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의 축제-다시쓰기,발제

by 손오공 posted Aug 1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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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15:42:11


철없는아이


나귀의 축제-다시 쓰기

1

나귀에 대한 찬양이 무르익으며 이어지자 차르투스트라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어 손님들 한가운데로 뛰어들며 외쳤다.

*차라투스트라:이-아!(나귀 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더 크게)

사람의 자식들이여, 이 무슨 짓들인가?

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당신들을 봤으면 어쩔 뻔했겠는가. 누구라도 그대들의 이 진기한 신앙을 직접 봤다면, 그대들이 더없이 신을 모독하는 자들이며, 가장 어리석은 인간들이라 여겼을 것이다!

(교황을 바라보며) 그대 늙은 교황이여, 나귀 한 마리를 이렇듯 신 모시듯 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찌 그대가 할 법한 일인가?

*교황: 오, 차라투스트라여, 용서하라. 하지만 신에 관해서라면 내가 그대보다 더 많이 안다. 나 이제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을 경배하기보다는 차라리 이처럼 형상이 있는 신을 경 배할 것이다.

‘신은 영(靈)이시다’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야말로 지금까지 이 지상에 서 불신앙을 향해 가장 큰 발걸음을 내딛고 가장 큰 도약을 한 자다. (환희에 차서) 이 지상에서 아직도 경배할 것이 있다는 사실에 나의 늙은 마음은 기뻐 날뛰고 있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늙고 경건한 이 교황의 심정을 용서하라!

*차라투스트라 : 그대, 그림자여! 그대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정신이라 칭하고 있고, 또 그 렇게 믿고 있지 않은가? 그런 그대가 이제 와서 우상을 숭배하고 성직을 떠 받들고 있는가? 그대, 고약한 신출내기 신자여, 진정 그대는 그대의 저 고 약한 갈색 소녀들 곁에서보다 더 고약한 짓을 예서 벌이고 있구나!

*나그네 그림자: 그대 말이 옳다. 허나 난들 어찌하랴! 차라투스트라 그대가 무슨 말을 하든 옛 신이 되살아 난 것을.

(가리키며) 더없이 추악한 저 자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그가 신을 다시 깨 웠으니... (어깨를 으쓱하며) 그리고 언젠가 그가 신을 죽였다고 했지만, 신들에게 있어 죽음이란 늘 그랬듯이 성급한 판단일 뿐.

*차라투스트라 : 너 고약한 늙은 마술사여,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그대가 저 같은 나귀를 신으로 모신다면 이 자유 천지에 그 누가 앞으로 그대를 믿겠는가? (달래듯이) 영리한 자여, 이런 어리석은 일을 저지르다니.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마술사 :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의 말이 옳다. 그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거리의 하나였다. (머리를 긁적이며) 사실 나도 그같은 짓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차라투스트라 : 그대,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여! 그대야말로 잘 생각해보라. 그리고 손가락 을 코에 얹어보라. 양심에 걸리는 것이 없는가? 그대의 정신은 여기 이 같 은 기도와 여기 믿음의 형제들이 발산하는 최면에 휩싸이기에는 너무나도 순수하지 않은가?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 (손가락을 코에 얹으며) 여기에는 무엇인가가 있지. 연극이지만, 거기에는 나의 양심을 즐겁게까지 해주는 어떤 것이 있단 말이다. 사실, 난 신을 믿을 수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신이 그 어떤 신보다도 믿을 만한 신으로 생각된다는 점이다.

신을 숭배하는 더 없이 경건한 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신은 영원하시다. (웃 으며) 그토록 많은 영원의 시간을 갖고 있는 자는 나귀처럼, 여유 있고 느긋 한 법이다. 가능한 한 아주 천천히 그리고 무심하게 해도, 그와 같은 존재라 면 아주 많은 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 똑똑한 이들은 오히려 우둔함과 우매함에 마음을 빼앗겼으면 하고 바란 다.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 자신을 생각해보라! 진정 그대 자신을 말이다! 그대 또한 차고 넘침 그리고 지혜로 말미암아 나귀가 될 수도 있으니. 완전한 현자라면 나귀처럼 말없이, 더없이 굽어 있는 길조차 기꺼이 가지 않는가? 그대의 겉모습이 말해주고 있 다, 차라투스트라여!

*차라투스트라 : (땅에 누워 나귀를 향해 손을 높이 들고 있는 더없이 추악한 자를 바라보 며) 그대, 더없이 추악한 자여,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자여, 여기서 무슨 짓을 벌이고 있었는가! 그대도 변하였구나. 그대의 눈은 불타고 있고, 고매함이라는 외투가 그대의 그 추악한 꼴을 덮어주고 있구나.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지?

그대가 신을 다시 깨워 일으켰다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왜 그랬지? 신은 그럴 만 한 이유가 있어 살해되고 배척되지 않았던가?

