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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현, 그의 못 다한 열 걸음을 위하여

by 어깨꿈 posted Apr 18,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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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현, 그의 못 다한 열 걸음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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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희생자 故송국현 1주기의 풍경
2015.04.17 22:07 입력

어느 시인이 무심히 던진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을 온전히 실감케 하는 4월의 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 1주기였던 16일 아침 지하철 출근길에 배포되는 무가지 신문 《메트로》 1면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외로워마소. 물 밖도 차고 깜깜하오…”


신문은 까만 바탕에 흰 글씨로 문구를 채우고 하단에 기울어진 배를 그려 넣는 것으로 아직도 바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9명을 향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저 문구 그대로, 《메트로》1면에 그려진 세월호의 바다와 바다 위 세상에는 경계가 없었다. 모두 칠흑 같은 어둠. 오직 ‘빛’은 저 바다 밑 깊은 곳에 처박혀 있는 진실에만 존재하는 것일 터. 저 진실을 인양해야만 비로소 바다도 세상도 함께 밝아질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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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피해자 故송국현 씨의 1주기에 그가 잠들어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을 찾은 동료들은 그의 모습을 담은 스케치 그림을 영정 사진 대신 모셔두었다. 그림 앞에는 동료들이 직접 쓴 편지가 놓여져 있다. ⓒ박승하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있고 바로 다음날, ‘메이데이’를 외치던 또 한 척의 작은 배 하나가 불에 타 침몰했다(‘메이데이’(mayday)는 선박 또는 항공기 등의 무선 조난 신호로 “날 도우러 오시오”라는 뜻의 단어). 24년간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가두어진 삶을 살다가 50세의 나이에 비로소 자기 삶을 찾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던 작은 배, 송국현. 하지만 위태로웠던 그의 첫 항해는 거대한 제도의 장벽에 부딪혀 침몰하고 말았다.


뇌병변과 언어 중복 장애를 갖고 있던 그가 시설을 나와 자립생활을 위해 첫 항해를 시작한 지 고작 한 달 만이던 2013년 11월, 그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기 위해 국민연금공단 장애심사센터를 찾아가 장애등급재심사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장애3급’. 그에게는 서비스 신청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이의신청도 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밥통에 쌀을 씻어 통을 들어야 하는데 팔의 힘이 없다”, “혼자서는 목욕, 빨래, 양치질을 할 수도 없었다”, “물건을 사는데도 혼자서 할 수 없고, 사람들에게 부딪히면 넘어지기 일쑤”라고 호소하던 그에게 장애등급제의 성벽은 너무나 차갑고 단단했다. 그렇게 국가의 외면 속에 그가 고립되어 있던 사이, 홀로 자고 있던 그의 집에 불길이 차올랐다. 불길을 피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대략 열 걸음. 열 걸음이면 현관을 빠져나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는 피할 수 없었다.


이후, 그의 죽음이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무나 기계적이고 편의적인 기준인 ‘장애3급’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불길을 피할 수 있는 ‘열 걸음’을 함께 걸어줄 활동보조인 지원을 거부했던 정부의 책임이라는 비판이 커져갔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고, 장애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도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또, 장애인 활동보조 24시간을 보장하자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안이 그의 이름을 따서(일명 ‘송국현·오지석법’)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1년 내내 진상규명을 회피하며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세월호 유가족에게 온갖 모욕을 해대기 바빴던 이 정부는, 힘없는 한 장애인의 죽음에 대해서 또한 어떠한 사과도, 재발방지 대책도, 제도적 개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장애인들이 시나브로 침몰해 가기만 했다. 어떤 이는 불에 타 죽었고, 또 어떤 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또 다른 이는 가족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17일 오전, 1년 만에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서울시립승화원에 모인 그의 동료들은 “아무것도 줄 게 없다”며 무안해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국현이 형이 참 밉다”라고 했다. 그가 아슬아슬하게 항해했던 그 짧지만 소중했던 시간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기에 미안한 마음이 더 앞섰을 테지만,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가누지 못했다. 그렇게 미안하기도 하고 밉기도 한 사람 앞에서 미리 적어온 편지를 읽어내려 가는 동안, 그들은 끝내 태연한 척 참아왔던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소풍을 나온 것처럼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 4월 17일. 송국현은 여전히 1년 전 까맣게 타버린 작은 방에 갇혀 있다. 그의 방이 타버린 순간 함께 까맣게 타버려 잿더미 위에 올라와 있는 듯한 이 세상에서, 저 천연덕스러운 햇볕은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다. 그것은 아마도 송국현이 1년 전 어둠 속에서 외로이 외쳤을 ‘메이데이’가 여전히 우리의 귀에 쟁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어둠 속을 빠져 나오기 위해 필요했던 ‘열 걸음’을 끝내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송국현이 먼저 간 저 세상만큼이나 이 세상도 여전히 차고 어둡지만, 장애등급제라는 제도의 불길을 건너 온전히 저 ‘열 걸음’을 걸어 낼 때, 저 세상에서 홀로 있을 송국현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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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故송국현 씨 1주기 추모 기자회견의 모습.

 



하금철 기자 rollingston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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