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6 10:02:51
덤
역시 달랐다. 약간 늦게 시작하고, 약속한 독서노트도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여유가 느껴진다. 그들의 '여유'에 '초조해졌지만' 토론 과정에서 기분이 좋아졌다. 장애인 투쟁과 함께 해 온 그들은 '지식인'과는 다른 방식으로 루쉰의 문장들을 여유롭게 흡수했다.
교장샘은 <납함>의 '자서'에 꽂혔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자기 혼자 아무리 외친다 해도 그들이 찬성도 반대도 아닌 아무런 반응도 보여주지 않는" 상황을 오랜 세월 장판에서 겪어온 그는 "절망의 바닥까지 가지 않고서야 희망을 말할 수 없다"고 체험에서 우러난 '자서'를 뱉어냈다. 장애를 얻어 몇 달간 루쉰이 말한 '적막'과도 같은 '무감각' 속에서 골방에 틀어 박혀 있었던 경험,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외침을 쏟아내 왔던 시절, 그동안 자신과 노들친구들이 외친 납함이 "용맹한 것인지, 슬픈 것인지, 가증스러운 것인지, 가소로운 것인지 생각해볼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그래도 좀 나아지지 않았냐고 장난스레 물어보는 얼굴엔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교장샘 자신의 '자서'를 기다려 볼 참이다.
<광인일기>의 첫장면 "내가 달을 보지 모한 지도 30여년이나 된다. 오늘밤 달을 보니 전에 없이 기분이 상쾌하다"는 구절에 대한 해석이 놀라웠다. 30년이나 꿈에 잠겨 있다 이제 막 깨어난 '나'를 사람들은 '미쳤다' 한다. 꿈에 잠긴 사람들이 깨어난 자를 광인이라 한다. 그렇다면, <광인일기> 앞 대가리에서 주인공이 이제는 "병이 다 낳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다른 사람과 똑같아졌다는 걸까? 정말 다른 사람에게 잡아 먹히고 만 것인가? 다시 꿈 속에 침잠한 걸까? 마지막 구절 "나는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살을 몇 점 먹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젠 내 차례가 되었으니....4천년 동안 사람을 잡아먹은 이력을 가지고 있는 나는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제야 참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구절에서 답을 찾는다. 깨어났지만 꿈꾸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게 중요하다. 혼자 나가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그 위치에서만 "사람 고기를 먹어보지 못한 아이"를 기다릴 수 있는 거란다.
"루쉰에겐 아이가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세대와 단절한 새로운 인간...공을기 역시 아이들에게 회향콩을 나눠주고 싶어하죠." 루쉰에게 아이는 어떤 존재일까? 좋은 주제다.
<공을기>의 주인공에 대해 어떤 사람은 "수십년 고시에 낙방하고 단골 술집을 전전하는 고시생"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현실적 근거를 잃어버린 채 과거의 운동경험과 이론만 떠들어 대며 후배들에게 조롱받는 줄도 모르고 조롱받는 운동권 선배"를 떠올렸고, 어떤 이는 직장친구들이나 부모님에게 바보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끔식 위로와 즐거움을 주는 장애인활동가 자신을 떠올렸다. 놀라운 발견, 공을기가 옛날 글자를 옮겨적는 모습은 비석의 문자를 탁본뜨고 고문서를 베끼는 루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고 누군가 말했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암튼, 내가 보지 못한 많은 부분을 보고 느끼는 노란들판 친구들과 루쉰을 읽는 게 즐겁다.
아무쪼록, 다음시간에는 '제 시간에' '독서 노트'도 완벽히!
어제 못온 '신행', '우준', '해피' 샘은 다음 시간까지 어제 읽은 부분에 대한 '노트정리' 꼭 해오기.
끝나자 마자 도망치듯 가서 미안해요. 매이를 데리러 가야 해서!
이상, 후기 끝!
해피
우와~! 어제 첫날인데 참여 못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에
혹시나 누군가 발자취를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들어왔는데
쌤의 생생한 후기가 넘 감동적이네욥~!! ^^
루쉰의 소설들도 멋졌는데, 후기 읽다보니까 토론 내용들이 더 감동이네요 ^^ㅋ
담주에 성실히 준비해서 갈께요~! ^^*
안티고네
2010.12.16 15:50:46
2010.12.18 23:54:41
"역시 달랐다. 약간 늦게 시작하고, 약속한 독서노트도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여유가 느껴진다."
참 부끄러운 지적인데, 나는 빵 터져서 막 웃었어요. ;;;;;;;;;;;;;;;;
루쉰 사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