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187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7]

좌우를 막론한 우생학에 대한 지지




우생학의 창시자 골턴은 1907년에 열렬한 사회적 다윈주의자였던 수학자 칼 피어슨(Karl Pearson)과 함께 런던대학교(University of London)에 골턴국가우생학연구소(Galton Laboratory for National Eugenics)를 설립하여 우생학의 연구와 전파에 매진하였습니다. 이 연구소는 영국 우생학 운동의 지적 산실 역할을 하였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개인 기부금으로 운영되었으나 종전 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는 연구소로 발전하였지요. 인간의 유전을 통계학적 방법에 근거해 연구하는 생물통계학(biostatistics)을 발전시켰던 골턴과 피어슨은 현대 통계학의 기본 도구가 되는 상관계수(correlation coefficient)와 정규분포를 나타내는 그 유명한 종형 곡선(bell curve)을 개발한 장본인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우생학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지지자들을 이끌어 냈으며, 특히 당시에는 신생 분야였던 유전학 자체가 우생학과의 뒤얽힘 속에서 발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유전학(genetics)이라는 용어는 1905년이 되어서야 윌리엄 베이트슨(William Bateson)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는데, 다수의 유전학자들이 우생학적 관심에 의해 동기부여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유전학의 핵심적인 이론 및 기술 중 몇몇은 직접적으로 우생학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요.


의사들도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데 있어 실패를 거듭하자 이를 설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유전주의적인 우생학 이론을 받아들였으며, 저명한 의학 전문 저널인 『랜싯(The Lancet)』과 왕립내외과의사협회(Royal College of Surgeons and Physicians)는 우생학적 단종수술을 지지하는 성명을 채택하기도 하였습니다.


1907년에는 골턴국가우생학연구소와 더불어 최초의 우생학 운동 단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우생학교육협회(British Eugenics Education Society) 또한 창립되었고(1926년에 영국우생학회(British Eugenics Society)로 개칭됨), 이듬해 골턴이 명예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이 협회의 회원은 그 수가 가장 많았을 때에도 700명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회원들과 지지자들 중에는 당대의 저명한 의사, 과학자, 사상가들을 비롯한 사회적 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은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생학의 발상지이자 종주국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페이비언 사회주의의의 지도자였던 웨브 부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등 당대의 저명인사들 다수가 좌우를 막론하고 이러한 우생학 사상을 수용하였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윈스턴 처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조지 버나드 쇼, 웨브 부부)

▲영국은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생학의 발상지이자 종주국이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페이비언 사회주의의의 지도자였던 웨브 부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등 당대의 저명인사들 다수가 좌우를 막론하고 이러한 우생학 사상을 수용하였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윈스턴 처칠,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조지 버나드 쇼, 웨브 부부)




아서 밸푸어(Arthur James Balfour)와 아서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 같은 보수당의 정치가들도 이 협회의 회원이었는데, 그들은 둘 다 영국의 총리를 역임한 인물들이지요. 그리고 1912년 런던에서 열린 제1회 국제우생학회의(International Eugenic Congress)의 부의장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 중에는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과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도 있었습니다. 벨은 전화기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하고 농인의 교육을 위해 힘썼다고 알려져 있지만, 농인이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농인들 간의 결혼이 금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우생학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우생학의 지지자들이 우파 성향의 인물들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소설가 겸 문명비평가로 레닌 및 트로츠키와도 교류했던 열렬한 사회주의자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지도자인 시드니 웨브(Sidney Webb)와 비어트리스 웨브(Beatrice Potter Webb) 부부,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저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이며 페이비언협회의 리더 중 한 명이었던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산아제한운동의 선구자인 마리 스톱스(Marie Stopes)와 같은 여성 또한 우생학의 지지자였으며, 실제로 우생학은 맑스주의자, 페이비언주의자,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폭넓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시드니 웨브는 “일관성 있는 어떠한 우생학자도 ‘자유방임주의’적인 개인주의자일 수는 없다. 그가 절망하여 게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즉 그는 개입하고, 개입하고, 또 개입해야만 한다!”고 말하기도 했지요.1) 이처럼 우생학 자체는 당시 영국 사회에서 하나의 과학으로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보어전쟁이 끝나고 난 후인 1903년에 영국에서는 체위저하에관한부처합동위원회(Interdepartmental Committee on Physical Deterioration)가 구성되었고, 도시 빈민들과 학교의 아동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실태조사가 진행됩니다. 이를 바탕으로 1908년에는 왕립정신박약자돌봄및통제위원회(Royal Commission on the Care and Control of the Feebleminded)의 보고서가 출간되었고, 이 보고서의 내용은 다시 1913년 「정신적결함법(Mental Deficiency Act)」의 제정으로 이어졌지요.


