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안타깝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너무나 일찍 찾아온 것이 원망스럽고 원망스럽습니다
짧은 세월이었지만
박현 동지의 활동은
큰 의미와 울림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세월이 좀 더 길었다면,
함께 무엇인가를 더 해볼걸 그랬다는 후회가 뼈 속에 사무칩니다
12살에 꽃동네 입소,
33살 그의 짧은 생애에서 20년을 시설에서 살았네요
시설에서 나와서 5년의 불꽃같은 삶을 살다갔습니다.
그가
시설에서 나오지 않고 계속 살았다면,
5년의 불꽃같은 삶을
우리는 보지 못했을 것이고
짧은 한마디로 기억 되었겠지요
"시설에서 죽어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얼굴도 이름도 없는 중증장애인"이라 했겠지요.
어쩔 수 없는 운명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겠지만,
그가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했는지 꼭 기억을 했으면 합니다
그가
탈시설-자립생활운동가라는 것을,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에게
국가권력과 이 사회가 은혜처럼 배풀어 주었던 시설을 향해
'시설은 아니다'며 외쳤습니다.
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는
우리들의,
중증장애인들의,
자유
평등을 외치며 실천했던
우리의 동지라는 것을.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휴지조각이었지요.
우리에게는 정말 쓸모없는 휴지조각의 권리를
우리의 삶,
여기있는 여러분들 삶에
박현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헌법의 권리를 살아나게 했습니다.
박현을 기억해야하는 중요한 사건은
2009년에 음성군청 상대로 사회복지서비스변신청 소송을 한 당사자라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에 나와서 살아가야할 막막한 여백을 멋지게 채운 박현입니다.
얼록달록하게 채웠지요.
함께 하는 단체가 이렇게 많이 있지요
교회도 3군데나 다녔답니다.
이 사회에서 중증장애인은
시혜와 동정
그리고 혐오 사이에서 있는 존재입니다
얼마전 지하철을 타는데
어르신이 갑자기 나무라면서
내 머리를 치며
내리더라고요
나에 대한 혐오에 대한 표현이더라고요
박현의
얼록달록한 그 모습은
시혜와 동정,
혐오가 가득한 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내게 많은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답니다
그래서
나도 머리에 염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오늘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장을 1584일째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박현 동지 때문입니다.
추운겨울
무심히 지나는 시민들
발걸음일지라도
묵묵히 지키는 박현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그 동지 생각하며
장애등급제를 꼭 폐지했으면 합니다.
여전히
탈시설이라는 개념도
제도화도
정책도
예산도 없는 현재입니다
박현 동지
생각하며
탈시설 개념
제도화,
정책,
예산을
내년 크리스마스때에는
선물로 나누었으면 합니다.
얼마전에
현이는
서울시에서
탈시설 권리 선언을 하였지요
야속하게도
선언만 하고
자기는
고통도 차별도 없는 하나님 세상으로 가버리고
남겨진 우리에게 개고생 하라고
먼저 가서
여유부리겠지만
우리
박현 동지
너무 야속하다고 욕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잘 쉬고 있으라고 명복을 빌고
그가 남긴
탈시설 권리를
꼭 우리의 삶에서
멋지게 실현시켜봅시다.
저에게는 특히
탈시설이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항상 제가 깨어지는 과정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박현동지
기억하며,
시설에서 나온 중증장애인들의
삶의 여백을
서로 손잡고
마주잡은 인연 놓지 말함께 잘 채워갔으면 합니다.
슬프지만
힘차게
투쟁하는 크리마스
맞이합시다
박현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네요.
'지쳐도
끝까지 갈거잖아요
열심히 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