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여기가 최전선이다.

by 손오공 posted Jul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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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07 02:11:3



기픈옹달

http://zziraci.com/node/453


1. 또다시 엎어짐

ㅇ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논어>를 가르치는 기회가 날아갔다. 이유인즉슨, 학교 정규 수업시간을 빼서 가르쳐야 하는데 교육청 및 학교 교감이 그렇게 못 하게 막는단다. 일을 추진했던 담당 선생님은 미안함을 전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강의는 부탁해놓고 연락 없이 사라지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 게다가 들어보니 그 선생님 잘못도 아닌듯하다. 처음엔 교육청에서 괜찮다고 대충 말했다가 일이 확정될 무렵 안된다고 했나 보다.

그렇게 굴러들어온 알바 자리 하나가 또 사라졌다. 이렇게 엎어진 알바 자리가 벌써 3개째다. 거의 다 되었다 날아가 버렸다. 아쉽긴 하다. 겨우 20만원 남짓이지만 그거라도 있는 게 어딘데. 그 소식을 전하니 식구가 대뜸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ㅡㅡ; 다음 달에는, 다음 달에는 그러며 미루고 있지만 정말 곧 적금 통장을 깨버려야 하는 순간이 올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오래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따져보면 그 알바자리를 잡는 것이 영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공부방 친구들 수업을 바꾸거나 아니면 따로 어떻게라도 시간을 마련하면 될 수도. 그러나 갑자기 공부방 친구들과 더 뭔가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한 번 더 이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기로 한 것. 어쩌면 아직까진 그렇게 절박하지 않은지도. 아니면 억척스러움이 부족한 것인지도. 너무 우아하게 사는 삶에 길들었나? 모르겠다.


2. 애경백화점 수유너머

서당 수업에서 아이들에게 사라진 뒤에 그리운 것, 더 소중해지는 것에 대해 시를 지어보자고 했다. ㅁ이 쓴 시다.

애경백화점 수유너머

애경에 있는 수유너머 가면
매일 매일 풀을 뜯어 냄새를 맡았는데
애경 수유너머가 없어지자 풀 냄새도 못 맡았다
풀 냄새가 너무나도 그립고 보고 싶다

뒤풀이 자리에서 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ㅁ이 예전이 많이 좋았더라고 이야기하더라고. 좁은 골목을 지나, 시장통을 지나 그렇게 애경백화점 옆에 있는 <수유너머 구로>를 찾아오는 것이 좋았나 보다. 아마도 옆에 있는 공원에서 풀을 뜯고 놀았던 게지.

그냥 예상치도 못한 시를 만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이 친구들과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무슨 이야기들이 이 친구들에게 기억되고 있던 걸까. 모르겠다. 어떤 친구는 그렇게 공부한 시간이 지겹기만 하다고 한다. 한 친구는 그 곳이 그립단다. 물론 공부 내용은 기억나지 않겠지. 오가던 그 길, 그게 하나의 그리움으로 그에게 남아 있다.


3 새터민 ㅎ과 소리 없는 ㅌ

ㅎ은 새터민이다. 어머니는 탈북자 아버지는 중국인이란다. 항상 아이들과 문제를 일으킨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수업 시작 하기 전 간식을 먹는 데 혼자 먹는 것을 보았다. 지난주 선생님들에게 소개받았다. 문제가 많은 친구가 있다고. 마침 서당 인원도 적고 심심하던 차에 보내달라고 말씀드렸다. 이번 주 처음 만난 그, 역시나 첫 수업부터 사건이 벌어졌다.

시를 옮겨 쓰는 데, 글씨를 깨끗이 쓰라고 2번을 돌려보냈다. 세 번째 시를 쓰면서 연필을 부여잡고 운다. 연필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면서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짜증 난단다. 억울하단다. 그래도 써야 한다며 기다리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 참 인정없고 나쁜 선생이다. 그래도 변명하자면 오늘 시는 고작 30자 정도의 짧은 시였다. 다른 친구들은 시를 암송도 하고 시를 짓기도 했으니…) 그래도 다행히 세 번째 시를 썼다.