「정신적결함법」의 제정에는 인간 지능의 유전에 대한 골턴의 연구, 당시 막 도입되기 시작한 IQ 검사, 영국우생학교육협회의 캠페인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는데, 이 법의 주요 내용은 일반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능력이 없고 다른 아동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정신적 장애아동들을 정신적결함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격리기숙학교로 보내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1929년에 전국교사노조 집행부가 “지금이야말로 정신적 결함자들 사이에서의 재생산이라는 총체적 문제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라는 진술을 담은 결의안을 승인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2) 이러한 조치는 별다른 반대 없이 실행되었고 영국에서 장애인들의 시설 수용을 크게 촉진시켰습니다.


한편 영국에서는 1920년대 말부터 자발적 단종 수술의 합법화를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으며, 1934년에 정부가 내놓은 「단종수술에 대한 담당부처 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Departmental Committee on Sterilization)」(일명 브록 보고서(Brock Report))의 내용에 따라 1937에 「자발적 단종법안(Voluntary Sterilization Bill)」이 의회에 제출됩니다. 이러한 단종수술의 합법화에 대해서는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동의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모닝 포스트(Morning Post)』가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78.7%가 단종수술에 찬성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나 당시 영국에서는 단종수술의 합법화가 오히려 중산계급의 출산율을 더 감소시키고, 임신에 대한 걱정 없이 이루어지는 무분별한 성행위로 인해 성병의 확산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노동당, 노동조합, 가톨릭 교회 등은 우생학적 단종수술에 반대를 했습니다. 이러한 논쟁적 분위기로 인해 의회의 최종 표결에서 「자발적 단종법안」은 부결되었고 결국 법제화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지요.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영국은 자본주의의 종주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우생학의 발상지이자 종주국이기도 했으며, 이러한 우생학 사상은 당시의 중산계급과 사회지도층 전반에 좌우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습니다. 비록 단종법이 제정되지 않았고 네거티브 우생학의 실천은 상대적으로 미약했지만, 의사․생물학자․유전학자․심리학자 등의 참여 아래 영국에서 하나의 과학으로 정립된 우생학은 이후 미국에서 강력한 하나의 대중운동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점차 전 세계로 확산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각주 1)  Diane B. Paul, The Politics of Heredity: Essays on eugenics, biomedicine and the nature-nurture debate, New York: SUNY, 1998, p. 14.

 

각주 2)  Roy A. Lowe, “Eugenicists, doctors, and the quest for national efficiency: an educational crusade, 1900~1939”, History of Education 8(4), 1979, p. 304. 





?

  1. No Image

    집중세미나 요약문 및 발제문 올립니다

    2009.03.17 21:58:16 맹희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37 안뇽하세요~~~!!ㅋㅋ 요약문및 발제문입니다. 키키키이 게시물을 첨부 (1)역사 유물론과 근대철학.hwp [File Size:17.5KB/Download:72] 엮인글 : http...
    Date2015.07.10 By손오공 Reply2 Views475
    Read More
  2. No Image

    탈시설운동]자료에요(쫌많아요^^;)

    2009.03.16 20:04:49 탈시설운동]자료에요(쫌많아요^^;) 조회 수 3067 추천 수 0 2009.03.16 20:04:49 민구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23 수유너머와 함께 탈시설워크샵(?)을 진행하기로 했는데요, 탈시설 관련해서 ...
    Date2015.07.10 By손오공 Reply0 Views546
    Read More
  3. No Image

    [발제문]포이어바흐 테제 관련 글을 읽고.

    2009.03.16 02:40:48 어깨꿈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21 내컴이 이상해서 hwp파일로 올리려다 여러번 실패를 하였슴다. 다음에 꼭 성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컴 공부를(열공)해야겠슴다. 발제와 발췌를 잘 몰라 해메...
    Date2015.07.10 By손오공 Reply0 Views629
    Read More
  4. No Image

    집중세미나 요약문 및 발제문 올립니다

    2009.03.11 22:58:39 정민구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15 수유너머 홈페이지에 처음 글남기는것 같네요 ^^;; 제가 천성이 게을러서 자주 와야지 하면서도 마음만 있었네요 잎으로 종종 들어 올께욤 쿄쿄 집중세미나 ...
    Date2015.07.10 By손오공 Reply0 Views477
    Read More
  5. No Image

    <노들 월례-인문학> 두 번째 강의 '수행이란 무엇인가'

    2009.03.11 16:09:19 김디온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13 4월 3일 목요일 저녁 8시 반 / 노들야학 (시간과 장소는 변경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 '자기 배려와 꼬뮨' 강의에서 이수영 선생님은 근대인들...
    Date2015.07.10 By손오공 Reply0 Views722
    Read More
  6. No Image

    노들과 수유+너머가 함께하는 집중세미나 일정

    2009.03.05 18:43:54 구우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11 모두가 조금씩 걱정하면서도 굳은 각오로 시작하는 공부입니다. 노들과 함께 맑스를 읽을 때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촉발할지 정말 궁금해집니다. 좋은 공부...
    Date2015.07.10 By손오공 Reply0 Views600
    Read More
  7. No Image

    현장 인문학 게시판입니다.

