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온 편지 (노들야학 교사 출신 근정쌤) ; 네팔이야기입니다.

by 어깨꿈 posted Apr 3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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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해 팔월 팔일에 네팔에 도착했습니다.

네팔은 제 남편 커겐드라의 나라입니다.

커겐은 한국에서 이십 년을 산 사람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가방 하나면 가진 것을 모두 넣을 수 있습니다.

일이 있다면 그 가방 하나 들고 한국 이 곳 저 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던 지라 커겐은 저보다 한국 지리에 더 훤합니다.


그런데네팔에 오니 둘 다 어둡습니다.

처음 함께 네팔에 왔던 2009년에 커겐은 공항에서 집까지 걸어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걸어갈 수 없었습니다.

한 밤중에 도착한 탓도 있었지만 대낮에 왔다 해도 우리는 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없던 길이 생겼고 없던 집들이 들어차 그 예전커겐의 기억 속 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네팔이 변했다고는 하나제가 보기엔 예전 저 어릴 때 풍경이나 정경이 많은 곳입니다.

린이가 네팔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과 한국이 제겐 어려운 점도 있었기에

저는 미련없는 얼굴로 한국을 떠나왔던 것 같습니다.

 

오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일하는 굿핸즈 네팔은 한국의 지구촌공생회에서 운영하는 네팔지부인 셈입니다.

2008년에 시작해 지금은 룸비니 지역에 초등학교 네 개다딩지역 초등학교 1여기 보우더에 공생청소년센터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보우더에 있는 공생청소년센터에서 네팔 직원 13한국봉사단원 2명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전체 사업비는 지구촌공생회에서 보내옵니다.

매달 사업비가 입금되면 그걸 찾아 일들을 진행하고 돈을 어디에 어떻게 썼는지 보고하는 것이

저의 주된 일입니다.

청소기가 필요하면 청소기의 견적을 뽑아 비교해서 보고서를 올립니다.

그러면 서울에서 된다, 안된다 이야기가 나오고 된다 하면 살 수 있고 안된다 하면 다른 것을 더 살펴보아야 합니다.

 

센터에는 매일매일 한국어 교실에 100명, 컴퓨터 교실 64명의 학생들이 옵니다.

재봉교실엔 산수시험까지 보며 합격한 동네 여성들이 매일 오전 오후 15명씩 와서 배우고 갑니다.

공부방엔 근처 공립학교 아이들 120명이 아침이나 오후에 와 방과후 공부를 합니다.

도서관엔 아이들과 어른들 책 3천 여권이 있고 대출카드를 만든 사람들이 책을 빌려가곤 합니다.

재봉공동작업장에서는 요사이 재봉사 여덟 명이 룸비니 학교에 보낼 아이들 가방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룸비니 학교에 있는 아이들은 책가방 없이 손이나 푸대에 책을 넣어 다닙니다.

재봉공동작업장을 총괄하는 메하 선생님은 한 달 전에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의 남편 로켄드라 씨는 우리 센터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해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에 합격해 한국에 일하러 간 지 이제 세 달 정도 되었습니다.

아직 딸 울밀싸 손을 잡아보지 못한 아버지 로켄드라 씨는 김포 어느 공장에서 하루 열시간 씩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달에 재봉교실 수강생 가정방문을 갔더랬습니다.

방 한 칸에 다섯 식구가 같이 사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를 테면 대부분이 농촌 산촌 고향을 떠나 서울 카트만두에 벌어 먹고 살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방 한 칸 월세가 제법 비싸 남편들은 또 외국으로 일하러 가야 되고 남은 아내와 아이들혹은 함께 사는 동생들은 그렇게들 한 방에 모여 지냅니다.

세간살이참 단순합니다.

장식없는 침대가스렌지달밧을 먹는 쟁반찌아를 마시는 컵양념통 몇 개손님 대접용 컵 몇 개벽에 걸린 가족 사진이불 몇 채와 베개가 거의 전부입니다.