선생님께 돌아가는 길에 끊임없이 투덜거리더라는 소리를 들었다. 억울하다는 분이, 짜증나다는 분이 풀리지 않았나 보다. 그렇게 첫 수업을 마쳤다. 문제는 또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ㅌ.

ㅌ은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다. 눈도 사시라서 지금 나를 똑바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두 눈이 모두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도, 두 눈이 모두 나를 보고 있을 때도 있다. 시선으로도 속을 읽기 어렵다. 이 친구의 엄청난 재능은 어느 순간 바람처럼 사라진다는 거다. 정말 바람처럼. 누구도 그를 찾을 수 없다.

수업 시간에 몇 번이나 사라졌다 나타났다. 학교 공부로 따지면 지적장애지만 분위기를 읽고 주변 상황을 읽는 데는 상상을 초월한다. 누구도 그의 감을 따라잡을 수 없다. 공부방 친구 중에 그런 친구가 종종 있다. 지적장애를 가졌지만 누구보다 분위기를, 사람을, 권력관계를 재빠르게 포착하는 친구들. 소리 없는 유령 같은 친구들. 가끔은 이 친구의 손바닥 위에 내가 있는 것 같다. 언어가 단절된, 문자 텍스트가 사라진 곳에 있는 이들. 이들은 유령이다.

오랜만에 옛 추억이 되살아났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들. 언어의 한계를 던져주는 이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들은 가끔 무서운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누구보다 본질과 핵심을 꿰뚫는 이들. 툭툭 던지는 이들의 말에,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이들의 모습에 내 언어의 무능력을 직면한다. 그래 여기가 최전선이다.


4. 청년 유니온 / 노사 갈등은 가위바위보로

벼르고 벼르다 청년 유니온에게 부탁한 노동 기본권에 대한 강의를 마쳤다. 시작하면서 어찌나 땀을 흘렸던지. 생각지도 못하게 긴장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여차저차 모셔온 분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하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했다. 역시나 낯선 사람 앞에서도 친구들은 여전히 시끄럽다. 이를 어째야 하나…

강의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일순간 ‘알바'라는 주제에 친구들이 주목한다. 뜻밖에(?!) 강의가 잘 진행되었다. 노동 기본권에 대한 강의를 귀 기울여 듣는 모습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건… 물론 웃을 수밖에 없는 일도 있었다. 알바에 퇴직금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ㄷ은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가위바위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하다 상해를 입는다면 누가 치료비를 내야 할까, 노동자가? 사장이? ㄷ은 여전히 가위바위보를 주장한다. 기본권이 지켜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ㄷ은 역시 가위바위보를 주장한다.

그의 이야기에 웃지만 한편 웃을 수 없는 건 그가 가위바위보에 진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식사 후 설거지를 결정할 때도 가위바위보로 한다. 교사고 학생이고 동생이고 형이고 없다. 가위바위보 앞에서는 만민이 평등하다. 아마 서당 수업을 두고 나와 한판 붙었을 때도 가위바위보로 결정하자고 했다면 승복했을 거다. 물론 삼세판으로. 가위바위보는 공정하다. 그러나 세상은 그것을 받아주지 않는다. 최저임금이 얼마냐는 질문에 ㄷ은 당당하게 4320원이라고 말한다. 뒤풀이 자리에서 강연하신 분은 놀랐단다. 그 또래 누구도 최저임금을 정확히 알고 있는 친구는 못 봤다고.

강의 중에 ‘삼신할매의 랜덤'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발단은 이렇다. ㄷ이 사장이 되면 된다고 했다. 강연자의 말은 핵심을 찌른다. 사장은, 자본가는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라고. 불행하게도 나도, 그도, 그 공간에 있는 누구도 자본가로 사장으로 태어나지 못했다. 강연이 끝나고 아이들은 썰물처럼 집에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모두 문제가 있을 때 전화하라는 청년 유니온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다. 아마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올 것이라는 걸 직감한 듯하다.


