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기> 세악, 중력악령 에 대하여.(방울)

by 손오공 posted Jul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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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0:08:19


박카스

현장인문학 (12/5/7)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다시쓰기

김호식(방울). 듣고 말함.

박카스. 듣고 적음. 가끔 몇 단어를 추천해보기도 함.

 

* 세 개의 악에 대하여

 

1.

꿈에, 지난 아침 꿈에 나 오늘 어느 곶 위에 서 있었다. 우리나라 저편에서 저울을 들고 세계를 우리나라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오, 아침놀이 이처럼 일찍 찾아오다니, 저 질투가 심한 자, 그가 뜨겁게 타오르면서 나를 깨우고 만 것이다! 아침놀은 언제나 내 아침 꿈의 달콤함을 질투하지.

시간의 여유가 있는 자에게는 재볼 만하고, 저울질 잘하는 자에게는 저울질해볼 만하고, 억센 날개를 가진 자에게는 다가갈 수 있고, 은행을 까는 신성한 자에게는 그 속을 미루어 헤아릴 수 있는 것, 내가 꿈 속에서 본 세계는 그런 것이었다.

대담한 뱃사람이자 반쯤은 배며 반쯤은 돌풍인, 그러면서 나비처럼 소리없고 숫매처럼 참을성 없는 나의 꿈. 그런 그가 어떻게 오늘 우리나라를 저울질해볼 끈기와 겨를을 갖게 되었을까!

“무한한 세상” 일체를 싸잡아 비웃어주는 나의 지혜, 깨어나 웃고 있는 나의 대낮의 지혜가 은밀하게 나의 꿈에게 말을 건넨 것은 아닌가? “힘이 있는 곳에서는 수가 지배자가 된다. 수가 보다 많은 힘을 갖고 있다” 는 것이 그의 주장이니.

나의 꿈은 어찌도 그리 확신에 찬 눈길로 이 유한한 세계를 바라보고 있던가. 호기심과 돌아봄 없이, 두려워하지도 애원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마치 무르익은 사과, 시원하고 부드러운, 비로도 같은 과피를 자랑하는 잘 익은 황금사과가 내 손에 주어져 있듯, 세계는 내게 그렇게 주어져 있었다.

마치 먼 길에 지친 자들이 앉아 기대기도 하고 또 발판으로도 삼을 수 있도록 굽어 있는, 가지가 널브러진 늠름한 나무가 내게 눈짓이라도 하듯 세계는 나의 곶 위에 그렇게 서 있었다.

마치 가냘픈 손이 내게 바구니 하나를, 수줍어하면서도 우러러보고 있는 눈길을 뿅가게 할 생각에서 열려 있는 바구니 하나를 내놓듯이, 세계는 오늘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사람-사랑을 위협, 접근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불가사의하지 않고, 사람들의 지혜를 잠재울 수 있을 만큼 명백한 해답도 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악담을 해온 이 세계, 그것은 오늘 내게 인간적으로 기분 좋은 것이었다!

나 오늘 이렇게 일찍 일어나 세계를 저울질할 수 있었으니 나의 새벽꿈이 얼마나 고마운가! 꿈이, 마음을 위로해주는 자인 그가 인간적으로 보아 기분 좋은 것으로서 나를 찾아왔으니!

낮이 되면 꿈에서 본 대로 행동하고 그 가운데서 가장 훌륭한 점을 모방하고 배울 생각에서, 나 이제 더없이 사악한 것 셋을 저울에 올려놓고 장애인의 관점에서 제대로 저울질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축복하는 법을 가르친 자, 바로 그가 저주하는 법도 가르쳤겠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가장 저주받아온 네 개는 어떤 것들인가? 네 가지 없는 것들이라 불리는 것들, 나 이제 그것들을 저울에 달아볼 참이다.

