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희 교사, 한겨레 토요판에 나왔네요^^ <재주 부려놓고 쫓겨난 곰들이 뭉쳤다>

by 조스타 posted Aug 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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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 부려놓고 쫓겨난 곰들이 뭉쳤다

등록 :2015-07-31 18:47수정 :2015-07-31 20:46

7월23일 서울 종로 청진동의 꼬치집 ‘만복’에서 만난 임영희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의 사무국장. 그는 자신이 가게를 얻어준 친구가 새 건물주에 의해 쫓겨난 것을 계기로 맘상모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상권 형성으로 만들어진 권리금은 임차상인의 영업으로 만든 가치인데도 프랜차이즈 대기업이나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빼앗아 간다”고 했다. 그의 티셔츠에 ‘재주는 곰이 부린다’라고 쓰여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7월23일 서울 종로 청진동의 꼬치집 ‘만복’에서 만난 임영희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의 사무국장. 그는 자신이 가게를 얻어준 친구가 새 건물주에 의해 쫓겨난 것을 계기로 맘상모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상권 형성으로 만들어진 권리금은 임차상인의 영업으로 만든 가치인데도 프랜차이즈 대기업이나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빼앗아 간다”고 했다. 그의 티셔츠에 ‘재주는 곰이 부린다’라고 쓰여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
비 오는 서울 종로 청진동 골목은 한산했다. 해장국집과 빈대떡집을 밀어내고 24층짜리 번듯한 고층건물이 들어선 피맛골의 뒷골목, 족발, 순대국집과 노래방, 결혼상담소 간판이 다닥다닥 늘어선 길목 끝자락에 ‘만복: 정종대포, 꼬치구이’라고 쓰인 허름한 술집이 있었다. 아직 술손님이 올 시간도 아닌데 열평 남짓한 가게 안에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여기서 임영희 국장을 만나기로 했는데요.”

“잠깐 식사하러 가셨어요. 불러드릴게요.”

누가 객이고 주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어떤 이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어떤 이는 주섬주섬 짐들을 펼쳐놓았다. ‘법보다 양심이 우선입니다’, ‘강제집행, 해볼 테면 해봐라’ 같은 문구들이 적힌 분홍색 손팻말 뭉치였다. 잠시 뒤, 더벅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젊은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맘상모) 임영희(38) 사무국장이었다.

“사실 저보다 이분들을 인터뷰하셔야 되는데요. 이분은 여기 ‘만복’의 김선희 사장님이시고요….”

그는 가게에 모여 있던 이들을 차례차례 소개했다. 홍대 통닭집, 신촌 곱창집, 가로수길 이자카야, 수원 만두집, 상도동 감자탕집, 구로공단 숯불바비큐집, 종각역의 삼겹살집 사장님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장사를 하는 이들이 저마다 절실한 사연을 담고 모여 있었다. 모두 맘상모 회원들이었다.

무조건 나가라? 왜?

-원래 맘상모 사무실은 신촌에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오늘 여기서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오늘 열두시에 여기서 집회가 있었어요. 여기가 지금 ‘강제집행’이 들어올 수 있는 위기에 처해 있어서 저희가 돌아가면서 이렇게 오는데. 오늘은 제가 여기 있기로 한 날이어서요.”

-‘강제집행’이라고 하면, 세입자에 대한 퇴거조치를 말씀하시나요?

“네. 명도소송(부동산 소유자가 점유자를 몰아내기 위한 소송)이 끝나고 3월15일자로 강제퇴거 명령이 떨어진 상태예요.”

-건물주하고 갈등이 생기게 된 이유가 뭐죠?

“법적으로 5년이 지나면 더 이상 계약 갱신을 요구할 수가 없고 나가라면 나가야 되는 상황인 거예요. 만복은 여기 9년 전에 청진동 재개발한다고 먼지 풀풀 날릴 때 들어와서 힘들게 영업을 하셨어요. 월세 꼬박꼬박 내면서 착실히 가게를 키우셨는데 재작년에 위 가게에서 불이 났어요. 만복은 화재에 아무 책임이 없는데, 임대인(건물주인)이 나가라고 한 거죠.”

-만복 사장님이 입점할 때 권리금 같은 걸 내고 오셨나요?

