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수업을 한 학기 해보았고 앞으로도 해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때 마침 쓰게 된 논문의 주제를 ‘노들장애인야학의 성인 발달장애인 교육’으로 잡고 쓰게 되었다. 실제 교사로서 교육활동은 고작 6개월 밖에 안 했지만 연구를 해나가면서 앞으로 필요한 것도 알게 될 것이고, 학생분들이나 낮 수업 교사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배울 게 있으리라 여겼다. 연구를 하면할수록 경험 부족으로 인한 고민의 깊이가 얕다는 것을 실감하는 시간들이었지만 어쨌든 내 예상은 맞았다. 연구 과정에서 문제의식도 깊어졌고, 학생분들의 말과 교사분들의 말, 다른 성인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에 대한 연구들에서 배우는 것들이 있었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야학 교사 분들 8명, 발달장애인 학생분들 5명을 인터뷰하였다.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요약하여 올려본다.
먼저 연구를 하면서 줄곧 떠올렸던 노들 야학 교사 E 의 말이 있었다. 그는 성인 발달장애인교육에 있어 새로운 배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말한 새로운 배움이 무엇이었는지 그 실체가 궁금하였다.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왜 배움이 필요한가. 모든 사람에게 배움이 필요하죠. 근데 성인 발달장애인은 배움이 필요 없는 사람이죠. 아무리 가르쳐도 고등학교 같지 않으니까. 비장애인이나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은 가르치면 변화의 모습을 볼 수 있잖아요. 공부 잘 해서 대학에 간다거나 공부에 대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진급이나 직장 가지고 일반적인 사회의 과정이 있잖아요. (중략) 배움이라는 거는 변화를 목표로 하는데 이들은 가르쳐 봤자 눈에 띄게 변화되는 게 없어요. 배울 필요가 없죠. 바로 배움이 필요 없는 곳에서 배움을 만드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다른 배움이 필요하지 않는가 생각하는 거예요. 기존의 배움의 방식으로는, 기존의 배움의 측정으로는 이들은 배움이 필요 없다고 여겨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버려지는 과정인데 배움이 필요 없다는 영역 속에서 새로운 배움이 있다는 거를 알려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더 많은 배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야학 교사 E)
* 지적 기능과 적응행동상의 어려움이 함께 존재하여 교육적 성취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
*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결함이 있고,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관심과 활동을 보임으로써 교육적 성취 및 일상생활 적응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
현행 특수교육법에 따르면 지적 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은 교육적 성취에 어려움이 있거나 성취에 있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정의되어있다. 나는 이러한 정의가 발달장애인의 교육적 성취가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 같아 질문을 던지게 한다. 발달장애인은 정말 교육적 성취를 이루기 어려운가. 발달장애인 배움은 무의미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리고 발달장애인에게는 어떤 배움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가. 노들야학 성인발달장애인 학생분들과 교사들을 인터뷰 하여 답을 찾아보았다.
노들야학의 성인발달장애인 배움은 장애정도에 따라 그 내용과 목표를 달리해왔다. 노들 야학의 성인 발달장애인 교육을 시계열적 역사 속에서 살펴보면 성인발달장애인 교육이 시작한 때에는 문해교육·학업능력향상·욕구말하기·일상생활지원·문화예술 수업이 진행되었다. 여기에 장애에 관련 기사나 그 밖에 사회문제 신문기사들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들이 진행되었다.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발달장애인들에게 가능했던 수업으로 학생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러한 사회수업은 학생들 사이에서 ‘차별’이나 ‘권리’와 같은 단어를 일상용어로 사용하게 하는 효과를 만들었다. 뿐 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과의 연대활동을 추구하는 성인 발달장애인 활동가를 배출해내기도 하였다. 그러던 것이 2017년 이후 시설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들이 대다수 들어오면서 교육내용을 변경할 필요에 직면하였다. 시설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학생들은 장애정도가 더 심했다. 의사소통을 나누기 어려운 분들도 많았다. 따라서 수업은 어느 정도 수업하는 것에 안정화를 이룬 뒤 자기표현을 목표로 하는 문화예술 수업 위주로 진행되었다. 문화예술 수업은 진(zine)수업, 카페수업, 에스쁘와 수업, 노래방 수업 등으로 진행이 되었는데 발달장애인들의 욕구나 취향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노들에스쁘와 수업 같은 경우 야학교사 D는 수업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회생활이 많지 않은 시설 거주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몇 시간이라도 즐겁게 춤추고 움직일 수 있는 시공간이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두 번의 매력적인 경험, 기쁨이 삶에 자극이 되고, 변화의 시작점이 되리라고 기대한다.”
문화예술수업은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성인 발달장애인에게는 자기 성취감을 가져다주는 수업이었다. 성인 발달장애인 학생은 교사 및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기쁨을 느꼈다. 누군가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기쁨도 얻었다.