관능적 쾌락, 지배욕, 이기심, 작은 사람 이들 넷이 지금까지 가장 혹독하게 저주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가장 고약하게 비방받고 왜곡되어 왔던 것들이다. 나 이 넷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저울질해볼 참이다.

자! 여기 나의 절벽이 있고 저기 대지가 있다. 대지는 내가 사랑하는, 백 개의 머리를 가진 늙고 충직한 개, 저 들개는 덥수룩한 모습으로 응성을 부려가며 내게 바람처럼 다가오는구나.

자! 여기 바람부는 절벽에서 나 저울을 들고 있겠다. 나는 너, 내가 좋아하는 나무, 짙은 향기를 내뿜는 저 넓고 둥글게 가지 뻗은 은자의 나무를 증인으로 세우겠다!

어떤 다리를 건너 현재는 미래로 건너가는가? 어떤 강제에 의해 높은 것은 자신을 강제하여 낮은 것을 향하도록 만드는가? 그리고 무엇이 이미 최상의 단계에 이른 것을 명하여 더욱 위로 성장하도록 하는가?

저울은 지금 조용히 수평을 이루고 있다. 네 개의 무거운 질문을 올려놓자 다른 쪽 저울판에 세 개의 무거운 대답이 놓이면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2.

 

관능적 쾌락. 참회복을 걸친 채 신체를 경멸하고 있는 자 모두에게는 양심을 찔러대는 바늘이자 가시오, 배후 세계를 신봉하고 있는 자들로부터는 ‘세속’으로 저주받고 있는 것이 이것이다. 관능적 쾌락이란 것이 저들 혼란과 오류를 가르쳐온 자 모두를 조롱하여 바보 취급하기 때문이다.

관능적 쾌락, 잡것들에게는 저들을 불태워버리는, 천천히 타오르는 불길이다. 벌레 먹은 하나의 나무와 악취 나는 하나의 누더기에게는 여차하면 욕정에 불을 지를, 그리하여 김을 무럭무럭 낼 채비가 되어 있는 화덕이다.

관능적 쾌락. 그러나 그것은 자유로운 마음을 지닌 자들에게는 순진무구한 것이자 자유로운 것이며, 지상 낙원에서 누리는 행복이자 온미래가 현재에 바치게 될 넘칠 듯한 고마움이다.

관능적 쾌락. 그것은 쇠잔해 있는 자들에게야 감미로운 독이지만, 호랑이의 의지를 갖고 있는 자들에게는 대단한 강심제요 정성스레 저장해온 최상의 소주다.

관능적 쾌락. 그것은 한층 더 높은 행복과 더없이 높은 희망에 대한 비유적 행복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혼인이, 그리고 혼인 이상의 것이 언약되어 있으니.

사내와 여인보다도 더 낯선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데 사내와 여인이 얼마나 서로에 대해 낯선 존재인지를 그 누가 제대로 파악했으랴!

관능적 쾌락. 나 나의 사상과 내가 하는 말 둘레에 울타리를 치겠다. 돼지와 광신자가 내 정원에 함부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지배욕. 그것은 더없이 가혹한 마음을 지닌 자를 때려대는 빨갛게 달아오른 채찍이다. 더없이 잔인한 자가 자신을 위해 아껴둔 무서운 고문이다. 화형을 위해 쌓아놓은, 타오르는 장작더미에서 솟구치는 음산한 불길이다.

지배욕. 그것은 더없이 허영심에 찬 노동자에게 달라붙어 있는 교활한 등에다. 모든 애매한 덕을 비웃는 노동이다. 온갖 전투장비를 갖고 다니는 중장비운전기사다.

지배욕. 그것은 썩어 푸석푸석한 것과 속이 텅 빈 것이라면 남김없이 부수고 갈라 터뜨리는 지진이다. 검은색무덤을 파헤치는 여우다. ‘아이 좋아’ 누런 텔레토비에게 번개처럼 떨어지는 물음표다.

