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노-래↗↗ 노--래~↗↗ 노-래에~↗에~↗에~↗
: 낮 수업 <노래방 수업> 곱씹어보기
제목 이해를 위해 이 음성파일을 일단 듣자.
자막 : (코요테 <순정> MR에 맞추어)
노래-↗ 노-래↗↗ 노--래~↗↗ 노-래에~↗에~↗에~↗
노래-↗↗ 노-래↗↗↗ 노--래~↗↗↗ 노-래에~↗에~↗에~↗
노래-↗ 노-래↗↗ 노-래에~↗에~↗에~↗
노래-↗ 노-래↗↗ 노-래에~↗에~↗에~↗
그렇게도 비가 퍼붓던 2018년 11월 8일. 광주 금남로 5.18 기념 광장 (야외 맞음, 길 위에서)에서는 제6회 한국 피플퍼스트 대회가 열렸다. 낮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인강원 거주학생 9명도 함께 광주까지 내려왔다. 우여곡절 끝에 뒤늦게 도착한 노들야학 원정대는 비옷을 입었음에도 비를 쫄딱 다 맞으며 마치 전쟁터와도 같은 대회장에 입성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학생들은 우왕좌왕 하고, 긴장하고,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희망찬 포스터 : 제6회 한국 피플퍼스트
실제의 대회장 : 아수라장
참가자들은 비옷을 입고 간이 천막 아래 있었지만 들이치는 비를 미처 피하지 못했고, 공연팀은 무대 위에서 비를 쫄딱 맞고 있었다. 우리 학생 한명은 계속 사라졌다 찾아오길 반복했고, 화장실은 또 왜 이리 먼 것인지... 학생은 20명, 화장실 신호는 제각각, 억수 같은 빗속에 학생 한 분과 겨우 화장실을 다녀오면 또 다른 학생이 화장실을 외쳤다.
그러던 중 마지막 행사로 ‘자유발언대’ 코너가 진행 되었다. 그 이전에 있는 주제발언 코너가 미리 준비한 원고를 발표하는 것이라면(우린 늦어서 못 들었다), 자유 발언은 말 그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주제도 자유, 참가자격도 지금 말하고 싶은 사람으로!
하지만 대회장은 아수라장이 아니었던가. 우왕좌왕 정신없는 사이 다른 원정대원들은 속속들이 앞으로 나가서 줄을 서고 있었다. 몇몇 자유 발언이 진행되고 나서야 정신이 퍼뜩 든 나는 학생들을 붙잡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무대에 올라가고 싶으시냐고. 가장 적극적인 옥 언니가 제일 먼저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서 몇몇 학생들도 같이 나가서 참가자 줄을 섰다. 노들팀이 줄을 서자마자 자유발언 참가자는 마감 되었고, 마지막에 우리학생들이 나선다는 사실에 긴장되면서도 내심 흥분됐다.
자유발언을 기다리는 학생들 (feat.폭우)
노들 학생들 차례가 되었다. 코너 이름은 분명 자유 “발언”이었으나... 몇몇 학생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구성진 트로트, 그리고 노래-↗ 노-래↗↗ 노--래~↗↗ 노-래에~↗에~↗에~↗
분명히 노래방 수업의 영향이다. 마이크+무대=노래! 무대에 올라가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고 너무나도 하고 싶은 일은 학생들에게 어느새 노래가 된 것이다. 그렇다. 이 글은 사실 노래방 수업을 소개하기 위한 글이다. 서두가 너무나 길고, 음성파일이 매우 강렬하지만, 뒷부분도 나름 재밌을 것이다.
노래방 수업은 발달장애인 학생들을 위한 주간 수업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운영해온 수업이다. 기간으로 따지면 1년 가까이 되었으나, 사이사이 다른 프로그램이 들어오기도 해서 실제로 1년내내 진행하지는 않았다. 가장 최근의 수업 형태를 간단히 묘사하자면, 우선 1시 30분까지 모든 학생(대락15-20명 사이)이 교실6(a.k.a 거울방)에 모여 출석 체크를 한다. 출석 부르는 시간은 오늘 누가 왔고 누가 무슨 일로 안 왔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도 하고, 이름을 맞추는 퀴즈 시간이 되기도 한다. 낮수업 사람들에게 어젯밤부터 하고 싶었던, 목구멍까지 솟아오른 이야기를 꺼내놓기도 하고, 최근의 일정을 곱씹으며 그동안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 묻고 답하는 시간도 된다.
출석을 다 부르고 난 뒤 학생들은 각자 두 개의 교실 중 원하는 교실을 선택한다. 두 교실은 수업 시작 전에 교사들이 최대한 노래방 풍의 셋팅을 완료 해 둔다. 노래방 풍의 셋팅은 마이크+어두운 조명+미러볼+유투브를 함께 볼 큰 화면.
