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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 코드 읽기]다른 세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류미례

by nodl posted Jul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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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장애 코드 읽기]다른 세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류미례

다른 세상은 어떻게 가능한가
켄 로치 감독의


류미례 | 푸른영상·독립영화감독

70회 칸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와 홍상수 감독의[그 후] 가 나란히 경쟁부문에 출품되어서 관심을 받았습니다.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많은 뉴스와 화제를 뿌리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이번 호에 준비한 영화는 칸영화제와 관련 있습니다. 작년, 그러니까 작년 제 69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켄 로치 감독의[나, 다니엘 블레이크] 입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2014년에 [매기스 홀]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배경음악이 거의 없이 현실을 건조하게 그려내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늘 흥행과는 거리가 멀죠. 다행히 황금종려상을 받은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칸영화제에서는 15분간 기립박수가 터졌던 화제작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작년 12월에 개봉해서 약 9만 명의 관객들과 함께 한 후 조용히 물러났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은 59살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입니다.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은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엘은 두 아이와 함께 런던에서 이주한 싱글맘 케이티를 만나 도움을 주게 되고, 서로를 의지하게 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짧게 요약하자면 59살의 목수와 싱글맘의 연대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만큼 연대는 이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켄 로치 감독에게 연대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뿐 아니라 모든 영화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켄 로치 감독은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 법대를 다니다가 그만 둔 후 배우생활을 잠깐 하고 1960년대에 BBC에서 드라마 연출자로 경력을 쌓기 시작합니다.

사회비판적인 드라마를 많이 만들었는데 1966년에 [캐시 컴 홈]만든 이 아주 유명합니다. 집을 잃고 관료적인 복지제도 하에서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들의 이야기인데요. 뜨거운 사회적 관심을 받으면서 이후 홈리스들을 위한 자선센터 설립의 기폭제가 됩니다. 드라마 덕분에 홈리스센터가 만들어졌다니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켄 로치 감독은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아주 냉정한 평가를 합니다. 그것이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죠.

켄 로치 감독의 등장인물들은 다들 성실하고 착합니다. 영국의 미디어연구가 존 힐은 이 사람들을 ‘무고한 영웅’이라고 부르는데요. 켄 로치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성실하고 선량한, 하지만 가난한 주인공은 노력을 하면 할수록 더 비참해집니다. 1966년 작 [캐시 컴 홈]의 주인공 캐시는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캐시는 정말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고 셋집에서 쫓겨나고 결국 아이들도 다 빼앗깁니다.

우리나라의 막장드라마들에서처럼 절대 악인이 등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견고하게 작동하는 사회복지 시스템이 있고 강철 같은 원칙을 읊어대는 공무원들이 있을 뿐입니다. 존 힐은 켄 로치가 무고한 영웅들을 주인공으로 저항의 멜로드라마를 구축한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들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납니다. 주인공들은 무능하지도 게으르지도 않는데 결국 그렇게 됩니다. 1966년의 캐시가, 2016년의 다니엘 블레이크가 바로 그렇습니다.

시종일관 악당처럼 여겨지는 공무원들은 사실 평범합니다. 다니엘과 케이티를 궁지에 몰아넣는 악당들은 사실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도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얼굴들입니다. 영화가 시작하면 검은 화면에 목소리만 들립니다. 질병수당신청과 관련한 심사관의 질문들은 이렇습니다. “혼자서 50m이상 걸으실 수 있나요?” “윗주머니까지 양팔을 올릴 수 있나요?” 다니엘은 심장병 때문에 일을 쉬고 있는데 심사관이 던지는 질문들은 다니엘의 심장병과는 거리가 멉니다. 어이없는 질문들에 화가 난 다니엘은 유머 섞인 항변을 하곤 하지만 제대로 대답하라는 심사관의 태도에서는 짜증이 묻어납니다.

결국 다니엘은 의료수당심사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탈락통지서를 우편으로 받고서 심사관과의 통화를 시도합니다. 1시간 45분이 걸려 겨우 통화를 하게 되었지만 상대방은 자신은 그저 콜센터 직원이니 심사관의 전화를 받아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편으로 통지서를 받았다고 해도 심사관의 전화통고가 필수라고 하지요.

보조금 신청을 위해 다시 ‘잡 플러스 센터(Job Plus Center)’를 찾지만 예약이 되지 않았으므로 예약을 먼저 하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그렇게 단어 그대로 뺑뺑이를 돕니다. 평생 목공만 해온, 마우스를 올리라고 하면 컴퓨터 화면에 마우스를 올리는, 완벽한 연필세대입니다. 결국 질병수당은 포기하고 다시 구직수당을 신청합니다. 그리고 다시 뺑뺑이는 시작됩니다.