지배욕. 그것은 그 눈에 띄기라도 하면 기어다니게 되는, 머리를 조아리며, 전전긍긍하게 되는, 그리하여 대기업 사장과 중산층들보다도 더 비천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끝내 크나큰 재수없다는 소리가 사람들로부터 터져나오기까지.

지배욕. 광우병 걸린 소 물러가라! FTA체결한 놈들 물러날때까지. 이렇게 외친다.

지배욕. 그러나 그것은 유혹적인 모습으로 순결한 자, 고독한 자, 그리고 자족할 만큼 높은 자의 경지까지 오른다. 지상의 파란 하늘에 보랏빛 행복을 유혹하듯 그려넣는 사랑처럼 그렇게 불타오르며.

지배욕. 누가 연대의 바램을 두고 병적탐욕이라고 부르겠는가! 진정, 그같은 열망과 하강에는 병적인 것도 탐욕적인 것도 없거늘!

고독의 저 높은 경지가 영원한 고독을 마다하고 자족하지 않는 것. 산이 골짜기로 내려오고 높은 곳에 있는 바람이 낮은 곳으로 불어 내리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일찍이 싸움은 ‘베푸는 덕’이라고 부른 바 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일도 일어났으니 그가 말로써 이기심을, 힘찬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건전하며 건강한 이기심을 복된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이다. 진정, 처음으로!

고상한 신체, 아름답고 강력하며 생기 있는 신체가 속해 있는, 그리고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물이 황금빛 호수가 되어 되비추어주고 있는, 그 힘찬 영혼에서 솟아오르는.

저 유연하게 춤추고 말하는 디오니소스. 이같은 신체와 영혼이 누리는 자기향락은 스스로를 일컬어 ‘덕’이라고 한다.

이같은 술기운은 성스러운 숲으로 감싸듯 좋음과 나쁨이라는 말로 자신을 감싼다. 그러고는 행복이라는 이름 아래 온갖 경멸스러운 것을 자기 자신으로부터 몰아낸다.

용기를 데리고 온다. 그는 나쁜 것은 용기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겁에 질린 자, 경멸스럽다.

그는 모든 애처로운 지혜까지도 경멸한다. 진정,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지혜. 밤그늘-지혜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자나깨나 “모든 것은 헛되다!”고 탄식하는.

소심한 불신, 그리고 눈길과 손길 대신에 개들을 원하는 자들은 자기향락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간주된다. 너무나도 의심스러운 지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지혜야말로 겁에 질린 영혼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보다 하찮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은 쉽게 영합하는 자, 곧장 땅바닥에 드러눕는 개와 다름이 없는 자, 겸허한 자다. 하긴 겸허하며 개와 다를 바 없는, 경건하며 쉽게 영합하는 지혜도 있긴 하다.

자기 자신을 지키려 하지 않는 자, 독이 든 침과 사악한 시선을 말없이 삼켜버리는 자, 무던히 참기만 하는 자, 모든 것을 인내하는 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매사 만족해하는 자들도 자기향락에게는 혐오스럽고 역겨운 존재들이다. 그런 것들은 낙타의 근성이니.

누가 신들 앞에서 그리고 이건희의 발길질 앞에서 하인처럼 굴든, 사람들과 멍청한 여론 앞에서 그리하든 이 복된 이기심은 일체의 낙타근성에 침을 뱉는다!

나쁨, 기가 죽어 있는 것, 쩨쩨하게 굴종이나 하는 것, 부자유스럽게 깜박이는 눈, 짓눌린 가슴, 두텁고 겁먹은 입술을 하고 입을 맞추는 저 위선에 찬 타협적 태도 모두를 복된 이기심은 그렇게 부른다.

사이비 지혜. 낙타와 노새, 그리고 지쳐 있는 자들의 온갖 익살을 저 복된 이기심은 그렇게 부른다. 특히 사제들의 고약하며, 멍청한 그리고 말도 되지 않는 어리석음 전체를!

