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딸들 틈에서' <다시쓰기, 발제>

by 손오공 posted Aug 1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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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1:26:58


박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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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카스

<사막의 딸들 틈에서>

 

1.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를 자칭하고 있던 방랑자 :

"나가지 말아달라! 여기 우리 곁에 있어달라! 그렇지 않으면 저 지난날의 숨막히는 비탄이 또다시 우리를 덮칠지도 모를 일이니."

"이미 저 늙은 마술사가 자신의 고약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우리를 극진하게 대접해주었다. 보라, 저 선량하고 경건한 교황은 눈물을 글썽이며 아예 우수의 바다로 다시 배를 띄우지 않았는가.

왕들은 그래도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 그같은 의연함을 누구보다도 훌륭히 몸에 익힌 자가 바로 저들이니! 그러나, 내기를 해도 좋은 일이겠거니와, 보고 있는 자가 없다면 저들에게도 사악한 짓거리가 다시 벌어지리라.

떠도는 구름, 눅눅한 우수, 구름 덮인 하늘, 도둑맞은 태양, 울부짖는 가을 바람이 벌이는 저 사악한 짓거리가.

우리의 울부짖음 그리고 절박한 부르짖음! 으악! 사악함! 못 보겠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러니 우리 곁에 있어달라! 여기에 입을 열고 싶어 안달인, 숨겨진 많은 비참과 많은 저녁이 그리고 많은 구름과 숨막히는 대기가 있으니!

그대는 우리를 사나이를 위한 힘찬 음식과 옹골찬 격언으로 대접해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사악함이 우리를 움츠리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막아달라!

차라, 그대만이 그대 주변의 대기를 힘차게 하고 맑게 할 수 있다! 내 일찍이 이 지상에서 여기 그대 동굴, 그대 곁에 있는 이 대기처럼 한량없이 좋은 대기를 들이켜본 일이 있었던가?

나 많은 나라들을 둘러보았으며, 그 덕에 나의 코는 온갖 대기를 음미하고 평가할 줄 알게 되었지. 맡아본 냄새 중 당신과 있을 때 나는 나의 향기가 가장 취할만 하더라!

예외로 한다면, 예외로 한다면, 오 옛 추억! 용서하라! 그리고 내가 일찍이 사막의 딸들과 함께 있을 때 지은 바 있는 후식을 위한 옛 노래 하나를 들어달라.

저들에게도 여기에서와 같은 상쾌하며 맑은 동방의 대기가 있었다. (음..) 그때 나 구름이 가득 낀, 음습하고 우울하며 늙어 기력을 잃은 유럽 땅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음.. 그래..)

그때 나는 그같은 동방의 소녀들을, 그리고 그 어떤 구름으로도, 그 어떤 사상으로도 얼룩지지 않은, 또다른 파란 하늘을 사랑했었다.

믿기지 않을 것이다. 춤을 추지 않을 때는 저들이 얼마나 얌전하게 앉아 있었는지를. 깊숙이, 그러면서도 아무 상념 없이, 작은 비밀처럼, 예쁜 끈으로 장식한 수수께끼처럼 그리고 후식용 호두처럼.

실로 다채롭고 이국적인 모습으로! 구름 한 점 없이. 풀 수 있는 수수께끼라도 되듯. 나 그때 소녀들을 즐겁게 해줄 생각에서 후식용 시편 한 편을 지었지.

(나그네 늙은 마술사의 하프를 낚아채고는 다리를 꼬고 침착하고 노련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어 코로 대기를 천천히, 그러면서도 음미하듯 들이마셨다. 마치 이국에서 새롭고 낯선 대기를 맛보는 사람이라도 되듯이. 그러고 나서 그는 우렁차게 노래하기 시작했다.)

 

2.

 

노래를 시작하기전 나그네에게 잠시 떠오른 말:

사막은 자란다. 화 있을지어다, 사막을 간직하고 있는 자에게!

 

- (더욱 거세게) 아! 장엄하기도 하지!

실로 장엄도 하도다!

위엄 있는 시작이로다!

아프리카 대륙답게 장엄하구나!

사자에 걸맞는,

아니면 기품 있는 울보 원숭이에 걸맞는-

-그러나 그대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나의 친구, 소녀들이여,

야자나무 밑,

그대들의 발 아래

처음으로,

나, 유럽에서 온 사람은 허락받았다.

앉아도 좋다는. 셀라.

