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상반기 심사를 앞두고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인권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내놨으나 시민단체는 여전히 ICC 권고사항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ICC 승인소위원회 심사에서 지난해 3월, 10월 두 차례에 걸쳐 ‘등급 보류’ 판정을 받고 올해 상반기 또다시 등급 심사를 앞두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은 사실상 ICC 상반기 심사 소위를 '무사통과'하기 위해 내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인권위원 자격기준, 인선절차 등을 비롯해 ICC 권고로 신설된 면책 조항의 내용 역시 권고 의도와는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번 개정안에서 인권위는 ICC 권고를 수용해 인권위원의 선출 또는 지명되는 이들의 자격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대학이나 공인된 연구기관에서 조교수 이상의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판·검사 또는 변호사 직에 10년 이상 있거나 있었던 사람, 인권분야 비영리 민간단체·법인·국제기구 등 인권 관련 활동에 10년 이상의 경력이 있는 사람 등을 자격 기준으로 했다.
인선 절차에 대해서는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은 인권위원을 선출 또는 지명하는 절차에서의 광범위한 협의 및 참여를 위해 다양한 사회계층이 후보를 추천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인권 보호와 향상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계층의 대표성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개정안은 앞으로 인권위원장 뿐만 아니라 상임위원도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 선출·지명하도록 했다. 여성 위원 임명은 기존 4명 이상에서 5명 이상으로 수정됐다.
ICC 권고에 따라 면책 조항도 신설됐다. 위원회 구성원의 정당한 직무수행 보호를 위해 인권위원은 직무상 행한 발언·의결에 대하여 위원회 외에서 책임지지 않는다고 명시했으며, 인권위원과 위원회 소속 직원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한 직무수행 중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 제자리찾기 공동행동 명숙 활동가는 이번 개정안도 여전히 부족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명숙 활동가는 “자격 기준에 판·검사, 변호사, 교수 경력 10년이라고 명시한 것은 엘리트주의로, 이는 다원성과 어긋난다”며 “다원성이란 다양한 계층을 의미하는 것으로 (위원회 구성의) 다원성에 대해 인권위는 잘못 이해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인선 절차에 대해서도 “좋게 말하면 (위원 선출·지명 권한이 있는 국회, 대통령, 대법원에) 재량권을 준 것이고 나쁘게 말하자면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 신설된 면책 조항에 대해서도 “위원은 위원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의결에 관하여 위원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는 조항은 삭제되어야 한다”라고도 주장했다.
명숙 활동가는 “위원회에서 위원이 차별적 발언을 하거나 잘못된 의결을 했을 땐 인권위 진정 등을 통해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한다”라면서 “ICC가 권고한 의도는 인권활동과 관련하여 불이익을 받지 말라는 것인데 ‘위원회 외에서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은 앞으로 무책임성을 보장받겠다는 것”이라고 질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