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philokalia posted Jan 03,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새해를 맞아 시한편 올립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우리를 위하여.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陶淵明)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Comment '2'
  • profile
    노들야학 2016.01.03 17:18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가득찬 2016년이랍니다.
  • profile
    핀순 2016.01.03 19:16
    아...

    새해 행복 많이 받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3 새 책! 『벤저민 레이 ― 노예제 즉시 폐지를 최초로 주창한, 12년간 선원이었던 작은 거인의 파레시아』 마커스 레디커 지음 갈무리 2021.12.31 4626
142 얼른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어요.ㅠ 나람이 2022.01.26 641
141 새 책! 『감각과 사물 ― 한국 사회를 읽는 새로운 코드』 김은성 지음 갈무리 2022.01.27 618
140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세요~~~~~~~^^♡♡♡ file 가야금을타는신사임당 2022.01.30 615
139 초대! 『벤저민 레이』 출간 기념 마커스 레디커 전 지구 인터넷 화상 강연회 (2022년 2월 19일 토 오전 11시) 갈무리 2022.02.06 588
138 [연세대학교] "고기능자폐스펙트럼" 청소년/성인 분노조절 개선 인지행동치료 앱 프로그램 참가자 모집중 file 연세대학교디지털정신건강연구실 2022.02.23 805
137 새 책! 『예술과 객체』 그레이엄 하먼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2.03.01 670
136 [모집] 가온장애인자립생활센터 마이스토리텔링 참여자 모집 file 포도송이 2022.03.04 597
135 초대! 『감각과 사물』 출간 기념 김은성 저자 강연회 (2022년 3월 13일 일 오후 3시) 갈무리 2022.03.07 631
134 초대! 『예술과 객체』 출간 기념 그레이엄 하먼 전 지구 인터넷 화상 강연회 (2022년 4월 17일 일 오후 1시) 갈무리 2022.03.19 702
133 오늘의 명언 나람이 2022.04.27 627
132 오늘의 명언 나람이 2022.05.07 598
131 새 책! 『질 들뢰즈의 사변적 실재론 : 연속성에 반대한다』 아연 클라인헤이런브링크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2.05.11 684
130 2022년도 어느새 반이 지나갔어요 qwwheons 2022.05.24 673
129 [인권연대 기획강좌] “기후-생태위기 시대의 인권” 인권연대 2022.05.30 599
128 [인권연대 기획강좌] 산업재해 기본교육과정 file 인권연대 2022.06.02 614
127 [인권연대 기획강좌] 오항녕 교수의 <조선 역사, 또 다른 세상> file 인권연대 2022.06.07 583
126 [인권연대] 제 19기 청년인권학교 file 인권연대 2022.06.14 618
125 곧 장마가 시작됩니다 희경이 2022.06.23 3285
124 흔들리며 피는 꽃 김민희1 2022.06.25 625
123 [인권연대] 제 19기 청년인권학교 file 인권연대 2022.07.12 628
122 [인권연대] 이희수 교수의 <인류본사> 강연: 중동-오리엔트 문명, 인류 문명의 뿌리를 찾아서 file 인권연대 2022.07.18 630
121 새 책! 『임상노동 ― 지구적 생명경제 속의 조직 기증자와 피실험대상』 멜린다 쿠퍼·캐서린 월드비 지음, 한광희·박진희... 갈무리 2022.08.04 1857
120 [활동가 채용공고] 인권연대와 함께 할 상근활동가를 모집합니다 (8/19 마감) file 인권연대 2022.08.10 580
119 초대! 『임상노동』 출간 기념 멜린다 쿠퍼, 캐서린 월드비 저자 화상 강연회 (2022년 10월 8일 토 오후 3시) 갈무리 2022.08.27 581
118 코로나백신 후휴증으로 고생했는데 독감예방 접종해야하나 정한결 2022.10.22 620
117 새 책! 『에일리언 현상학, 혹은 사물의 경험은 어떠한 것인가』 이언 보고스트 지음, 김효진 옮김 갈무리 2022.10.22 533
116 초대! 『종과 종이 만날 때』 출간 기념 최유미 역자 화상 강연회 (2022년 11월 6일 일 오후 3시) 갈무리 2022.10.23 559
115 오늘 날씨는.. 권형호 2022.11.10 509
114 [인권연대] 제24기 청년인턴 모집 file 인권연대 2022.11.11 52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