노래방수업 사진1,2
노래방 수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었지만 요약해보겠다. 2018년 1학기 까지 금요일마다 방송댄스 수업을 해주시던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수업을 정리하게 되었다. 당시 금요일은 총 2.5시간 수업 중 1.5시간은 춤 수업, 나머지 1시간은 종로구청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한 텃밭 수업으로 채워져 있었다. 남은 교사들은 1.5시간동안 운영할 새로운 수업을 고심해야 했다. 학생들이 정말 좋아하는 시간이면서도 교육적인 효과가 있는 수업, 기존의 댄스 수업이 가진 역할이었던 에너지 발산과 자기표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수업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교사들은 지난 수업들을 떠올려 보았다. 수업을 진행하다보면 각자 작업한 결과물을 발표하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앞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뭔가를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모습들이 있었다. 나가서 발표를 마친 후엔 꼭 노래를 부르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었고, 두 곡 이상을 부르고 난 뒤에야 자리로 돌아가는 학생들도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유투브’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꼭 노래방 MR(반주)로 틀어놓고 춤을 추는 학생도 있었다. 그렇다면...‘유투브’로 반주를 틀고, 노래를 부르자! 노래방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초반에는 노트북+스피커+블루투스마이크의 조합이 전부였다. 수업이 진행되면서 노래방 풍의 셋팅과점점 진화했다. 프로젝터나 대형TV를 연결해서 화면에 영상을 띄워서 정말 노래방다운 분위기를 냈다. 교실에 불도 끄고 들이치는 햇빛도 가리기 위해 각종 블라인드도 꼼꼼히 내렸다. 색색깔 조명이 음악에 반응하며 돌아가는 미러볼도 구입해 매 수업마다 천장에 매달았다. 블루투스 마이크의 볼륨이 미약해 학생들의 불만이 축적될 때쯤 우연한 계기로 앰프에 직접 마이크를 연결해서 사용했고, 그날 볼륨과 함께 흥이 폭발했다. (윗 층에서 민원 들어옴...)
학생 맞춤형 시스템 또한 진화했다. 노래 가사를 잘 못 외우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노래방MR 보다는 해당 가수의 영상을 직접 틀어주는 편이 좋았다. 목소리가 작은 학생을 위해서는 영상의 볼륨은 낮추고 마이크의 볼륨을 높여야 한다. 빠르고 신나는 노래를 좋아하는 학생의 차례엔 볼륨을 많이 키워야 한다. 교사나 다른 학생이 노래를 같이 불러주면 더 씩씩하게 큰 목소리로 노래하는 학생도 있었다.
물론 노래를 안 부르거나 쑥스러워서 망설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노래방스러운 분위기가 갖추어질수록 더더욱 수업에 몰입하고, 시간을 즐겼다. 때때로 지나친 몰입도로 인해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노래를 한곡 더 부르고 싶어서 마이크를 차지하다 못해 수업이 중단될 지경에 이르거나, 계속 더 부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순서를 양보 한 뒤에 여운이 남아 토라지는 학생도 있었다.
교사들은 이에 대응해야 했다. 노래를 최대한 많이 부를 수 있도록 교실을 두 개로 나누었다. 미러볼도 한 개 더 추가로 구입. 노래를 부르는 순서를 정해서 순서를 지키는 연습도 추가했다. 노래를 안 부르는 학생들을 독려하기 위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같이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마이크를 같이 들고 노래를 불러 보기도 했다. 작은 악기들을 가져다두고 학생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악기를 골라 다른 사람의 노래에 연주를 할 수 있게도 하고, 큰 악기도 들여 놨다가 크게 후회(고막에 꽂히는 곳통!)도 해보았다.
수업 초기엔 교사들 마음속에 노래방 수업이 수업으로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이 남아있었다. 노래방이 수업이 된다니 괜찮을까? 학생들이 즐겁게 놀고 교사는 놀다가 돌아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은 점점 더 시간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노래방계의 이단아(?)들도 속속들이 배출되었다. 너무도 새로운 스타일의 노-래들이 발견되었고, 교사들은 열심히 그 모습을 발견하고 환호하고 박수쳤다.
순서를 기다리기 힘들어했던 학생들은 점점 양보하고 순서를 지키는 법을 알게 되었다. 한글이 어렵지만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기 위해 다른 교사에게 부르고 싶은 곡목을 적어달라고 해 자신만의 리스트를 가져온 학생도 있었다.
자막 : 현철 <사랑은 얄미운 나비인가봐> 노래에 맞추어
~~ 심어 놓고~ 나비처럼 나~알아 간 사람
내가슴에에에에- 지울 수 없느으으은
그리움 주고 가아안 사람
그리운 내사랑은 뜬구름아 전해다오
아하하아~ 아아아아아-
사랑은 얄미는 나비인가봐
‘유투브’로 부르고 싶은 노래를 미리 찾아온 학생도 있었다. 다른 학생이 노래 부르는 것을 가장 유심히 보고,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독려하는 학생도 있었다. 자기표현이 매우 드문 학생은 방탄소년단의 노래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신나는 노래들에 반응하고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막 : 듀스 <나를 돌아봐> 노래에 맞추어
우~웨 즈웨 조웨 조웨 조웨 조웨 즈웨
우어 조에 조해 조해 조해 조해 조해
............