“미술. 진수업. 선생님 잘 만났잖아요. 미술 같은 거. 만들기. 데모할 때 피켓. 재밌었어요. 좋았어요. 우리가 만들어서 같이 나가니까. 선생님하고 데모할 때 쓰고 나가잖아요. 만들어서 데모할 때 가지고 나가니까 나도 할 수 있다. 기분이 좋았죠. 같이 하니까. 선생님하고. 사람들한테 말하는 거 같애요. ‘나도 장애인이고 할 수 있다.’ 선생님도 만들고 같이 만드니까 너무 좋았어요.” (발달장애인 학생 B)
반면에 장애정도가 심한 발달장애인 중에는 수업 참여에 대한 기다림이 필요한 경우가 있었다. 이에 맞춰서 수업은 결과나 기능을 중시하기보다 흥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을 넓히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 진행하였다. 수업에 참여하면서 자기표현능력이 향상하고 삶의 태도가 변하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A 학생이 다양한 표정, 성량과 어조, 손과 발을 이용한 신호 등을 통해 보다 넓은 대화가 가능해졌다. B 학생도 노래와 춤을 통한 표현이 다채로워졌다.” - 노들 야학 교사 D
“B씨의 경우 자신의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부분에 있어 좀 더 감정이 풍부해지고 다양해진 모습이 보이고 있음” - 거주시설 A원 관계자
“C씨의 경우 노들 가는 것 어떠신지 질문에 노들 좋아 라고 활짝 웃으며 대답하심. 간혹 병원진료가 노들 프로그램시간과 겹쳐 부득이하게 노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크게 화를 내며 우시고, 부지 내 다른 건물 구석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으셔서 울적하게 있는 모습을 몇 번 발견하고 모셔온 경우가 있음” - 거주시설 A원 관계자
“기억에 남는 거는 시설에 선생님 만났을 때 S언니 그 분이 시설 안에서는 항상 다리꼬고 턱 괴고 앉아서 남들 하는 것만 보고 참여를 하지 않고 오래 지내셨다고 그랬고. 다른 분들이 시설 안에서 프로그램이 있고 외출도 있고 그런데 자기는 안 한다고 손으로 거부표현하시고 계속 앉아 계셨었는데. 에스쁘와 와서도 초반에는 계속 그랬던 거 같애요. 근데 편안해지신건지 흥미가 생기신 건지 어느 날부터 멋지게 춤을 추기 시작했거든요. 고유의 안무가 있으세요. 그거를 막 하시고 언어장애도 있고 신체적인 움직임에도 장애가 있는데 그걸 할 때 소리를 ‘으아’ 하면서 동작을 하시는데. 그런 게 좋고 하니까 영상을 찍어놓은 게 있어서 시설 선생님과 회의를 하다가 보여 드렸어요. ‘수업 이렇게 한다.’ 그러니까 언니의 영상을 보고 너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시설에서는 항상 방관자나 바깥에 있는 사람처럼 지냈는데 춤을 추고 소리를 발산하고 이런 거를 보면서 너무너무 놀랬다고 하시면서. 그거는 정말 수업 안에서의 한 사람의 태도 변화가 있었던 경우고요.” (야학교사 D)
수업에서의 참여는 단번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을 필요로 했다. 교사들은 기다림도 수업의 일환으로 여기고 포괄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수업을 구성했다.
“장애인·비장애인을 떠나서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건 결과물만 계속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수업이 세 시간이라고 하면 세 시간 동안 결과물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시간, 그것을 위해 마음을 먹는 시간, 만들고 싶은 느낌이 오는 순간,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그런 시간까지를 고려를 해야 결과물이 나올까 말까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결과물에 집중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업을 했던 것 같고 다른 선생님들도 결과물이 목적이 되는 수업이 얼마나 예술 수업에서 위험한지를 아는 분이었기 때문에. 중증 발달장애인 예술교육에 경험이 있는 분들이어서. 그런 거에 대해 경계하는 부분이 컸어요. 그래서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다던지, 춤을 춘다던지, 노래를 부르는 거는 진 수업 초반에 가장 많이 했던 거고. 그리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였죠. 그리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 거고. 참여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는 거고. (그러다가) 3년 만에 그리기 시작하게 됐다. 이것도 언제 마음이 변해서 안 할 수도 있는 거고. 창작에 포함되는 것이 결과물 뿐 만 아니고 결과물 나오기 이전에 시간과 인생이 바뀌는 경로에 있는 분들이 많았으니까.” (야학교사 G)
수업의 목표를 결과나 성과 중심이 아니라 참여도 중심이나 참여영역 확장에 두었다.
“기능적인 건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는 거 같애요. 갑자기 커피를 잘 내린다거나 흘리지 않고 내린다거나 그러면 좋겠지만 이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애. 내가 오히려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넓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애요. 진수업이든 카페수업이든 춤수업이든 내 표현이 한 이정도 였다면 어느 날 이만큼 표현이 커지고 즐거움을 갖고 하는 게 중요한 거 같애요. (중략) 기능적인 발전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수업이 거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다 그걸 원해. 글이라도 잘 쓰게 하고 싶고 생각을 알고 싶고. 그런데 그게 저는 전혀 안 중요한 것 같고 오히려 내가 진 수업을 하다가 그림을 이만큼 그리고 끝냈던 분이 오늘 막 재밌어가지고 여기 공간도 편해지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그래서 색깔도 막 내가 안 쓰던 색깔도 쓰고 안 그리던 것도 그리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즐거워서 그랬을 때 그 변화. 그게 진보라고 치면 그런 변화들 굉장히 많아요. 그림에서도 예전 그림과 다른 그림도 많이 보이고 팝업 카페 할 때도 처음에는 잡기도 싫어하셨는데 한번 물도 부어보시고 이런 것들. 시도가 과감해지고 즐거워하시고 그런 모습들. 변화들이 중요한 거 같애요.” (야학 교사 B)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성인 발달장애인에게는 학업능력향상이나 문해교육 뿐 아니라 장애나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이 가능했다. 하지만 장애정도가 심한 성인 발달장애인에게는 그런 수업보다는 자기표현을 만들어보거나 활동에 참여를 늘리는 것에 초점을 맞춘 수업방식이 더 적절했다. 그렇게 하여 야학 교사들은 일부 성인 발달장애인 학생분들이 활동에 흥미를 찾고 표현력이 늘어났을 때 삶의 의욕이 늘어나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장애정도가 심한 성인발달장애인에게 있어 지식전달 위주의 배움이 아니더라도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참여를 가능하도록 하는 활동들이 삶의 의욕을 증대시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장애정도가 심한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어떤 배움의 형식이 주어져야 하는 지 시준점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