에 형은 친구들이 많이 왔네.” 라고 하며 주위를 관찰했다. 적극적으로 손을 들며 토론에 참가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그 다음 순서. 무대에 올라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내가 몇 번씩 형 하고 싶어요? 올라가실래요?” 라고 할 때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유미샘이 올라가서 발표해보세요. 잘 하실 것 같은데.” 라고 몇 번 부추기자 몇 번의 망설임 끝에 형은 갑자기 무대 쪽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대에 올라가서는 투쟁이라는 짤막한 말을 남기고 내려왔다. 정말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이었다. 이후로 형은 공연자들의 노래에 따라 춤을 췄다. 자주 무대로 달려 나갔다. 그 날 너무 재밌잖아라는 말을 수십 번은 넘게 들은 것 같다. 발표 이후 그 소리를 자주 들었다. 나는 용기 내어 여러 사람 앞에서 말을 하고 돌아온 것이 너무 재밌잖아의 직접적인 이유 같았다. 형 뿐 만이 아니었다. 발표를 하러 손을 들고, 무대 위에 올라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무대 위 아래에서 어울려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발달장애인들의 모습에 나는 피플퍼스트가 만든 자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경험은 또 있다. 연극을 보러 갔을 때 였다. 공연 안에서 연극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집 월세는 어떻게 내고 앞으론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까를 노래로 부르고 있었다. 이때 연극에 몰입한 현장형은 배우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걱정 하지마.” 형은 진지했다. 나는 일단 좀 웃기면서도 당황도 됐다. 다행히 형의 말이 그렇게까지 공연의 흐름을 깨진 않았다. 연극이 잠시잠시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의 극이어서 관객들도 형의 반응에 그렇게까지 놀라지 않았던 것 같다. 이 날 나는 연극 공연을 함께 보는 것은 어느 정도 소리를 내도 좋고, 약간의 반응이 가능한 야외 공연을 이용하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조금은 산만해도 괜찮은” “소통이 가능한공연무대가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좋고 재밌었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번은 하늘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형이 갑자기 심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고 격앙되게 손사래를 쳤다. “너무 많잖아 사람이!” 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다른 선생님이 형을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한참을 걷고 나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 이건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그런 모습은 또 처음 봤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자 현장형은 다시 하늘공원은 처음이지.”를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이유는 많은 계단과 사람들 때문이었다. 나는 이 날 형이 많은 계단과 많은 사람에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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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체험 짝꿍은 미숙씨(가명)였다. 미숙씨와는 그녀가 사는 시설에서 체험학습을 하는 곳까지 버스를 타고 오는 체험을 했다. 나는 미숙씨가 도전행동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버스를 처음 함께 탔을 때 나는 바짝 긴장했다. 미숙씨가 돌발행동을 할까 하는 걱정에서 였다. 막상 버스를 탔을 때는 앞에 있는 사람 머리카락을 만지려고 한다든지, 화장실에 가야한다면서 불안에 떤다든지, 버스에서 내릴 때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었다. 큰일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긴장해서 작은 일도 크게 반응한 내 몸과 함께 미숙씨는 잘 와준 것 같다. 두 번, 세 번 그렇게 함께 하는 횟수가 늘자 내 몸도 적응해갔다. 무엇보다 미숙씨가 내가 말을 하면 오래 걸리더라도 그 말 대로 움직여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장수술로 걷기가 빠르게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좀 더 천천히 걷고 설명을 차근차근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미숙씨가 버스를 내리려고 할 때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쳐다보곤 했는데 뭐 이게 별 일인가싶었다. 조금만 기다려주면 되는 일이었고, 조금 일찍 버스에서 내리는 것을 준비하면 되는 일 이었다. 어느 덧 버스 타기는 조금씩 안정화 되었다. 긴장도 줄고 버스 타기가 어려움이라는 생각도 변했다. 내 몸도, 미숙씨도 새로운 체험에 적응해갔다. 그리고 미숙씨가 어떤 모습을 보일 때 도전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도 동료들과 공유했다

 

그렇게 훌쩍 6개월간의 체험학습이 끝났다. 낯선 체험 수업은 학생분 들만의 몫은 아니었다. 나 역시 낯선 몸들을 알아갔던 시간이었다. 혼자서 중얼거린다거나, ‘...’ 하는 소리를 계속해서 낸다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휴지통에 침을 뱉는다거나, 알 수 없는 맥락의 질문을 건넨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말도 없이 어디론가 뛰어간다거나 등등 처음에는 학생 분들의 면면들을 알아가는데만 해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렇게 그렇게 시간을 함께 하면서 보고 들었던 것들이 있다. 재영씨(가명)에게 나는 다른 말들은 거의 듣지 못했는데 햄버거라는 말은 분명하고 큰 소리로 들었다. 체험학습에서 외식은 정말 인기였다. 미숙씨는 만나면 오늘은 어디가요?” “오늘은 뭐 먹어요?” 라는 말을 하곤 했다. 유람선을 타며, 미숙씨가 혼자서 자유롭게 노래를 흥얼거리던 모습도 기억이 난다. 승기형(가명)은 가는 곳곳 어느 곳이라도 자신의 무대로 만들며 시원하게 노래 한 자락을 제껴 부르곤 했다. “버스 또 타요? 버스 타는 연습 하고 싶어요.”를 수시로 말하던 분도 있었다. 현장형은 매시간 엄청 재밌어. 여긴 처음이야.”라는 돌림노래를 하곤 했다.

돌발 상황에 대한 노하우도 배웠다. 화가 갑자기 나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분은 좋아하는 노래 반주를 틀어 따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을 갖게 한다든지, 중얼거림이 심하거나 짜증나는 일에 몰두하게 되었을 때는 주제를 바꾸어 이야기를 시도한다든지, 어딘가로 갑자기 뛰어가는 습관이 있는 분은 연락처가 담긴 조끼를 입고 체험학습을 시작하기도 했다.

 

그간 발달장애인들의 몸에 대해 참 모르고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리고 왜 좀 더 일찍 발달장애인들의 몸(정말 수많은 경우가 있겠지만)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은 없었던 것일까 묻게 됐다. 나와 우리에게 발달장애인들의 몸과 함께 하고 알아가는 시간과 환경이 보다 많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한 한기 체험동안 다른 풍경을 봐서 기쁘고, 못 먹어보던 음식을 먹어 너무 좋다는 말을 곁에서 들었다. ‘앞에 나와 얘기를 나누고, 노래 부르고, 춤 출 수 있어 기쁘다는 말을 몸으로 전해 들었다. 한 건물에 갇혀서 급식만을 먹고, 맨날 보는 것만 보며 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가족에게만 떠맡기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함께 알아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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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지킴이 2020.06.05 13:19
    글 잘 읽었어요 재미있네요.. 몸과 생각이 분리되지 않고, 몸이 공간에 갇치고, 그만틈 사고하게 되고, 공간이 달라지만, 그 만큼 생각하게 되는것 같아요. 시간, 관계, 공간, 알아감 우리를 이해하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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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수 2020.06.13 19:22
    삐빅!!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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