감정 표현이 풍부해 슬픈 노래를 부르면 눈물을 흘리는 학생도 있었다.
자막 : 솔리드 <이밤의 끝을 잡고> 노래에 맞추어
하하하하~~
알기에 참아야겠지이~이이
내맘 아프지 않게 세상 그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이예에~~~
....
더 이상~ 초라하지 않게~
나를 위해 울지 마~↗
난 괜찮아
워~~~~
......
......묻어야 겠지
워~~~~~~
있지마하아아안-
보내야 겠지
워어우워~~~~!
.....
행복하게
우우우우
노-래 노래-↗ 노래↗↗의 주인공인 옥 언니는 초반에는 노래를 아예 부르지 않았던 학생이었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신나는 노래가 아니면 크게 손사래 치며 취향에 맞는 노래를 고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학기말엽에는 부를 노래를 정해서 말하고 교사들이 못 알아들으면 호통을 치곤 했다. 노래를 많이 부르고 싶어서 두 교실을 왔다 갔다하며 재치 있게 참여한 학생도 있었다. 가끔 장윤정의 ‘어머나’를 하루에 3번 들어야 하는 고통이 교사들에겐 있었지만, 학생들이 표하는 흥과 활기, 적극적인 모습은 노래방 수업이 우리가 지향하고자 했던 수업의 목표를 보여주는 순간임을 분명히 느끼게 했다.
11월 말 낮 수업 전체 평가회의를 앞두고 수업별 학기 평가를 하면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공유하며 삐빅의 많이 늦어버린 새 원고를 황급히 마무리 지어볼까 한다.
Q. 교사 본인들이 수업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경험·교사 본인의 성장 등등.
성호 : 학생들이 생각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찾아가는 것이 고무적이다. 그 방식은 비장애인이 바라보는 방식하고 다를 수 있다. 그런 방식들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야학의 역할.
화영 : 노래방 수업이라고 해서, 뭘 하는 걸까 잘 모르고 왔다. 그 노래를 하면서 달라지는 모습들도 보이고, 개인의 취향들도 알게 된 것 같고. 반복되는 노래를 듣는 게 힘든 부분이지만, 그런 모습(개인의 취향)들을 제일 오랫동안 많이 볼 수 있는 수업인 것 같다.
임당 : 노래방 수업의 역할을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이래도 되나. 그리고 나는 너무 힘들다. 그런데 하루하루 평가 회의를 해보면서, 학생들이 변화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서 오히려 학생이 가장 능동적인 참여를 하는 수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즐기고 싶다. 힘이 좀 있는 날 같이 노래도 부르고 하면 시간도 잘 가고 재밌는데, 감성이 좀 안 맞는 연령과 환경에서 살아온 학생들이 있으니 그런 점이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자리를 잡아서 진행 자체가 수월하고, 학생들을 꼼꼼히 챙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민구 : 오늘 가장 놀랐던 게 소민이 노래를 골라오고 틀어달라고 한 부분이 놀라웠다. 각자 자기 부르고 싶은 노래를 고르고 즐기고 하는 것들이 소민에게도 자극이 되어 시너지를 일으킨 것 같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주체적으로 잘하기 위해서 고민하는 것들이 좋다.
지예 : 초반에 노래방 수업 진행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역시, 교사가 안정이 되니 학생들도 같이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 수업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이러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수업에 새로운 부분이 생긴다면 촘촘히 구성해서 진행하면, 교사/학생이 안정적으로 수업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년 수업에는 조금씩 새로운 노래에 노출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원주님이나 옥, 수진님 같은 경우에는 신곡 적응력이 빠를 것 같다. 아는 노래만 부르기보다, 새로 나온 노래나, 비슷한 종류의 다른 노래를 같이 들어보고, 뮤직비디오도 보면서 아는 노래를 점점 늘려나가면 좋겠다.
2019년에도 노래방 수업은 계속 된다. 반복 속에서 학생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이것저것 시도해 볼 생각이다. 학생 별 노래방 책 만들기도 해볼 생각이다. 합창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노들야학의 낮수업 학생들이 부를 것 같지 않은, 깜짝 놀랄만한 노래를 합창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지금까지 교사가 해왔던 노래방 셋팅이나 정리를 함께 해보려고도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노래방에 가보기도 할 것이다. 트로트의 홍수 속에 다양한 음악 장르를 어떻게 살짝 살짝 흘려보낼지도 고심 중이다. 연말 노래자랑대회를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꿈이 어마어마하게 크지만... 조금씩 시도해보고 또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길이 보일 것이다.
노래방 수업은 2019년부터 월요일 오후 1시 30분에 시작한다. 어떤 수업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기대되는 수업이다. 더 재미난 노래방 수업을 위해 좋은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셔도 감사하겠다.
끝.
삐빅. 잘 읽었습니다. 사랑은 얄미는 나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