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세상 일기] 나의 깃발 / 홍은전

by 어깨꿈 posted Apr 27,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세상 읽기] 나의 깃발 / 홍은전

 

등록 :2016-04-25 19:05

 

 

야학 학생 김아무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그의 장례가 끝난 직후였다. 갑작스런 부음도 믿기 어려웠지만, 그가 이미 화장되어 납골당에 안치되었다는 사실에 우리는 모두 할 말을 잃었다. 3일 전 그는 소주 세 병을 마신 후 축 늘어진 채 잠이 들었고 그날 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그의 죽음을 발견한 활동보조인은 충격에 빠져 어찌할 줄 몰랐다 했고, 가족들은 그가 ‘혼자’의 몸이었으므로 빈소를 차리지 않으려다가 기초생활수급자 장례지원단의 설득으로 삼일장을 치렀다고 했다. 그리고 하필 그날 그의 핸드폰이 켜지지 않았다고 했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우연들이 겹쳐 그는 15년을 함께 보낸 벗들과 단 3일의 이별의식조차 갖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2001년 그를 처음 만났다. 뇌병변 장애인인 그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술에 취해 자신을 때리던 형제에 대한 상처가 있었다. 열아홉에 복지관에 나가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속도가 더딘 그는 거기서도 배제되었다. 장애인의 날, 직원들이 장애인들의 머릿수를 센 후 차에 태워 올림픽공원에 풀어놓는 걸 보고 ‘천사 짓’을 그만두었다고 했다. 서른이 되어 야학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그가 원했던 건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하는 법을 찾는 것’이었다. 술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글은 좀처럼 늘지 않았으나 누구보다 배움을 갈구했다. 몇 년 전 독립했고 술을 많이 먹었고 자주 넘어졌다. 상처를 달고 살았다.

 

 

만날 때마다 낄낄대며 타박했던 그가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그의 죽음이 적나라하게 깨우쳐주던 밤. 후회인지 그리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어린아이처럼 목 놓아 울었다. 그는 술을 끊었다가 얼마 전부터 다시 먹었다고 했다. 빈속에 부어댄 술의 숙취보다 끔찍한 것은 자꾸만 실패하는 못난 자신을 견디는 일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야학에 왔던 날, 그는 몸이 아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그 아픈 몸에 3일 동안 술을 부었다. 작은 방 한켠에 축 늘어진 채 잠들어 있는 그의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슬펐다. 그들의 삶을 모르지 않았다. 알면 알수록 감당하기 어려웠으므로 열심히 도망치듯 살아오지 않았나. 그러나 안다고도 할 수 없었다. 알았더라면 그 삶에 그토록 함부로 훈수를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뒤늦게 마련된 추모제에서 영상 속 그를 보았다. 그는 니체를 읽었고, 연극을 했다. 텃밭에 가서 열무를 뽑았고, 초등학교에 가서 인권 교육을 했다. 그것들은 모두 학생들의 깊은 무기력과 냉소, 우울과 싸워보겠다고 교사들이 기를 쓰고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당시의 기쁨과 희망, 짜증과 실망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우리는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빛나는 추억을 보고 있었으나 동시에 그가 홀로 견뎌야 했을 외로움과 공허, 환멸의 깊이를 보고 있었다. 그의 삶이 밑 빠진 독 같았다. 일개 야학의 노력으로는 결코 채울 수 없는 거대한 결핍. 그에겐 왜 그만큼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았나.

 

 

뒤늦게 새로운 삶을 꿈꾸며 그들은 가족과 시설로부터 자립했다. 그러나 가족에게 소외되고 학교로부터 거부당하고 일자리를 얻지 못해 생긴 그들 삶의 거대한 공백은 몇 개의 복지 프로그램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사방이 꽉 막힌 삶. 그는 출구의 열쇠를 얻고 싶어 했다. 야학을 한다는 건 그와 함께 니체를 읽고 연극을 하며 열쇠 찾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었고, 우리에게 장애인 운동이란 기어이 출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4월7일, 우리의 깃발 하나가 사라졌다. 무력함을 견디며 쓴다.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6 이재용이 증여세16억내고 수십조원 벌어들인방법, 국민연금은이재용돈, 주주는호구, 사라진국민연금, 이재용왕국 file 천사자 2019.02.16 1543
295 갈매기의 상상 조박사 2018.11.30 1575
294 자작시 정의로운 촛불 뭐시중한디?자유 2017.03.20 1578
293 제9회 “뽀꼬 아 뽀꼬” 음악회 관람 안내 file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 2018.09.21 1599
292 날씨는 넘나 좋아요! 미미 2019.02.28 1603
291 연극작품공모 file 심슨 2017.04.04 1604
290 안녕하세요 왈왈 2019.03.11 1605
289 어미품 조호연 2019.03.13 1610
288 고양이자랑~ file 나람이 2019.02.16 1611
287 안녕하세요 최재후 2019.02.26 1613
286 미세 먼지 팔미온 2019.01.24 1627
285 가입인사올립니다. 1 나람이 2019.01.30 1628
284 오늘 지은 시입니다. 조호연 2019.03.01 1630
283 영어 울렁증 극복 순간 미미 2019.02.21 1641
282 (미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o^ file 큰별이될여인 2018.12.27 1642
281 삼성장소돈제공, 손녀딸같은4명과성관계, 4명과동시에합궁, 2천만원에4대1, 네키스때문에오늘XX했어, 오각관계 file 천사자 2019.02.16 1643
280 간만에 파란하늘 너무 좋습니다~!! file 미미 2019.03.13 1651
279 자기관리 쏭바강 2019.03.14 1653
278 오늘의 명언 나람이 2019.03.01 1654
277 고기 안굽는 사람 특징 미미 2019.02.21 1657
276 유전무죄 무전유죄 팔미온 2018.12.06 1665
275 비오는날 맛탕 미미 2019.03.20 1671
274 감기몸살.. 최재후 2019.03.11 1677
273 메리~ 크리스마스^^ file 큰별이될여인 2017.12.12 1678
272 제9기 장애인연극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file 심슨 2017.04.04 1689
271 얼마만의 비인가요! 1 미미 2019.03.15 1693
270 목련이 피었습니다 file 미미 2019.03.27 1700
269 메리~ 크리스마스^^ file 큰별이될여인 2018.12.13 1704
268 안녕하세요? 방재환 입니다. 1 방심핫팀 2017.07.26 1706
267 오늘의 명언 나람이 2019.03.13 170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