“그럼요. 보증금, 월세 외에 권리금 2억원을 주고 들어오셨죠.”

-그 권리금을 다 날리게 된 거군요. 지난 5월에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는데.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가게 권리금을 다음 임차인한테서 회수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만복은 법률 개정 전에 벌어진 사태라 해당이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일이 자주 있나 봐요.

“(옆 테이블 가리키며) 여기 계신 분은 상도동에서 감자탕집을 하시는데 거기 스타벅스 들어올 거니까 무조건 나가라고 한대요. 지금 건물 월세가 1·2·3층 다 합쳐서 700만원쯤 하는데, 스타벅스가 들어오면 통째로 월세 1300만원씩 낸다고 했다고 싹 비우라는 거죠.”

-스타벅스는 왜 그렇게 월세를 높여서 내겠대요?

“그 건물에 가게가 세 개 있는데 그 가게 권리금을 다 합치면 한 3억원 되거든요. 그 권리금을 스타벅스는 안 내고 들어오는 거죠. 권리금 안 내는 대신에 ‘내가 매달 1300만원 낼게’ 그러는 거예요. 그럼 임대인 입장에서는 완전 생큐죠. ‘그래도 될까? 가게 하던 사람들한테 좀 미안하지 않나?’ 하다가도 ‘기획 부동산’ 같은 데가 껴 가지곤 ‘이만큼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예요. 5년 넘어 법적으로 문제될 것 없으니 싹 내보내시고 안 된다면 소송 걸면 됩니다’ 하고 부추기는 거죠.”

-스타벅스는 권리금을 안 준대요?

“일요신문에서 스타벅스 입장을 물었나 봐요. 근데 자기네는 한국에 700개 점포가 있는데 한번도 권리금을 준 적이 없다고 했대요.”

-허, 참!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올 때 늘 이런 문제가 생겨요. ‘월세 더 줄게 내보내!’ 하고. 가로수길 초창기의 개성 있는 가게들이 지금 하나도 없잖아요. 아무것도 없던 거리에 상권이 형성되고 사람들의 유입이 늘면서 권리금이 막 발생하는데, 그게 다 임차상인들이 영업해서 만든 재산가치인데 대기업이 싹 밀고 들어와서 빼앗는 거죠. 임대인은 지가 엄청 뛰고 임대료 올려 받으니 좋고. 연남동 같은 데는 최근 2~3년 전에 비해 지가가 4배 가까이 뛰었고요, 홍대앞·삼청동 다 그렇게 됐어요.”

임영희는 목이 타는지 맥주잔 가득히 담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가 입은 맘상모 티셔츠에는 ‘재주는 곰이 부린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열심히 장사하다가 쫓겨날 때의
비참함, 그 공감대가 정말 진하죠
친자매·친구 이상으로 의지해요
어디서 집회 시위 한다고 하면
가게 문 닫고 달려오시곤 합니다”

알바로 구한 노들야학 운전기사
장애인 방 구하기 어려움 안 뒤
부동산 일 시작했는데 친구한테
얻어준 곱창가게가 쫓겨날 위기
팔 걷어붙인 게 맘상모의 시작

‘영희네 부동산’ 임 사장의 파란만장 인생사

-임영희씨도 자영업자였나요? 어떻게 맘상모 창립 멤버가 되었죠?

“아니, 전 부동산중개업자였는데 어떤 분 가게를 얻어드렸다가….”

-아, 부동산 일을 하셨다고요? 얼마나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둔 게 있어서 2007년 말부터 시작을 했고, 본격적으로 삼성동에 사무실 얻어서 한 거는 2009년부턴데 2년 있다가 폐업을 하고….”

-잠깐만요, 부동산 사장 시절 얘기부터 해주세요. 부동산 하면 임차인(상가세입자)보다 임대인(건물주)하고 가깝게 지내야 하는 거 아녜요?

“임대인이랑 되게 친했어요. 상가나 사무실 소개해드리고 나면, 건물주들이 ‘임 사장! 밥 한번 먹어요’ 그래서 한 끼에 20만원짜리 밥도 사 주시고….”

-돈도 많이 벌었나요?

