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풍파,고향) 후기

by 손오공 posted Jul 2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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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6 09:47:07


박카스

 

 

* 루쉰의 소설에는 하나의 중심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원점만이 보인다.

-다케우치 요시미

 

 해피쌤의 발제에서 인상깊었던 점은 루쉰 소설에 초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의 점이 아닌 타원형 안의 대칭점을 이루고 있다고 발표하셨죠. 저 역시 궁금했어요.

루쉰은 왜 난국을 타결시키는 초인 대신 일그러지는 자와 그 일그러지는 자의 주변관계만을 그려넣으려고 했을까.

이러한 점은 카프카가 그의 소설에서 사라지는 자를 등장시키고 그의 주변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점과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현실을 극복한 자를 작품 속에 투영함으로써 어떤 작가는 그러한 초인을 그리고 있는 자신에게 만족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작가는 이러한 초인을 그려넣음으로써 그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전달하는 것에 만족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편 어떤 작가는 허구로의 현실을 작품에 그려넣습니다. 이 작가는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인물과 주변을 그려넣음으로써 스스로의 비루함과 마주합니다. 그 비루함을 작품에 올려놓음과 동시에 작가는 그러한 비루함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통해 작품을 써나갑니다. 여기에 작가는 스스로의 해방감을 느낄 수 있을 것 입니다. 이 작가는 위 작가처럼 감동을 전달하는 것 보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에 더 큰 기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은 몰라도 루쉰은 아마 후자의 이유로 글을 쓰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 절망의 허무함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희망 역시 내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어낸 우상이 아닌가? 단지 그의 소망이 현실에 아주 가까운 것이라면, 나의 소망은 막연하고 아득하다는 것뿐이다. 몽롱한 나의 눈앞에 바닷가의 파아란 모래 사장이 떠올라왔다. 위로는 짙은 쪽빛 하늘에 황금빛 보름달이 걸려있다. 나는 생각했다. 희망이란 것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사실 땅 위에는 본래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곧 길이 된 것이다.”

 

공부시간 가운데 들은 유미쌤의 사춘기시절 이야기는 상당히 복잡했던 시간이었지만, 내공이 튼실히 쌓여갔던 시간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삶이라면 지금 죽는 거나, 10년 뒤, 20년 뒤에 죽는 것과 다른 게 뭐가 있는 걸까? 죽지도 않으면서 자조할 시간을 ’폴짝‘ 넘어서고 싶었어요.'

 

 저는 이 말이 루쉰의

‘절망 역시 허무하다. 희망이 그러하듯이.’

와 오버랩되더군요.

 

 루쉰 역시 그러한 의미로 절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지 않았을까요?

세상이 요구하는 강박으로 인한 긍정이 아닌, 절망함 역시 아무것도 되지 않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때 솟아오르는 긍정. 절망적 상황에서 던지는 삶에 대한 긍정을 루쉰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더불어 루쉰의 말 가운데 꽂혔던 말은 "소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소망이 길이 되게 하는 것은 함께 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가능하다."였어요. 좌절에 돌을 던지기 시작할 때, 그 돌을 던지는 것이 일상이 되고 그 돌을 던지는 행위들이 신뢰로 구축될 때, 또 다른 친구가 생겨나고 소망의 길은 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요.

 

 

* 루쉰의 글에서 인물들은 빗겨나간다?

 

 

 루쉰은 전형적 인물을 그리지않지요. 진짜 착한, 진짜 악한 뭐 이런 사람이 없어요.

전형성에 대한 배반, 이것이 또한 루쉰이 그의 글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물은 물론 사건도 마찬가지로요.

이야기의 전개가 거시적인 이야기보다는 인물과 주변상황의 배열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요, 주변성을 읽어내는 것이 루쉰에게는 현실인식의 원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관계가 그 '사건', 그 '인물'을 설명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글 안에서 이념의 문제를 드러내는 것 역시 철저히 생존의 문제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거 같애.' 라고 말한 덤쌤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루쉰은 전형을 배반한 주변, 표상되는 것이 아닌 그 내부 관계를 드러냄으로써 이념과 사상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만 그런가요?^^ 점점 재미있어지는 루쉰, 루쉰의 글~

 또 한번 첨벙! 빠져보아요~

 

2011.01.06 10:13:15

루신의 '민족혼', 아니 '글쓰기혼'이 규호에게 감염되었나? 탱탱하게 긴장되면서도 매끄러운 규호의 글솜씨에 놀랐다. 루쉰효과?


저는 어제 세미나에 한 이야기 중 두 개의 중심과 타원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루쉰은 항상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이념과 생존, 지식인과 민중, 성안과 노진 등 대립되는 중심을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중심에서 단일한 원(세계)이 형성될 즈음에 다른 중심을 근접시켜 그 원을 일그러뜨리고, 또 새로운 중심이 단일한 원을 형성할 즈음에 다시 처음의 원을 근접시켜, 어떤 중심도 총체적인 원을 형성하지 못하게 하는 한에서만 중심들을 사유하고 근접시키고 대립시킨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타원형이라는 어떤 세계의 도형이 완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차라리 엄청난 에너지의 와류만이 형성되는 형국입니다. 암튼, 루신과 노들이 근접해서 일으키는 와류가 즐겁습니다. 다음주엔 노들 신년 엘티로 건너 뛰고, 그 다음 주엔 '아큐정전' 합니다. 수유너머 '아큐정전 연극팀'의 연극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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