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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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선 들을 수 없는 말

 

 

내가 경험해 본 격리생활은 2년간의 군 생활이다. 군에 들어가 네 달이 지났을 무렵 나는 전방으로 가게 됐다. 해안바닷가 산꼭대기 낙후된 초소. 맘 놓고 쓸 수 있는 전화기도 없었다. 3개월 정도 가족, 친구들과 연락을 못하니 내 몸뚱이가 온전히 이곳에 내맡겨진 기분이 들었다. 생활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밀려왔다. 매일 매일 자기성취와는 무관한 일들. 그렇다고 딱히 보상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 상황. 단지 감옥엔 갈 수 없어 들어온 곳에서 나갈 날짜 세는 것이 공통의 희망이었다. 스무 명 남짓의 남성들을 외진 바닷가에 붙잡아 놓고 위계질서 아래 살게 하니 스트레스를 못 참는 사람도 생겼다. 탈영시도와 성폭행 사건도 발생했다. 휴가를 나오면 나는 눈 맞는 강아지 마냥 집에 들려 재빨리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미리 연락해 놓은 친구들을 만났다. 안에서 먹을 수 없었던 음식들을 먹고, 못 살게 굴던 선임병 욕도 하고, 재밌었던 일화들을 실컷 떠들어 댔다. 밥을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만나고 싶은 친구를 만나고, 정해진 시간에 해야 하는 구보 대신 내가 하고 싶은 조깅을 할 수 있다는 거, 정해진 어투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들을 하며 크게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 그렇게까지 눈치가 안 보이는 것. 그것이 그렇게나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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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에서 40년. 어느 사람들이 시설에 격리되어 산 해의 숫자다. “여기서 100년을 넘게 산 것 같아” 한 시설 거주인에게서 내가 들은 말이다. 나는 그의 경험을 오롯이 체감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아직도 군 생활 2년을 다른 때보다 몇 십 배 더 길게 느끼는 것처럼 그 분도 그 때의 그 시간들이 뭘 해볼 수 가 없었던 시간들, 붙잡혀 있던 시간들, 일어나도 좀처럼 가지 않는 시간들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나는 여기서 무기징역을 살았습니다.” “이유 없이 잡아와놓고 40년 동안을..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는 겁니까?”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고 싶지)” 내 귀로 똑똑히 들은 말들이다. 대부분 가족이 없거나 장애가 있는 분들이 오랜 기간 갇혀 지내야 했다.
 
갇힌 것은 몸 뿐만이 아니었다. 꿈도 갇혀 버렸다. “나가면 무얼하고 싶으세요?” 라고 물으면 지금 몸으로는 불가능할 법만 30년, 40년 전 시설에 들어오기 전에 해봤던 일들을 꺼내놓으신다. 시설 안에서 “뭘 해볼 수 있겠다” 거나 “나가서 뭘 해보고 싶다”고 만드는 체험이 없었던 까닭일 터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종종 ‘탈 시설 욕구 조사’라는 말로 거주인들에게 다가가야 할 때 일종의 뻔뻔함을 느낀다. 우리의 ‘무관심’, ‘준비되지 않음’을 그들의 ‘비욕구’라는 말로 살그머니 감추는 말처럼 느낀다. 시설생활을 정말 참다 참다 못 견디겠는 사람이 누구인지 묻는 말이어서 그렇다. 개인의 의사 중요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욕구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처음엔 안 나간다고 손사레를 치던 분들도 “이제는 활동 보조인이 몇 시간 함께 할 수 있다. 주택이 가능하다. 같은 장애 정도로 바깥에서 살고 있는 다른 형들이 있다”고 하면 굳은 확신도 “이래도 괜찮냐” “시간은 어디서 몇 시간 나오냐” 라는 물음으로 바뀐다. 다시 들어보자고 한다. 감금과 격리, 동정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오고 싶으세요? 안 나오고 싶으세요?” 라고 묻는 것은 “여기가 죽기보다 싫진 않으시죠? 견딜 만은 하시죠?” 라는 물음과 다르지 않다. 

 

격리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장애가 있어 가족들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경우, 나이가 많고 나가도 혼자 살아야 하는 경우였다. 나는 이 분들에게서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끝났다.” “(자기 팔과 다리를 가르키며) 이게 이런데..”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볼 거고” 정말 어쩔 수 없어 시설을 찾은 사람들이 많겠지만 나는 그럼에도 이런 말들은 다름아닌 바로 시설이 낳고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나는 탈 시설한 장애인들에게서 “힘들다” 소리는 들었어도 이런 자기포기의 말들은 듣지 못했다.   

시설. 사회에서 “버려진” 이라는 낙인을 들고 살아야하는 격리생활은 자기포기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제 아무리 시설 근로자가 선하고 좋은 뜻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안의 사람들에게 줄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편견에 맞설 수 있는 힘. 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것. 그런 것들을 해나갈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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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 사람들을 만났던 날. 저녁을 먹다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자기와 같이 살고 있는 형들의 대단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고. 무슨 말인가 싶어 들어보니 자기가 아는 한 형은 오늘 시설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장애 정도는 더 심하고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몇 십년간 살던 시설에서 나오겠다고 결심도 하신 거고, 그 동안 밟아보지 못한 지하철도 사용하시는 거고, 자립주택생활도 새롭게 하고 계시는 거라 생각하니 참 ‘대단하다’ 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는 거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빨리 시설에서 나가서 내가 잘 몰라봤던 그 일상의 말들을 다시 듣고 싶었다. “지하철을 어떤 것을 타고 왔다, 내 집은 어딘데 어떻게 왔다, **을 해보면 어떨까, 요즘은 뭘 해보고 있어” 라는 말들. 이 말들이 한 형에게는, 한 친구에게는 몇 십 년만의 탈출이 낳은 말. 자기를 규정하고 가르던 그 척도를 움직여 일으킨 말이라 생각이 드니 다시금 그 말들을 느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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