“부동산 일은 다 했죠. 아파트도 하고 사무실도 하고, 고급빌라랑 연예인 집 거래도 좀 해보려 하고. 중간에 잘 번 적도 있는데 고민이 많았어요.”

-무슨 고민이요?

“부동산을 시작한 계기가… ‘집은 인권입니다’ 이런 모토로 시작한 건데. 그걸 적어서 사무실에 딱 걸어놓고 명함에도 새겨 넣었는데.”

-‘집이 인권이다’라고 주장하는 부동산 사무실은 첨 들어요.

“원래 부동산 일을 시작한 게 장애인단체 일 때문이었거든요. 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관인 ‘노들야학’에서 운전기사로 일을 하다가 교사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 살아야 한다고 ‘탈시설 주거지원 네트워크’가 꾸려졌었어요. 그런데 장애인들 방을 구하려면 되게 어려워요. 휠체어로 접근이 가능해야 하고 값이 싸야 하고 주인이 받아줘야 하고… 그런 방을 구해주려고 부동산 사무실을 낸 거였죠.”

-그러니까 맘상모 일을 하기 전에는 부동산중개사였고, 부동산중개사가 된 건 장애인단체 일을 하기 위한 거였다고요. 노들야학 운전기사는 어떻게 하시게 되었어요?

“‘알바몬’(알바 구인구직사이트)에서 보고요. ‘노들야학 운전기사를 모집합니다’ 광고.”

-하하하… 정말 예측불허! 원래부터 장애인운동에 관심 있었던 건 아니고요?

“전혀요. 대학 졸업하고 뭘 좀 해보려 하다가 잠시 쉴 때였어요. 알바를 해야겠다 하다가 광고를 봤어요. 그땐 노들장애인야학이 뭐 하는 덴지도 몰랐어요.”

-대학에서도 사회복지나 장애인 쪽 활동을 한 적 없나요? 전공이 뭐예요?

“러시아문학이요.”

-정말 반전의 연속이군요!(웃음)

임영희는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드럼주자로 밴드활동을 했다. 장애인운동에 대해선 아는 게 전무했는데 노들야학에서 공부하고 싸우고 끈끈하게 얽혀 지내는 장애인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후 올봄까지 그는, 부동산중개업을 하기도 하고 맘상모 일을 하기도 했지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로서 일하는 걸 본업으로 삼아왔다. 2011년 부동산 일을 접고 1년반가량 중남미 여행을 다녀와서도 맘상모 상근활동가가 될 계획은 없었다.

-2012년 말에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뭘 할 생각이었어요?

“그해 선거에서 박근혜님이 대통령이 되셨잖아요. 그게 좀… 궁금했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뭐가요?

“왜… 됐지?”

-하하하.

“궁금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예전부터 되게 하고 싶었던 일이 하나 있었거든요. 그걸 하기로 했죠.”

-무슨 일인데요?

“택시 운전이요. 택시를 하면서 사람들도 만나고 왔다 갔다 하고… 그 일이 너무 하고 싶었어요. 2013년 1월에 시작했죠.”

택시 운전은 길게 하지 못했다. 장사가 진짜 잘되던, 어느 ‘운수 좋은 날’에 졸음운전으로 큰 사고를 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새 차를 박살내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그만둬야 했다. 다시 전장연으로 복귀했다가, 맘상모 일이 많아지면서 올 3월부터 상근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변화무쌍한 인생이네요. 인생이 꼭 자기 맘먹은 대로 가는 건 아니지만, 우연치 않게 모르는 길로 들어서고, 또 우연찮게 다른 길로 들어서고…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기도 흔치 않잖아요?

“근데 전, 제가 해온 일들이 별로 이질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온 것 같아요. 노들야학도 그렇고, 부동산도 그렇고, 전장연 활동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다 너무 좋았어요. 재미있어요.”

-임영희씨가 생각하는 재미는 뭐예요? 어떨 때가 재밌어요?

“사람들이랑 같이 신나서 일도 하고… 그럼 재밌죠. 잘 모르겠다. 진짜 재밌었는데.(웃음)”

뭘 더 가지려고, 더 높은 데를 향해 기어오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겐 세상에 신기한 것, 재미있는 것이 더 많이 보이는 모양이다. 인터뷰하는 동안, 가게에 들어오고 나가는 맘상모 회원들에게 연신 인사를 건네면서 그는 내내 싱글거렸다.

