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학교사, 활동보조인 양성기관의 정숙쌤이 모여 <거부당한 몸 -수전웰덴> 책을 네 번에 걸쳐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다음은 공부한 흔적들!
책은 ‘장애는 사회적 요인이다.’ 라는 명제를 좀 더 밀고 나간다. 단순히 사회적 요인이라기보다 생물학적*사회적 상호작용임을 주장한다. 성별이 생물학적 차이를 바탕으로 해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점 (예를 들어 여성은 가사노동을 잘 하면 된다는 생각 등) 과 같이 장애도 그렇다. 한 사회가 몸을 다루는 태도와 기대하는 바가 장애의 유무/정도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1장에서는 장애의 정의에 대해 묻는다. 손상, 장애, 핸디캡으로 나누는 UN의 장애의 정의가 이렇게 명확한 기준으로 나뉠 때 사회적*생물학적 상호작용을 못 보게 되는 점을 지적한다. UN의 기준은 핸디캡을 정의할 때 ‘정상적인’을 기준으로 하는데 ‘정상적인’은 사회적으로 구성되고 유동적임을 밝힌다.
장애를 정의하는 것이 의료기관, 서비스 제공기관에 의해 이루어져 있음을 밝히고 때로는 서비스를 줄이기 위해 장애의 정의를 최소화 한 사례도 언급한다. 골반내감염 같은 경우 사람에 따라 정도가 다른데 이를 장애로 정의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장애와 질병의 관계에 대해서 묻는다. 낙인효과 또는 장애가 명확히 사회적 차별의 문제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장애와 질병의 관계를 명확히 구분 짓고자 하는데 저자는 그렇게만 보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장애를 갖는다는 것에 주목하고 노인들도 장애를 갖게 되는 것이라 말한다. 비장애인 누구나 장애를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남성의 몸으로 한 기준이 있고 이 반대가 장애라는 시각과 대결한다.
다른 한편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규정하지 않는 경우를 본다. 자신이 총체적으로 무능력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회복을 기대하기 경우가 있다. 또한 저자의 경우 자신의 장애를 말하고 예전과 같은 능력을 찾을 수 없다는 말에 친구들이 그 말을 믿고 싶지 않아하는 것도 한 이유였다고 한다. 또 다른 장애인보다 나은 상태이기에 장애인에 속한다고 생각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고 한다.
저자는 스스로를 장애여성이라 말한다. 사회적 억압이 존재하는 이상 ‘장애인’이 무의미한 범주가 아니라고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정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편의에 따라, 우리에게 해가 되는 방식으로 정의될 것이 분명하다.” 흑인운동가 오드리에 말에 따라 장애의 정의 역시 끊임없이 반복되어야 할 것이라 주장한다.
세미나에서... 낙인효과에 대해 말을 나눴다.
“처음에 스쿠터 탈 때 그랬죠.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고. 자식 놈도 그게 뭐냐고 하고. 낯설었으니까. 고민도 많이 되긴 했어요. 타고 다녀보니 사람들도 많이 생기고 이제는 많이 나아지긴 했죠.”
** 학교 에서는 장애에 대해 큰 자의식이 없었다고 했다. 이유는 물어보지 않고 서서히 알아갔던 점이었다. ‘무슨 장애 세요?’ 뭐 이런 말이 없었다. 언니고 동생이고 그렇게 만났던 점이 좋았다고 했다. (장단점이 있겠다...)
시선의 문제가 어려운데 자기 몸의 긍정에서 ‘내가 이런데 뭘?’ 라고 하며 주류적 시선과 맞설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편 ‘장애는 사회적 요인이다.’ 라고 말할 때 나는 장애인이니까 ‘이거 이거 내놔’ 라며 보상만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무엇을 하고 싶고 그것을 막는 사회적 요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요구할 때 자기를 긍정하며 삶과 사회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