(찬찬히 추악한 자를 살피며) 깨어 일어난 자는 바로 그대 자신인 듯하구나. 무슨 일 을 저질렀지? 왜 그대는 생각을 바꾸고 말았는가? 왜 마음을 바꾸었지? 말하라!

*더없이 추악한 자: 오, 차라투스트라여, 그대는 무뢰한이다!

신이 아직 살아있는지, 되살아났는지, 아니면 완전히 죽어 없어졌는지를 우리 둘 중에 서 누가 더 잘 알고 있을까? 나 오히려 그대에게 묻는 바이다. 그러나 나 이 한 가지 는 확실히 알고 있다. 가장 철저하게 살해하는 자는 웃게 마련이라는 것을, 나 언젠가 그것을 그대에게서 배웠지, 차라투스트라여.

‘사람들은 노여움이 아니라 웃음으로써 살해를 한다.’ 언젠가 그대가 한 말이다. 오, 차 라투스트라여, 그대, 숨어있는 자, 분노의 감정 없이도 파괴하여 없애버리는 자, 그대 위험한 성자여, 그대가 진정 무뢰한이다!


2

이러한 무뢰한다운 대답에 놀란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동굴 입구까지 뛰어 물러나 모든 손님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차라투스트라: 오, 어릿광대들이여. 익살꾼들이여! 어찌하여 내 앞에서 그대들 자신을 위장 하고 감추고 있는 것이지!

결국 갓난애가 되고 말았구나! 그대들이 결국 또다시 어린애들처럼, 이를테면 유치하 게 기도하고, 손을 모으고, ‘사랑하는 하나님’ 하고 불러대니 말이다.

이제 어린애들처럼 모여 온갖 유치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나의 동굴을 떠나라. 밖으로 나와 그대들의 달아오른, 그리고 어린애다운 방자함과 마음의 소란을 가라앉히 도록 하라. (두 손으로 위쪽을 가리키고 비웃으며) 물론 갓난애처럼 되지 않는다면 저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겠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는 어린애와 달리, 성숙한 어른이 되었으니, 이제 지상의 나라를 원한다!


3

*차라투스트라: 오, 나의 새로운 벗, 별스러운 인간,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이여!

그대들이 다시 즐겁게 되니, 이제야 비로소 내 마음에 드는구나. 진정 그대들 모두 활 짝 꽃피었구나! 그대들과 같은 꽃을 위해서는 새로운 축제가, 어떤 깜찍하고 대담한 난센스, 어떤 예배와 나귀의 축제, 어떤 늙고 즐거운 차라투스트라-어릿광대, 그대들에 게 불어와 영혼을 맑게 해주는, 거칠게 휘몰아치는 그런 바람이 있어야겠다.

보다 지체가 높은 인간들이여, 이 밤과 이 나귀의 축제를 잊지 말라! 그것을 그대들은 내 곁에서 기운을 차려 생각해냈고, 나 그것을 좋은 징조로 받아들이겠다. 건강을 되 찾는 자만이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해낼 수 있으니 말이다.

나귀의 축제를 다시 한 번 벌일 생각이라면, 그대들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벌이도록 하라! 그리고 나에 대한 기억을 위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귀의 축제 - 발제


나귀의 축제- 세상사와 자신에 대해 경멸의 끝에 서있는 보다 지체 높은 인간들이 차라투스트라의 동굴에 모여, 최후의 만찬을 즐기다가 빠져든 새로운 축제?이다.


신이 죽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인간들의 발악. 신보다 먼저 생긴 것이 신앙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난센스.

인간은 진정, 누군가 믿고 의지할 초월적인 대상이 없이는 살 수 없단 말인가?


“정신의 양심을 지닌 자 : 연극이지만, 거기에는 나의 양심을 즐겁게까지 해주는 어떤 것이 있단 말이다. 아마도 난 신을 믿어선 안 되나 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신이 그 어떤 신보다도 믿을 만한 신으로 생각된다는 점이다.”


사실 신?의 실존에 대한 진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신앙으로 나의 양심을 즐겁게 하고 신앙의 사회적 규범의 틀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가며 관계 맺는 것이 더 중요할 뿐. 그 어떤 신보다 믿을 만한 신으로 선택하여.


그리고 신들의 주사위 놀이인지, 신앙의 힘으로 만든 판타지인지 알 수 없지만, 개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필연 같은 우연의 억울함과 경이로움 들이 어쩔 수 없이 신앙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내 모는지도. 의도야 어찌됐건 절망의 끝자락에 서있을 때 잡아주는 종교인들의 손길은 신과 신앙에 대한 사유 바깥에 있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단 하나의 빛으로 다가와 뿌리내리고, 세상에 서있을 작은 발판을 만들어 주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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