두번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은
상인들의 피끓는 싸움 성과물
“주인 바뀌어도 5년 계약갱신,
권리금도 재산으로 인정받고
이젠 함부로 빼앗지 못해요”

“모든 을들의 종착지가 치킨집?
거기 추가돼야 할 게 있어요
치킨집에서 화살표 긋고
(1)장사가 안된다→폐업
(2)장사가 잘된다→나가라”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이 꼬치집 ‘만복’의 사장 김선희(58·오른쪽)씨와 함께 집회 때 썼던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맘상모는 지난 5월 권리금을 임차상인의 재산으로 인정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주된 구실을 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임영희 맘상모 사무국장이 꼬치집 ‘만복’의 사장 김선희(58·오른쪽)씨와 함께 집회 때 썼던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맘상모는 지난 5월 권리금을 임차상인의 재산으로 인정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주된 구실을 했다. 탁기형 선임기자

장사 안되면 문 닫고, 잘되면 쫓겨난다

-자, 이제 다시 맘상모 얘기로 돌아가요. 부동산중개사를 하다가 맘상모 창립하게 된 사연!

“2010년 11월쯤에, 신사동에 곱창가게를 하겠다는 친구가 있어서 가게를 얻어줬어요. 그러곤 다음해 5월에 부동산 사무실을 접고 중남미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 친구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야, 우리 건물이 팔렸어. 우리보고 나가래’ 하고요. 그래서 (심드렁하게) ‘그래? 어쩌냐?’ 했지요. 속으론 ‘에이, 나더러 뭐 어쩌라고?’ 생각했지만 차마 그렇게는 말 못하고.”

-그래도 중개인으로서 마음에 걸렸겠군요.

“여행 마치고 돌아와 보니, 사실 이게 부동산중개인으로서 중개 사고인 거잖아요? 권리금도 2억7500만원이나 주고 들어간 건데…. 일종의 애프터서비스 차원에서 그 친구를 만나서 상의를 하기 시작했죠.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하소연할 데가 별로 없었어요. 곱창집 이름이 ‘우장창창’이었는데 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어 뭔가 주체를 만들려고 하는데, ‘우장창창과 함께하는 사람들’ 그렇게 이름을 짓자니 좀 없어 보이고(웃음), 그때 정한 이름이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이었죠. 줄여서 맘상모. ‘맘 상한 사람들의 모임’ 같기도 하고 어감이 좋잖아요.”

2013년 5월 맘상모는 그렇게 출범했다. 처음엔 이름뿐인 단체였다. 새 건물주는 마침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이었는데, 그가 트위터에 이 사연을 올리자 60만 팔로어가 맘상모에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연예인한테 돈 뜯어내려는” 파렴치범이 되었다. 반박을 해야겠다 싶어서 트위터에 맘상모 계정을 만들었지만 팔로어는 달랑 6명뿐. 그러나 60만 대 6명의 기괴한 대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갑자기 봇물 터지듯 사람들이 몰려왔다. 비슷한 일을 겪은 많은 상인들이 밤낮없이 전화를 하고 가게로 찾아왔다. 회원들의 다양한 사례가 모이면서 상가임대차법의 독소조항들을 어떻게 개정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의제와 요구사항이 하나하나 쌓여갔다. 미진하나마 2013년과 올해 5월 이뤄진 두차례의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전 재산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거나 그럴 위기에 처한 전국 임대차 상인들의 피 끓는 싸움의 성과물이다.

-두차례 개정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건 뭡니까?

“2013년 개정에서는,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 규모에 상관없이 5년간 계약 갱신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바뀌었어요. 이전까지는 환산보증금 3억원까지만 5년 갱신권을 인정해줬거든요. 말로는 영세상인을 우선 보호한다고 하면서, 월세 많이 내는 상인은 보호 대상에서 배제해서 임대료 많이 받는 부자 임대인한테 특혜를 주는 방식이었죠. 2015년 개정에서는 주인(임대인)이 바뀌어도 기존 계약의 연장선에서 5년 갱신 요구가 가능하도록 바뀌었어요. 그리고 권리금이라는 걸 임차상인의 재산이라고 인정하고 이걸 건물주가 맘대로 빼앗지 못하도록 한 것이 의미있는 성과지요.”