5. 여기가 최전선

여차저차 진동젤리 친구들에게 구로 아이들을 소개해줬다. 목요일 저녁마다 프로그램을 가졌다. 벌써 12주가 지났단다. 그동안 신경도 못 써준 게 마음에 걸린다. 단단님의 댓글에 눈이 간다. ‘자기 존재를 부정 당하는 곳에서 버티는 일이 <능력-있음> 이라고' 12주 동안 고생한 죠스가 그곳에서 몇 갑자 내공을 쌓았으리라고 위안해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선생님께서 걱정을 말씀하신다. 공부방 ㄱ이 고민이란다. 팔에 상처가 나서 물어보니, 가위로 잘랐단다. 공부방에서 자해, 자살, 폭력은 낯설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를 해치는 친구들 앞에서는 ‘무.기.력.’과 ‘무.능.력.’을 마주한다. 그 선생님은 오래 공부방에 계시고 싶으시단다. 그런데 그 ‘무.능.력.’을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씀하신다.

말이 끊어진 자리,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존재가 부정 당하는 그곳에서, 나의 지위가 흔적조차 없는 그곳에서 나는 무엇으로 말해야 할까. 무장해제당한 그곳에서 아이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비평의 칼날을 휘두른다. 뜻없이 던진 말 속에, 느닷없이 나의 폐부가 찔린다. 그들은 진실도 거짓도 말하지 않는다. 그저 보는 것을, 지금 현재를 말한다.

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설거지를 제해줬더니 반발이 일어났다. 왜 차별하느냐고. 그저 자기의 일이 늘어났다는 정도가 아니다. 차별 없이 대해줘야 나중에 그 친구도 제 몫을 하고 살아가지 않겠냐는 거다. 그 동생에게 그 친구는 설거지 하는 법을 옆에서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교사는 말을 잃었다. 물음표만 남을 뿐

여기가 최전선이 아닐까? 말이 끊어진 그곳에서 말을 찾아야 한다. 허위 없이 진실만을 말해야 하는 곳. 그러나 그 진실이 무엇을 보여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인내가, 어쩌면 침묵이, 어쩌면 무관심이 필요할 수도. 다음 달엔 이 변경에 정수형이 등판한다. 과연 어떤 말과, 어떤 사건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떤 비전(?傳)이, 어떤 무공이 펼쳐질지 기대해봐야겠다.



단단

2011.04.07 13:58:48

일어나자마자 컴을 켜고 본 이 글... 눈물, 콧물 닦아내며 그 동안 공공미술하면서

얼마나 많이 '능력-없음'을 느끼며 살았는지 새록새록 기억이 났습니다.

처음으로 아이들을, 미술프로그램을 준비해 대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창신동에 있는 한 복지관의 대략 40명쯤 되는 아이들, 그들 중 1/3 정도는 지적장애이거나

집중력 저하 등등....

아무리 목청 높여 얘기 해도 듣질 않고, 보질 않더군요. 오직 자기들끼리만 얘기 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술프로그램이 잘만 하면 걸작(?)은 안나오더라도

잠시 그들을 미술의 세계에 몰입하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요.

끝마친 후 쉬어버리 목소리 보다 더 속상했던 것은 '능력-없음'의 확인 이었고

섬세한 준비 없음의 후회.

이후로 아이들을 만날 때 항상 긴장을 합니다. 어른들을 만나는 일 보다 훨씬 힘들죠.

쓰신 글처럼 날카로운 비평을 날립니다. 말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온몸으로....

나중엔 너무 힘들어서 프로그램 준비는 제가 하더라도 진행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일이 많아졌어요.

끝내 제가 무너진거죠.

구로 갔을 때, 피할 수 없는 올 것이 왔구나 라고 생각했어요.

다시 버텨내야하는 시간이.....^^

 

조르바

2011.04.10 23:41:30

직장인의 비루한 삶과는 또다른 장에서도 버텨내기 신공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네요.

 

뻔히 문자로 아는 사실임에도, 이렇게 간접적으로나마 대면하지 않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나이 들면서 점점 쇠퇴하는 능력 중 하나입니다).

 

"자기 존재를 부정 당하는 곳에서 버티는 일이 능력-있음"이라 하시니

 

새삼 제 자신이 능력자인것 같아 조금 뿌듯해지는데요 하하하-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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