그러나 사이비 현자들, 모든 사제들과 세상살이에 지쳐 있는 자, 여인과 낙타의 영혼을 가진 자, 오, 예로부터 이같은 자들의 농간이 얼마나 이기심을 학대해왔던가!

거기에다 이기심을 학대하는 것, 바로 그런 행위가 덕으로 간주되고 덕으로 불러왔으니! 그러니 무욕, 세상살이에 지쳐 있는 겁쟁이들, 그리고 신도들이 그것을 소망한 것도 실로 당연한 것이리라!

그러나 이들 모두에게 그날이, 변화가 그리고 심판의 칼이. 저 위대한 정오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많은 것이 반드시 백일하에 드러나리라!

그리고 자아를 두고 건전하고 신성하다고 말하며, 이기심을 두고 복되다고 말하는 자, 진정, 예언자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 “보라 위대한 정오가 다가오고 있다. 가까이 와 있다!” 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중력의 악령에 대하여.

 

1.

 

나의 입심, 그것은 민중의 것이다. 앙고라 토끼들에게는 내 말이 너무 투박하고 간절하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 먹물을 뿜어대는 낙지나 글만 끄적이는 학자들에게는 더욱 낯설게 들린다.

나의 손, 그것은 무례한 어릿광대의 손이다. 그러니 모든 책상과 벽, 그리고 아직도 어릿광대들이 덤벼들어 이리저리 꾸미고 낙서할 여백을 남겨두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화 있을지어다!

나의 발, 그것은 자동차다. 이 자동차로 나는 길로 마구 몰고다닌다. 그렇게 요란하게 질주하면서 나는 미친 듯한 기쁨을 맛본다.

나의 위장, 그것은 독수리의 위장이 아닐까? 무엇보다도 어린 양의 고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새의 위장임에는 틀림없다.

때묻지 않은 것을, 그것도 조금만 먹고 하늟을 날, 날아가 버릴 채비를 하고 초조해하고 있는, 나의 천성이 이러한데, 그 가운데 어떤 것, 어찌 새의 천성이 아니겠는가!

나 무엇보다도 저 중력의 악령에 적의를 품고 있는데, 그것이야말로 새의 천성이렷다. 진정, 불구대천의 적의와 최대의 적의 그리고 뿌리 깊은 적의를! 나의 적의가 일찍이 날아보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며 길을 잃고 헤매어보지 않은 곳이 어디 있던가!

그것에 관해서라면 나 노래를 하나 지어 부를 수도 있으리라. 그런 노래를 부르고도 싶다. 텅 빈 집에 나 홀로 있건, 그리하여 내 자신의 귀에 대고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요즘 서바이벌 가수게임이 유행인데, 청중이 많아야지 부를 수 있는 그 가수들이 그러하다.

 

 

2.

 

언젠가 사람들에게 나는 법을 가르칠 자, 그가 경계석을 모두 옮겨 놓고 말 것이다. 경계석들은 모두 제 스스로 하늘로 날아갈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는 이 대지에게 “가벼운 것”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세례를 베풀 것이다.

오토바이는 가장 빠른 자동차보다 더 빨리 달린다. 그런 그도 아직은 머리를 무거운 대지 속에 무겁게 처박고 있으니, 아직 날지 못하는 사람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자에게 대지와 삶은 무겁게 보인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비행기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을 알아야 한다. 나 이렇게 가르치는 바이다.

그렇다고 병든 자, 병에 찌든 자 하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자애라는 것조차도 그런 자들에게서는 악취를 풍기기 때문이다!

나 가르치노니, 자기 자신을 건전하며 건강한 사랑으로써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자기 자신을 참고 견뎌내가며 쓸데없이 방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이러한 방황은 ‘이웃사랑’이라는 세례명으로 자신에게 세례를 베푼다. (믿음은 교회에 가서 자기가 믿으면 되지. 왜 집까지 찾아와가지고 문 열어달라고 하고 교회로 오라고 하는 지 모르겠어.) 그것도 이 세계에 무거운 짐이 되어온 자들에 의해.

