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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18:53:54


  기어가는 ㄴㅁ    

2012.6.27. 기어가는 ㄴㅁ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 <조짐> 다시쓰기와 발제

“나 내게 주어진 과업을 향해, 나의 대낮을 향해 나아가련다.” 아침이 되자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차라투스트라는 동굴 밖으로 나왔다. 지난 밤을 함께 보낸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은 아직도 잠에 빠져 있다. 그들은 차라투스트라가 지나온 ‘깊디깊은 밤’을 되씹는 꿈을 꾸며 잠들어 있다.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짐승들은 잠에서 깨어나 그의 곁에서 사랑을 표한다. 날짐승들은 하늘이 검을 정도로 빽빽하게 그의 머리 위를 뒤덮듯이 날아오고, 갈기 무성한 사자는 그의 곁에 엎드려 울부짖는다. “조짐이 나타나고 있구나.” 짐승들의 천진한 사랑을 받은 차라투스트라는 한 차례 눈물을 쏟은 뒤 마음이 평온해진다. 짐승들도 마찬가지다. 이 상태로 고요한 시간이 흐른다.

그사이에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 잠에서 깨어나 차라투스트라에게 아침 인사를 하기 위해 동굴 밖으로 향한다. 이들의 발소리가 동굴 안에서 울리자, 차라투스트라 곁에 있던 사자가 놀라 동굴을 향해 포효하며 돌진한다. 이에 인간들은 혼비백산하여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가 숨는다. 동굴 안에서 방금 일어난 일을 생각하며 차라투스트라는 어제부터 오늘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를 돌이켜 본다. 그리고 예언자가 자신에게 말한 ‘마지막 죄’에 대해 생각한다. 내게 어떤 마지막 죄가 남아있다는 말인가? 자신의 내면으로 빠져들어 생각하던 그는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외친다. “그것은 연민이다!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에 대한 연민이다!” 그리고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좋다! 그것도 이제 끝이 났으니!” “나의 아침이다. 나의 낮의 시작이다. 솟아올라라, 솟아올라라, 너, 위대한 정오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하고는 그의 동굴을 떠난다. 컴컴한 산에서 솟아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불타는 모습으로 늠름하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끝

 

차라투스트라는 동굴을 떠났다. 여정에서 만난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까지 버리고 그는 그의 ‘과업’을 위해 다시 길을 떠난다. 그는 왜 그토록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에 대한 연민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나는 차라투스트라가 길에서 만난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이, 차라투스트라 안에 있는 차라투스트라의 여러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왕, 실직한 교황, 고약한 마술사, 제 발로 거렁뱅이가 된 자, 나그네, 자신의 그림자, 늙은 예언자,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 더없이 추악한 자가 드러내는 모습, 그 찌질한 모습들은 차라투스트라 안에 그리고 내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 아닌가. 내가 극복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 말이다. 그동안 차라투스트라가 이들을 만나며 보인 고통, 거부감, 혐오감은 자신이 벗어나고자 하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대면하지 않고 지나칠 수 없어 더 심각했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갖는 연민을 어떻게 쉬 떨쳐낼 수 있으랴. 그렇기에 그것이 그에게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마지막 유혹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니체는 그의 사랑하는 짐승들과 함께 동굴을,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을 벗어난다. 그의 짐승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자유롭고자 하는 정신의 표상인가? 짐승이 무엇이든, 나는 짐승 역시 차라투스트라 안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그가 가장 사랑하는 어떤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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