센터에서 우연히 만난 싱글맘 케이티의 경우는 더 가혹합니다. 케이티는 런던에서 살다가 집단생활 때문에 아들 달린이 정서불안을 보여서 뉴캐슬로 떠나온 사람입니다. 케이티는 청소일을 찾으려고 전단을 돌리고 형편없는 집이라도 열심히 닦아내며 열심히 살아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담하는 날 초행길이라 버스를 잘못 타서 10분이 늦었는데 상담원은 제재가 가해질 거라고 합니다.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다시 항의를 하지만 경찰에게 쫓겨나고 맙니다.

절박한 다니엘과 더 절박한 케이티는 그렇게 만나 가난한 연대를 시작합니다. 막힌 하수구를 뚫어주고 촛불을 켜고 살아야하는 케이티에게 전기요금을 보탭니다. 케이티는 자기 몫의 식사를 다니엘에게 대접합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만 챙기느라 제대로 먹지 못하고 오래 굶주린 케이티는 식료품 구호센터에서 파스타 재료 통조림을 뜯어서 허겁지겁 먹다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 때 케이티의 곁에 있던 다니엘은 말합니다.

“자네 탓이 아니야.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살았어.”

다니엘의 말은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켄 로치의 시선이겠지요. 켄 로치는 그렇게 자기의 주인공들, 그러니까 ‘무고한 영웅들’이 직면한 빈곤과 실업의 문제가 결코 그들의 품성과 능력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모든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모든 해결책을 개인의 노력에서 찾습니다. 다니엘은 결국 질병수당을 포기하고 구직수당을 신청합니다. 구직수당을 신청하자마자 센터의 상담원은 이력서 작성법을 배우라고 합니다. 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취업을 하고 성공을 하려면 똑똑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커다란 종이에 이렇게 씁니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눈에 띄어야 한다” 사회적 모순을 개인의 역량 문제로 치환하고 왜곡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이렇게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다니엘의 반격이 멋집니다. 다니엘은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 셈은 할 줄 아오?” 아무리 노력해도 몇 명만이 일자리를 얻는 상황, 이 상황에서 그 몇 명 안에 끼기 위해 노력하라는 당신의 셈법은 근본부터 틀렸다는 거지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만들고 나서 켄 로치는 이렇게 말합니다.

“유일한 희망은 새로운 경제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소수의 탐욕에 봉사하는 경제가 아니라 다수의 생계를 안정시키는 그런 구조 말이다”

1960년대부터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담아왔던 켄 로치의 이 주장은 [나,다니엘 블레이크]에서도 드러납니다. 그리고 변함없는 풍경 하나가 더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연대,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존재입니다.

연필세대인 다니엘을 대신해 인터넷 신청을 도와주는 것은 육체노동을 하는 옆집 흑인 청년입니다. 식료품 구호센터의 직원들은 오열하는 케이티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구직활동을 하는 다니엘에게 행인들은 저기로 가면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케이티의 딸 데이지가 있습니다. 모든 희망을 잃고 은둔한 채 문을 열어주지 않는 다니엘에게 데이지가 말합니다.

“저희를 도와주신 게 맞나요? 그럼 이젠 제가 아저씨를 돕게 해주세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등장하는 수많은 연대 중에서도 다니엘과 아이들 사이의 연대는 정말 특별하고 탁월합니다. 다니엘과 데이지 사이에 존재하던 평등한 인격적 소통은 결국 도움이란 상호적이라는 것을 가슴 절절하게 가르쳐줍니다.

두 개의 명장면이 있습니다. 유일하게 인간적이었던 앤에게 “자존심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센터를 나온 다니엘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굶어죽기 전에 항고일 배정을 요구한다”라는 글을 센터 외벽에 크게 남깁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환호와 지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결국 장례식에서 읽혀지고만 항소문을 통해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나는 고객, 사용자, 게으름뱅이, 사기꾼, 거지, 도둑, 보험 번호 숫자, 화면 속 점이 아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고, 자선에 기대지 않았다.
나는 개가 아니고 인간이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권리를 요구한다.”

다니엘 블레이크의 이 인간선언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에 이어 많은 사람들의 선언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원칙과 제도보다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담담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외치는 영화 . [나, 다니엘 블레이크] 함께 볼 영화로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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