그리고 진정,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고작 오늘과 내일을 위한 계명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모든 기예 가운데서 가장 섬세하고 교묘하며, 궁극적인, 그리고 가장 큰 인내를 요구하는 기예인 것이다.

그러니까 소유물이 모두 그 소유자에게 잘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체의 보고 가운데서 자기 자신의 것이 가장 늦게 발굴되기 마련이다. 중력의 악령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정부가 바뀔 때 마다 공무원들은 나에게 복지법이라는 명령을 들려주었다. 민중과 정부라는 끈 그것이 있기에 나는 생존해도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 없도록, 제때에 그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을 불러 저들 곁으로 오도록 한다. 중력의 악령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복지법이라는 끈을 던져놓고 힘들다고 말하면 삶이 원래 그런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사람만이 짊어지기에 고된 짐이다! 낯선 것을 너무나도 많이 어깨에 짊어지고 가기 때문이다. 낙타처럼 무릎을 꿇고 마음껏 짐을 싣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억세고 짐깨나 지닌 사람은 낯선 무거운 말과 가치들을 너무나도 많이 짊어진다. 그래서 삶이 아스팔트로 보이는 것이다!

진정! 자기 자신의 그 많은 소유물을 지고 가기에도 벅찬 터에! 게다가 사람의 내면에 있는 많은 것은 굴과 같다. 즉 역겹고 미끌미끌하며 좀처럼 잡히지가 않는다.

그 때문에 고귀한 장식으로 치장한 고귀한 껍질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이같은 기술 역시 사람들은 익혀야 한다. 껍질과 아름다운 겉모습에 영리한 맹목을 갖추는 것 말이다!

(코코넛 열매처럼 딱딱한 열매들, 그 안에 물을 먹을려면 자꾸 깨야하잖아. 힘이 들지.)

여인들, 더없이 섬세한 여인들은 이 사실을 안다. 약간 뚱뚱한 몸매와 약간 마른 몸매. 오, 이 약간이란 것에 얼마나 많은 숙명 깃들어 있는가!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를 밝혀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 자신에게 더없이 어렵다. 정신이 때때로 영혼에 대해 거짓말을 하니 말이다. 중력의 악령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선이요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라면 이미 자기 자신을 이미 발견한 것이 된다. 그런 자는 그렇게 말함으로써 “만인을 위한 선과 만인을 위한 악”운운해가며 지껄여대는 두더지와 난쟁이를 침묵시킨다.

진정, 나는 온갖 것을 다 좋다고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이 세계조차 최상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을 나는 매사에 만족하기만 하는 자들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맛있어 하는, 매사에 대한 만족. 이것이 최선의 취향은 아니다! 나는 “나”,“그렇다”그리고 “아니다”를 말할 줄 아는 반항적이며 까다로운 혀와 위장을 높게 평가한다.

온갖 것을 다 씹어 소화하려는 것은 누런 텔레토비들이 하는 일이다! 언제나 아이 좋아, 아이 좋아.

심원한 노랑과 강렬한 빨강, 나의 취향이 바라는 것들이다. 나의 취향은 모든 색에다 피를 섞는다. 자신의 집에 회칠이나 하는 자는 회칠을 한 영혼을 드러낼 뿐이다.

어떤 사람은 미라를, 또다른 어떤 사람은 유령을 사모한다. 이런 자들은 모든 살과 피에 적의를 품는다. 오, 이 얼마나 내 취향에 거슬리는 자들인가! 나 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는 온갖 인간들이 침을 뱉고 토해내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도 머물고 싶지도 않다. 이것이 나의 취향이니, 나 차라리 도둑과 위증자 사이에서 살겠다. 어느 누구도 입에 황금을 물고 있지 않으니.