진정 놀랍도다!

나 지금 여기 앉아 있노라.

사막을 가까이 두고, 그리고 어느덧

사막으로부터 다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조금도 황폐해지지 않은 채 :

말하자면 이 더없이 작은 오아시스가

나를 삼켜버린 것이다- :

-그가 하품을 하며

사랑스러운 그 입을 벌렸던 것이다,

모든 입 가운데서 가장 좋은 향기를 머금은:

나 그 속으로 떨어졌고,

아래로, 가로질러- 그대들 사이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그대 나의 친구, 소녀들이여! 셀라.

 

영원, 영원하시라, 저기 저 고래여,

손님들을

이토록 편케 해주니! 그대들은 이해하는가

나의 이 박식한 변죽을?

저 고래의 배여 영원할지어다,

그것이

이렇듯

그토록 사랑스런 오아시스-배라면 : 그러나 나 의심하노니,

-나, 유럽 땅에서 왔으니,

그 어느 나이 지긋한 아낙보다

의심이 많은.

신이시여 바로잡아주옵소서!

아멘!

 

나 지금 여기 앉아 있노라,

이 작디작은 오아시스에,

대추야자 열매처럼,

갈색으로, 아주 달콤하게, 황금빛으로 무르익어,

소녀의 동그란 입술을 갈망하면서,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소녀답고

얼음장처럼 차디차고, 눈처럼 희며, 날카로운

앞니를 갈망하면서 : 말하자면 이러한 앞니를

타는 듯한 대추야자 열매의 심장은 하나같이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셀라.

 

이름을 댄 저 남방의 열매들과

흡사하게, 너무나도 흡사하게

나 여기 누워 있노라, 작은

날벌레들이

나불나불 희롱하며 떠돌아다니는 가운데,

마찬가지로 더욱 작고

더욱 어리석으며 심술궂은

소망과 착상들이, -

그대들에게 둘러싸여, -

그대들 말없는, 왠지 불안해하는

소녀 - 고양이들이여,

두두와 줄라이카여,

-온갖 감정들을 말 한 마디에 담아 표현하자면

스핑크스에 둘러싸여 :

(신이시여 용서하여주소서

이렇게 말하는 죄를!)

- 나 여기 앉아 있는 것이다, 더없이 상쾌한 대기를 들이마셔가며,

진정 낙원의-대기를,

밝고 경쾌한 대기를, 금빛 줄을 하고 있는,

이토록 상쾌한 대기는 언젠가

달에서 내려왔을 것이다-

우연히,

아니면 분방함에서?

옛 시인들이 노래하듯.

의심이 많은 나는 그러나

그것을 의심한다,

나, 유럽 대륙에서 왔으니,

그 어느 나이 지긋한 아낙보다도

의심이 많은.

신이시여 바로잡아주옵소서!

아멘!

 

이 더없이 상쾌한 대기를 들이마시며,

술잔처럼 부풀어오른 콧구멍을 하고는,

미래도, 추억도 없이

나, 여기 앉아 있노라, 그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나의 친구, 소녀들이여,

야자나무를,

어떻게 그가 춤추는 여인처럼,

몸을 구부리고 비틀어대며 엉덩이를 흔들어대고 있는지를 바라보며.

- 오래오래 바라보고 있다 보면 따라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보이거니와, 야자나무는 춤을 추는 여인처럼,

이미 너무나도 오랫동안, 위태위태할 정도로 오랫동안

언제나, 언제나 한쪽다리로만 서 있었나?

- 그렇게 보이거니와, 그는 다른 한쪽 다리는

아예 잊고 있었는가?

헛되고 부질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잃어버린 다른 한쪽 보석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 달리 말해 또다른 다리 하나를-

저들의 깜찍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는

부채처럼, 팔랑거리며 번쩍이는 스커트의

그 신성한 주변에서.

그렇다, 그대들 아리따운 나의 친구, 소녀들이

내 말을 전적으로 믿으려 할진대:

그는 그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것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또 다른 다리 하나는!

사랑스러운 또 하나의 다리는, 얼마나 안됐는가!

어디에 - 있을까, 버림받은 것을 슬퍼하며?

저 외로운 다리는?

아마도 노기를 띤 금발 갈기의 사자와 같은 괴물 앞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미

물어뜯기고, 갈기갈기 뜯겨 먹힌 채-

불쌍하다, 아! 아! 갈기갈기 뜯겨 먹혔구나! 셀라.