-아직 부족한 점, 더 보완해야 할 사항은 뭐예요?

“여전히 임차상인은 5년짜리 비정규직 인생이에요. 5년 이상은 보호해주지 않으니까. 우리도 외국처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약을 갱신하는 걸 원칙으로 삼아야 해요. 그리고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보장한다고 해놓고 예외가 너무 많은 것도 문제지요. 재건축 때는 안 된다. 백화점 같은 대규모 점포에선 안 된다….”

-백화점에 세를 얻어 입주한 임차인은 권리금을 회수할 권리가 없다고요? 왜요?

“글쎄, 백화점업계 쪽의 엄청난 로비가 있었던 것 같아요….”

-맘상모도 의원들 직접 만나서 설명해 봤나요?

“그럼요. 많이 만났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얘기하죠. 토론회 열어서 맘상모 회원들이 사례 발표를 하다 보면 진짜 다, 다 우세요. 막 눈물이 나요. 이게 우리 600만 상인들 생사가 달린 문제인데 법을 정하는 사람들 자체가 기본적으로 임대인 쪽에 가까우니까.”

대한민국 갑들의 최종 목적지는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고액연봉자든, 연예인이든, 운동선수든, 정치인이든 그들 삶의 성과는 어디에 몇 층짜리 건물을 소유하느냐로 평가된다. 대기업도 대학도 비싼 땅에 높은 건물을 소유하고 임대하는 것으로 자산을 불려간다. 대한민국 지주(地主)의 특권은 완강하고, 진입장벽은 갈수록 높아진다.

-얼마 전 인터넷에 회자됐던 그림표가 있어요. 이원석의 <공부란 무엇인가>란 책 말미에 실린 표라고 하는데, 학력과 전공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모든 을들의 종착지는 결국은 치킨집(영세자영업)이라는 거였어요. 그외에 아사(餓死)나 과로사의 옵션도 있지만.

“그런 게 있었어요? 하하, 근데 거기 추가돼야 할 게 있어요. 치킨집에서 화살표 긋고 (1)장사가 안된다→폐업 (2)장사가 잘된다→나가라!”

우리나라 전체 노동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의 두배에 이른다. 자영업자는 직장인보다 소득은 적으면서 대출은 3배나 높다. 자영업자의 3년 이내 폐업률은 46.9%(케이비금융경영연구소 2012년 조사)로, 창업한 지 3년 안에 두명 중 한명이 망한다는 얘기다. 서울시 임차상인들의 평균 영업기간은 1.7년. 장사가 잘돼서 상권이 커지면 임대료가 뛰어 쫓겨나고, 장사가 안되면 망해서 쫓겨난다. 실직한 가장은 빚을 얻어 치킨을 튀기고 취업 못한 자녀는 치킨을 배달한다. 갑과 을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영세한 치킨집끼리 좁은 골목 안에서 눈물겨운 경쟁으로 자기 살을 깎아먹는 세상이다.

임영희를 만든 시간들
임영희를 만든 시간들
골목사장 지킴이 양성 프로젝트

-고전적인 좌파이론에서 자영업자는 ‘프티 부르주아’로 규정됩니다. 각자 생업에 바쁘고 고달픈데, 지리적으로도 떨어져 있고 직종도 다양한 영세상인들이 개별적 이해관계를 넘어서서 횡적인 연대를 이루는 게 가능한가요?

“가능…하더라구요. 해보니까.”

-그래요?

“저희 안에서도 이런 게 가능할지 고민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상인운동? 상인이 무슨 운동이야? 다들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고 하지.’ 이렇게 얘기하는 분들도 많은 거 알고요. 물론 맘상모를 찾는 분 가운데 ‘내가 얼마를 내면 날 지켜줄래?’ 하는 분들도 없는 건 아니에요. 근데… 이런 분들이 변하세요. ‘이게 나만 겪는 일이 아니고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라는 걸 회원들끼리 만나면서 깨닫는 거지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힘을 모으니까 해결이 되는구나, 세상은 똑똑한 사람 한둘이 바꾸는 게 아니고 당사자들이 모여서 조직하고 투쟁하면서 변하는 거구나!’ 그걸 알게 돼요. 이제는 감히 ‘임차상인운동’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단계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오늘 여기 집회하러 오신 분들도 다 자기 코가 석자인 분들이잖아요. 근데 서로 먹을 거 챙겨주고 등 두드려주시는 폼이, 도시 상인들이라기보다는 농촌의 촌락공동체같이 느껴졌어요.

