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도날드 기습 점거 중이던 조합원들을 연행하고 있는 경찰 5월 1일, 알바노조는 알바데이를 마치고 종로 일대 퍼레이드 도중 매장을 점거하는 시위를 펼쳤다. | |
ⓒ 알바노조 |
저는 지난 1일, 맥도날드에 항의방문 차 들어갔다가 연행된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의 배우자 홍은전입니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동대문 경찰서와 혜화경찰서를 오가며 4시간여를 기다려 겨우 10분 면회를 하고 돌아와 이 글을 씁니다.
지금 구교현은 동대문경찰서에 갇혀 있습니다. 지난 1일 오후 2시 경, 알바노조 조합원들은 '알바데이'를 마치고 종로에서 행진하던 중, 서울 종로 조계사 맞은편에 위치한 맥도날드 관훈점 매장을 항의 방문했습니다. 레이버 컨트롤(Labor Control : 매출대비 인건비 비율을 통제하는 정책)을 철폐하고 맥도날드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며 최저임금 1만 원을 주장했습니다. 10분 후 매장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밖에 있던 경찰이 문을 막고 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 경찰은 매장에 갇혀 있던 구교현 위원장과 조합원들을 강제로 연행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저녁 먹고 싶었는데... 쏟아진 눈물
▲ '맥도날드 점거시위' 알바노조 위원장 등 8명 연행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알바노조) 회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종로 일대 행진 도중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해 경찰이 이들을 둘러싸고 있다. | |
ⓒ 연합뉴스 |
경찰서에서 남편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제 앞에 있던 TV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싸움과 네팔의 희생자들에 관한 뉴스가 계속 보도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일상이 무참히 무너지고 짓밟히는 광경을 속절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의 고통에 함께하지 못하고 오로지 남편이 얼른 풀려나서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기만을 바라는 저 자신이 조금은 미웠습니다. 그런 저를 벌주려는 것처럼, 남편에게 '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기력도 정신도 없어서 택시를 탔습니다. 다정하고 친절한 기사님께서 "좋은 연휴 보내십시오"라고 인사해 주었을 때, 온종일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주말이라 도심의 교통 체증이 심했습니다. '모두 어디론가 놀러 가는 모양이구나' 생각하니 왠지 화가 났지만, 어디에도 화를 낼 수가 없습니다. 내일부터 휴가인데 수사가 길어져서 짜증이 잔뜩 난 수사관에게도 화를 낼 수가 없고, 어제 접견하고 가신 변호사님이 오늘 딸의 생일이라 여행을 떠나셨다는 말을 듣고도 나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진심으로 누군가의 휴일을 침범하게 된 것이 미안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종일 눌렀던 눈물이 택시 기사님의 한 마디에 터져버린 것입니다.
알바데이(노동절) 준비에 고생했던 남편과 저녁을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 그리 사치스런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남편과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현실이 참을 수 없이 슬퍼졌습니다.
구교현 알바노조 위원장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년간 아르바이트를 해왔던 알바 노동자입니다. 그가 알바노조가 출범하던 2013년, 롯데리아에서 배달 알바를 했을 때를 기억합니다. 비가 오는 한여름에도 두꺼운 유니폼을 입고 그는 하루 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햄버거를 배달했습니다. 퇴근하고 돌아오는 그는 늘 땀에 절어 있었습니다. 아토피가 있는 그는 알바들에게 밥으로 주어지는 햄버거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일하는 시간 동안 끼니를 걸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버지뻘 되는 사람들이 '투 잡'으로 야간에 햄버거를 배달하고, 자신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이 미래를 꿈꿀 여유라곤 없이 기계처럼 일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식당에 가도 제일 먼저 알바들을 보았고, 비 오는 날 질주하는 배달 알바들을 보면 한참 그 자리에 서서 그들의 안전을 걱정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늘 열심히 살아야지'를 다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미안하다"는 남편, 인간다운 세상은 어디에?
▲ '맥도날드 점거시위' 알바노조 위원장 등 8명 연행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알바노조) 관계자들이 1일 오후 시급인상 등을 촉구하며 종로구 관훈동 맥도날드 앞에서 처우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다. 이날 기습 점거를 한 위원장 등이 경찰에 연행됐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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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학비를 벌면서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한 번도 부모님께 생활비 드리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에서 박봉의 활동비를 받는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두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여러 번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심으로 힘없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활동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는 정말 성실한 활동가였습니다. 산재로 장애를 입으신 아버지로 인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아픔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알바노조에서 일하기 전 그는 7년 동안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했었습니다. 중증장애인이 살아가기엔 너무나 잔혹한 현실에서 그는 그들과 함께 싸웠습니다.
저는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참여한 작가입니다. 제가 유가족들을 만나고 돌아와 그분들의 이야기를 하면, 그는 저보다 더 마음 아파했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그가 유가족들의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무너진 그들의 일상을 진심으로 아파했기 때문입니다.
구교현은 연행되자마자 저에게 "미안하다"고 연락을 했습니다. 3일, 저희는 원래 늦은 신혼여행을 가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결혼할 당시 너무 바쁜 데다, 경제 사정도 좋지 않아 미루어두었던 여행입니다. 너무 바빠서 여행 준비를 거들지 못하는 걸 늘 미안해했습니다. 이런 일이 생겨 제가 오래전부터 꿈꾸던 여행을 못 가게 될까 봐 걱정하는 "미안하다"였습니다. 그는 연행된 자신보다, 아내인 제가 꿈꾸던 여행을 떠나지 못할까 봐 더 걱정해주었습니다.
구교현은 평범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일상이 귀하게 존중받기를 간절히 원하고 실천해왔던 사람입니다. 그런 '구교현의 일상' 또한 지켜주십시오. 누군가의 일상이 너무나도 함부로 짓밟히는 한국 사회에서 이런 욕심을 부리는 제가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또한 알고 있습니다. 알바들의 권리를 확장하기 위해 싸우는 활동가 구교현의 일상이 지켜지는 것, 그리고 남편과 함께 휴일 저녁을 함께 보내고 싶은 저의 소박한 꿈이 지켜지는 것, 그것이 바로 남편과 제가 꿈꾸는 인간다운 세상의 모습이라는 것을요.
꽃이 만발한 봄, 연휴가 시작하는 날, 저와 제 남편, 그리고 모든 평범한 알바들의 일상이 소중하게 지켜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탄원서를 부탁합니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홍은전씨는 알바노조 구교현 위원장의 배우자로 최근 세월호 유가족 인터뷰집 <금요일엔 돌아오렴>에 참여한 작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