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현장인문학 후기

by 손오공 posted Jul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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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6:03:08


규호

 

 

안티고네의 '안티고네의 주장' 강의를 듣고와서.  


섹스와 젠더를 넘어 친족을 넘어서, 경계를 넘어서고자 목숨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안티고네는 어떤 방식으로 그녀의 주장을 이어갔을 까?  또 다른 '안티고네'가 '버틀러'를 통해 들려주는 안티고네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강의자가 가장 힘주어 말한 '수행성'

버틀러는 '행위 뒤에 행위자는 없다.' 는 니체의 말을 인용한다. 여성으로 태어나서 여성처럼 행동하는 게 아니라, 여성처럼 행동하는 그 사람이 바로 여성이다. 즉, 여성은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어떠한 이미지를 '인용' 함으로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에 번뜩 하면서 그간의 나의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사람' 인가 생각해보면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고지식한, 착한(?), 과격한(?) 등등. 안티고네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결코 내 행위가 있기 전에 수식될 수 있는 말들이 아니다. 다르게 행동하면 다른 수식어가 붙을 수 있는 거다.

오호라~ '행위 뒤에 행위자는 없다.' 이야기 속 안티고네가 그랬듯 나에게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나의 행위일 뿐이다. 심지어 장남이라는 친족관계에서도, 남자라는 성도 마찬가지.

뭔가 힘이 솟는 기분. 자, 이제 나는 어떤 행동을 통해 새로운 나를 구성해볼까? 어떤 수식어를 붙여서 좀 더 잘 살아볼까나?


두 번째로 흥미로웠던 부분. '복종함으로써 저항한다.' 였다.

폴리네이케스(오빠이자 조카)의 행실을 구분하지도 않은 채, 그를 묻어주었다는 것. '너는 죽은 사람만을 사랑하리라.' 이 말이 어떻게 문란하게 복종하는 것일까? 

'문란하게 복종한다.'

 이 말은 마치 평강공주가 어렸을 적 자신의 아버지가 딸아이의 울음을 그치게끔 하기 위해 더 울면 바보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했다가 평강이 진짜 온달에게 시집가버리는 이런 어이없는 상황과 흡사해보인다. 왕의 말을 빌어 왕의 뜻에 어긋나기. 이것은 권위자의 의지에 대한 저항의 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즉 권위자의 말 속의 의도를 벗어나기 위해 그 말 자체에 복종 함으로써 그 의지에는 강하게 저항하는 모습. 오이디푸스가 설마 안티고네가 자신 말고 다른 죽은 사람과 사랑을 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자, 권위있는 체 하는 것들의 말을 메모해놓자.

 

 그리고 마지막 인상 깊었던 대목!

안티고네가 폴리네이케스를 묻어준 사건을 가지고 이리가레의 주장과 같이 국가법을 넘어선 친족법의 승리로 볼 수 있는가. 버틀러의 말마따라 '법을 부끄럽게 만드는 법'으로 친족을 넘어선 '단 한 번의 법'으로의 선택 이었다고만 볼 수 있는가.

 '안티고네는 과연 어떤 의도로 폴리네이케스를 묻었을까?'

 

 정말 친족법을 위한 행위였다면, 그녀는 과연 동굴에서 하이몬과의 친족을 위한 결합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을까?

 

내가 보기에 아마도 안티고네는 친족이 되기 위한 선택 보다는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한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럼, 그토록 그녀가 하나의 경계 안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경계없음' 그 자체가 곧 그녀 존재 자체 였기 때문은 아니었을 지.

 

'남성성! 여성성!'

'이제는 이런 말들도 지겹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박현진기자님은 호소했다. 버틀러는 안티고네의 주장에서 안티고네가 자기 안의 남성성을 보여주며 '본질적인 여성이란 존재하는가' 라는 말을 남겼다고 했는데요, 저에게는 아직까지 '적극적인' 의미의 언어로서의 '남성성', 수동적인 것을 상징하는 '여성성' 이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 자체가 불편합니다.

 

'맞다, 이젠 이런 '남성성이나 여성성' 이라는 언어 자체가 사라질 때는 아닐지.'

강의가 끝나고, 안티고네의 집안 처럼 내 안의 머릿 속도, 언어들도 콩가루가 된 것 같다.

한결 말랑말랑 부드러워 졌다.

 '안티고네 이야기' 자체 만이 아니라 안티고네 이야기를 토해내는 안티고네(강의자)의 강의 역시 인상 깊었다. 안티고네 이야기 속 인물들이 되어 안티고네를 강의 하고 있는 듯한 강의자를 보며 여러 인물이 되어 연기하는 연극 배우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안티고네(강의자)의 여러 화자가 되어 대화를 하는 평소 대화 습관을 떠올리며 이렇게 강의 때 평소 화법이 여력을 발휘하는 구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소 난해하고 문란한 가계도를 이해하느라 머리는 아팠지만, 

궁금했던 안티고네 이야기와 버틀러에 대한 강의자의 애정 어린 강의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콩가루의 구수하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나를 건강하게 해주는 강의였다.


댓글 '2'

죠스

2009.12.14 18:30:48

오호라,, 평강공주의 복종도 문란한 복종같네 ㅋ 신기하다.. 요점 정리 후기 잘 읽었어요~


박현진

2009.12.17 23:40:47

오 후기 이제서야 읽었어요 저도 공감했던 부분을 잘 정리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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