 

오, 울지를 말라,

여린 마음이여!

울지를 말라, 그대

대추야자 열매의 마음이여! 젖가슴이여!

그대, 감초 같은 마음을 가진-

작은 주머니여!

더 이상 울지를 말라,

창백한 두두여!

사나이다워라, 줄라이카! 용기를 내라! 용기를!

- 아니면 강인하게 하는 것, 마음을 강인하게 하는 어떤 것이

여기, 이 자리에 있어야 하나?

어떤 엄숙한 잠언이?

어떤 장엄한 격려가? -

하! 올라오라, 위엄이여!

덕의 위엄이여! 유럽인의 위엄이여!

바람을 불어넣어라, 거듭 불어넣어라,

덕의 풀무여!

하!

다시 한번 울부짖어라,

기품 있게 울부짖어라!

기품 있는 사자로서

사막의 딸들 앞에서 울부짖어라!

- 덕의 울부짖음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소녀들이여,

모든 유럽적 열정과 갈망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 이미 거기 서 있으니,

유럽인으로서,

달리 도리가 없으니, 신이시여 도와주옵소서!

아멘!

 

사막은 자란다. 화 있을지어다, 사막을 간직하고 있는 자에게!

 

***************************************************************************************************************************************

 

발제.

 

<사막의 딸들 틈에서>

-노래하고, 춤을 췄던 기억.

 

 

박카스

 

이 장에서는 차라투스트라의 말은 단 두 줄 등장하고, 대부분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를 자칭하는 방랑자의 독백과 노래가 읊조려진다.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가 말을 하는 시간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그림자를 자칭하는 방랑자는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곁을 떠나갈 것을 두려워하여 차라투스트라를 자신의 곁에 묶어 두려고 한다. 그림자방랑자는 진리, 우수, 사악함, 입을 열고 싶어 안달인, 숨겨진 많은 비참과 많은 저녁이 그리고 많은 구름과 숨막히는 대기가 무서워 죽겠다.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을 떠나면 자신의 연약함이 또 다시 드러날까 두렵다. 그래서 내가 아닌 차라(너)를 붙잡고자 하고, 바로 네가 힘찬 주변의 대기를 가져다 줄 것을 기다린다.

 

그림자방랑자는 이어 기억의 노래를 부른다. 사막의 딸들에게 옛 노래를 불러주었던 기억. 그 소녀들을 즐겁게 해줄 생각에서 식후 시 한 편 지었던 기억.

'나는 사막에서 야자나무 밑에 소녀들 발 아래 앉아도 좋다고 허락을 받았었지, 그 오아시스에서 소녀들과 춤을 추는 사람이었었지.' 그런데 곧 그림자방랑자는 지금 자신이 한쪽 다리를 아예 잃어버렸음을, 자신에게 그것이, 사라져버렸음을 깨닫는다. 울부짖고, 덕의 위엄을 외치지만, 그림자방랑자는 다시금 괴로움에 신을 찾는다. 마치 차라투스트라가 자신의 바깥에 어떤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쫓듯이. 그림자 방랑자는 잃어버린 다리, 그것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절규한다. 용기와 덕의 위엄을 부르짖는다.

 

그림자 방랑자는 어떤 기억에 파묻혀있다. 그때 그것, 사실 사막이라 생각되는 그것은 사막이 아니었을 것이고, 소녀들도 소녀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림자방랑자는 이제서 그때의 사막과 지금에서야 보이는 그때의 소녀들, 그리고 그때의 내가 가졌던 활력과 노래의 기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림자방랑자는 한쪽 다리, 그것, 활력을 잃었다. 덕의 위엄을 절절히 부르짖으면서도, 지금은 아직 그것을 여기서 만들어낼 수 는 없는 상태이다.

 

"사막은 자란다. 화 있을지어다, 사막을 간직하고 있는 자에게!

향수는 자란다. 기억에만 파묻혀있을때, 과거와 미래는 먼지에 덮혀질 것이다. 향수에 젖어있는 자에게!"

 

그러나 그림자 방랑자는 보았다.

그때, (사막의 딸들이 자신과 춤을 추었을때) 자신은 위태위태하게 한쪽 다리로 서있었으면서도, 다른 한 쪽 다리를 아예 잊고 있었고, 헛되고 부질 없는 일이었지만 잃어버린 다른 한쪽 보석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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