“쫓겨나본 사람들끼리의 공감대가 정말 엄청난 것 같아요. 저도 부동산을 하면서 옆에서 지켜본 거지, 직접 쫓겨나본 건 아니잖아요. 열심히 장사하다가 쫓겨나야 할 때 겪는 말 못할 억울함, 비참함, 눈물, 이런 것들이 주는 공감대가 정말 진한 거죠. 친자매, 친구 이상으로 서로 많이 의지하고 위안을 삼으세요. 어디서 뭐(집회나 시위) 한다 그러면, 가게 문 닫고 달려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예전에 80~90년대 철거민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임대아파트 입주권 받은 뒤에는 뿔뿔이 흩어지고 공동체로서는 더이상 존속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자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면….

“떠나지 않냐고요?”

-아닌가요?

“저는 아니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맘상모가 2년밖에 안 됐으니 단언하긴 어렵겠지만. 지금 저희 온라인카페 회원이 1500명 정도 되고 그중에 회비를 내는 회원이 250여명 되는데 이분들이 다 지금 문제가 있어서 싸우는 분들은 아니에요. 맘상모의 활동에 의미를 두고 함께하는 거죠. (옆에 있는 수원 만두집 사장을 가리키며) 저 사장님도 가게 문제가 해결되었거든요. 근데 더 열심히 다니세요. 그동안은 수원에서 서울까지 다니셨는데 요즘 안양에 (싸움) 현장이 생겼어요. 가까운 데니까 맨날 가세요.(웃음)”

맘상모에서는 앞으로 ‘골목사장 지킴이 양성 프로젝트’를 실시할 계획이다. 맘상모에서 직접 부딪히며 체험한 경험과 다양한 사례를 바탕으로 같은 지역의 임차상인이 곤란에 빠졌을 때 얘기를 들어주고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자원봉사자 회원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맘상모 회원들의 직종은 주로 음식점인가요?

“요식업이 많고요, 카페, 옷가게, 고시텔, 슈퍼, 편의점, 요즘엔 병원도 있어요. 한의사가 임차인인데 임대인이 치과의사래요.”

최근 목격한 가장 행복한 설전

-회원들 업종이 다양해서 어딜 가든 모임 하긴 좋으시겠어요.(웃음)

“아이구, 그 말씀 잘하셨어요! 여기 사장님들도 계시니까 한 말씀 드릴게요. 회원분들 가게를 가면 자꾸 뭘 먹으라고 주세요. 회원들끼리 그러시는 건 상관없는데 우리 같은 활동가는 회비로 급여 받는 사람인데, 절박한 분들이 마지막에 붙잡는 지푸라기잖아요. 그런 분들한테 밥까지 얻어먹는 게 불편하다고, 아까 우리 활동가도 식사 때 슬그머니 빠졌어요.”

내가 마지막 질문을 잘못 던졌나 보다. 그때까지 옆 테이블에서 따로 이야기 나누던 맘상모 사장님들이 발끈해서 한마디씩 내뱉었다.

“아니, 다이어트한다고 하더니, 그래서 안 먹은 거야?”

“그럼 우리 집 왔는데 밥도 안 먹이나? 내가 이때껏, 없이 살아도 그렇게는 안 살았어!”

“정 그러면 내가 옆집 가서 밥 사주겠다니까. 우리 집에서 먹지 말고.”

이 기회에 단단히 못을 박으려는 듯 임영희 국장도 강경했다.

“그래도 안 돼요. 짜장면 두개 시키는데 탕수육을 주면 어떡해요?”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언성이 다시 높아졌다. 맘상모 총회까지 가도 해결되기 어려운 난제 같았다. 최근 목격한 가장 행복한 설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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