    수유+너머 http://commune-r.net/xe/index.php?document_srl=509 좋은 프로그램 꾸려 가세요. (^_^ )/ 2009.03.04 15:29:22 구우 2009.03.05 18:41:24 이쁜 게시판 감사합니다 ^^
    Date2015.07.10 By손오공 Reply0 Views648
    Read More
  8. 우생학의 대중화: 미국②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9] 단종법의 시행 자본가들의 지원 속에 우생학기록보관소와 미국우생학회의 활동이 광범위한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하면서 미국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형태의 우생학 법률이 시행되었습니다. 이러한 법률들로는 우선 우생학적...
    Date2015.06.17 ByYeon Reply0 Views1509 file
    Read More
  9. 우생학의 대중화: 미국 ①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8] 거대 자본과 결합한 우생학 연구 미국은 우생학이 대중적인 차원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사회적 다윈주의가 확산되고 우생학이 발전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골턴과 피어슨이었다...
    Date2015.06.10 ByYeon Reply0 Views1534 file
    Read More
  10. 우생학의 등장 : 영국 ②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7] 좌우를 막론한 우생학에 대한 지지 우생학의 창시자 골턴은 1907년에 열렬한 사회적 다윈주의자였던 수학자 칼 피어슨(Karl Pearson)과 함께 런던대학교(University of London)에 골턴국가우생학연구소(Galton Laboratory for Nati...
    Date2015.06.02 ByYeon Reply0 Views1875 file
    Read More
  11. 우생학의 등장 : 영국 ①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6] 19세기 말 영국 시대정신 ‘다윈주의’ 19세기 말과 20세기로의 전환기는 자본주의의 종주국인 영국에게 있어 상당한 혼란과 위기의 시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경제에서 영국이 자치했던 독점적인 지위는 1870년대부터 독일 ...
    Date2015.05.23 ByYeon Reply0 Views1345 file
    Read More
  12. 우생주의의 역사와 생명권력 시대의 장애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5] 새로운 주제에 대한 소개 끝없이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의 행렬… 이들 가운데 일부는 노동 가능자로, 나머지는(!?) 노약자로 분류될 것이다. 노동 가능자는 머리가 깎이고 팔에 등록 번호가 새겨진 뒤 강제 노역에 동원될 운명이며,...
    Date2015.05.23 ByYeon Reply0 Views1240 file
    Read More
  13. 장애학, Why & What? ④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4] 실천지향적 해방적 학문으로서의 장애학 키워드 3 : 실천지향적 장애학이 실천지향적 성격을 지닌다는 것은 사실 크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장애학과 장애인운동의 관계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될 수 있을 것...
    Date2015.05.05 ByADMIN Reply0 Views1146 file
    Read More
  14. 장애학, Why & What? ③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3] 장애학이란 어떤 학문인가 다들 아시다시피 장애학에 대한 영어 표기는 ‘Disability Studies’입니다. 우리말로 직역을 하자면 ‘장애 연구’로도 옮길 수 있겠지요. ‘Culture Studies’가 ‘문화 연구’로 옮겨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Date2015.04.26 ByADMIN Reply0 Views1096 file
    Read More
  15. 장애학, Why & What? ②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2] ‘장애학 함께 하기’를 위하여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듯이 기존의 장애 관련 학문에서는 장애인의 삶이 배제되거나 왜곡되어 왔으며, 주류 공론장 및 담론에서도 장애인의 목소리가 철저히 배제가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의...
    Date2015.04.19 ByADMIN Reply0 Views654 file
    Read More
  16. 장애학, Why & What? ①

    [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 장애학은 왜 필요한가 기존의 장애 관련 학문에는 장애인의 삶이 담겨 있는가 이번 글에서는 우선 제가 어떤 계기를 통해 장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왜 장애학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는지를 개인적인 경험 두 가지를 통해 ...
    Date2015.04.19 ByADMIN Reply0 Views852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 6 7 8 9 10 11 12 13 14 15 Next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