더욱 역겨운 존재는 남의 침 까지도 핥는 온갖 아첨꾼들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것 가운데서 더없이 역겨운 인간-짐승, 그것을 나 더부살이 짐승이라는 세례명으로 불러왔노라. 사랑은 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에 의해 살기를 원하고 있었으니.

조악한 짐승이 되느냐 아니면 짐승을 부리는 조악한 조련사가 되느냐. 이것말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사람 모두를 나 가련하다고 말한다. 나 이런 자들 가까이에 나의 오두막을 짓지 않으련다.

허구한 날 기다려야만 하는 자들도 가련하기는 마찬가지다. 저들도 내 취향에 거슬린다. 공무원, 소상인, 왕, 그리고 땅이나 지키고 가게나 지키는 모든 자들 말이다.

진정, 나 또한 기다리는 것을 배우기는 했다. 그것도 철저하게, 그러나 단지 나 자신을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도약하는법, 기어오르는 법과 춤추는 법을 배웠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 언젠가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자는 먼저 서는 법, 걷는 법, 달리는 법, 기어오르는 법, 춤추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밧줄 사다리로 허다한 창문에 기어오르는 법을 배웠다. 나는 민첩한 발로 높은 돛대에 오르기도 했다. 깨침의 높은 돛대에 올라 앉아 있는 것, 내게는 적지 않은 행복으로 보였다.

높은 돛대 위에서 자그마한 불꽃처럼 깜박이는 것. 비록 작은 빛이기는 하지만, 표류하고 있는 뱃사람이나 난파한 뱃사람에게는 커다란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 늘 길을 묻고는 했지만, 마지못해 그렇게 했을 뿐이다. 물어물어 길을 가는 것, 언제나 내 취향에 거슬렸으니! 그래서 나 차라리 직접 그 길에게 물어가며 길을 가려 시도해보았던 것이다.

시도와 물음, 그것이 나의 모든 행로였다. 그리고 진정, 그같은 물음에 대답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나의 좋음이다.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나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숨기지 않는 나의 취향말이다.

“이제는 이것이 나의 길이다. 너희의 길은 어디 있지?”나는 내게 “길”을 묻는 자들에게 이렇게 대꾸해왔다. 그런 길은 존재하지도 않으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박카스

2012.05.07 10:25:29

방울왈, '아 텔레토비 한 번 해서 쉬울 줄 알았는데 디~게 어렵네.'

박카스왈, 하하하 형 명구떳어요 떳어.

 

'누가 연대의 바램을 두고 병적탐욕이라고 부르겠는가!

진정, 그같은 열망과 하강에는 병적인 것도 탐욕적인 것도 없거늘!'

좀 더, 말해줘요. 형!

우와. 너무 좋다.

 

방울왈, 이거 노들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할 지도 모르겠는데 요새 시위도 뜸하게 나갔는데^^

박카스왈, 괜찮아. 괜찮아. 앞으로 나가요.^^

 

(...)

 

아, 인제 못하겠다!

형, 사비누나가 지난번 대화 올린 거에 댓글 달았어요.

방울왈, 진짜? 어디어디.

 

(...)

 

'정부가 바뀔 때 마다 공무원들은 나에게 복지법이라는 명령을 들려주었다.

민중과 정부라는 끈. 그것이 있기에 나는 생존해도 좋다는 것이다.' 

 

(...)

 

방울왈, 아 이제 머리가 터질라고 한다.

잠깐, 박카스 초코아이스크림을 사오다.

수혈합시다.

 

(...)

 

온갖 것을 다 씹어 소화하려는 것은 누런 텔레토비들이 하는 일이다! 언제나 아이 좋아, 아이 좋아.

 

(...)

 

나 얼마나 가혹했던가.

얼마나 좋은 소리들을 들었던가.

아아! 잊지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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