세간 살이 갯수를 세는 데는 채 오분도 안 걸릴 거 같습니다.

 

가정방문 중, 두 집에선 우리에게 주려던 찌아 잔이 갑자기 깨어지기도 했습니다.

평소 쓰던 컵에 찌아를 주었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새 컵에  찌아를 주려다 그만 뜨거운 찌아에 새 컵이 깨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아침 10시에 찌아를 끓여놓고 오후 3시까지 기다려 보온병에 넣어둔 찌아가 미지근해지기도 했고요.

10시부터 가정 방문이 시작된다는 말을, 10시에 자기집에 우리가 온다고 알았들었던 모양입니다.

 

 

굿핸즈 네팔의 올해 가장 특이한 점은 네팔력에 따라 센터를 운영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간 굿핸즈네팔을 운영하면서 네팔력이 따로 있는 이 곳에서 교육프로그램 운영을 서양력으로 하다보니 맞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네팔의 새해는 사월에 시작되고어린이 날은 9월에 있습니다.

센터 주변의 공립학교 세 곳에서 오는 120여명의 7,8학년 공부방 아이들은 각 학교에서 4월 신년 전에 졸업식을 맞이합니다.

우리 센터에서도 공부방 졸업식을 엊그제 신년 전인 4월 11일에 하였습니다.

 

재봉교실은 기초교육과 심화교육을 각각 6개월씩 해 1년의 교육과정을 마치게 됩니다.

올해는 반을 하나 더 늘려 모두 30명의 여성들이 재봉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네팔에서는 여성들의 문맹율이 특히 높은데, 재봉교육 지원자 중 산수가 되지 않아 안타깝게도 기회를 놓치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지역의 문맹교육센터에 연계를 해다음 해에 한 번 더 도전해볼 것을 권합니다.

재봉교육에서 1년 교육을 끝내면 다시 재봉공동작업장으로 갈 기회가 있습니다.

재봉공동작업장은 인근 학교 교복이나 굿핸즈네팔이 지원하고 있는 룸비니 학교 가방 등을 만드는 곳입니다.

학교는 저렴하고 질 좋은 교복을 제공받고 공동작업장의 재봉사는 실력을 더 키울 기회를 얻게 되는 셈입니다.

 

네팔에는 여전히 코리언 드림이 있습니다.

그 꿈을 실현하는 네팔 사람들이 대부분 선호하는 것이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에 합격해 한국에 일하러 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한국어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우리 센터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은 학생 중 지금까지 25명 정도 한국에 가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 한국에 간 지 세 달밖에 안 된 그 25명 중 한 명이  한 쪽 팔이 잘렸다는 소식을 우리는 모두 들었습니다.

올해도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1백 명의 학생이 매일 우리 센터에 옵니다

올해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은 6월 13일과 14일에 있습니다.

어제부터 지원서 접수가 시작됐고 우리 센터에서 일하는 교사 세 명도 그 시험에 지원서를 낼 것이라고 했습니다.

작년에 3천명 모집에  6만5천명이 지원한 고용허가제 한국어 시험에 올해는 과연 몇 명이나 지원할지요?


한국어 교실과 마찬가지로 네팔 젊은이들이에게 큰 관심을 받는 것이 바로 컴퓨터입니다.

센터 주변엔 월세로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나마 이 지역은 방 한 칸 세를 주는 추세입니다.

한 칸 방에 사는 집들에 컴퓨터가 있을 리 없고 공립학교에서는 책으로만 컴퓨터를 배웁니다.

그러다 우리 센터 컴퓨터 교실에서 배울 기회를 가지게 된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연습하고 싶어합니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컴퓨터 교사는 학생들이 원하면 토요일에도 나와 실습을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래서 컴퓨터 수업은 항상 시간을 넘겨 끝나기가 일쑤입니다.

컴퓨터 수업을 수료하고 나면 수료생들에게 컴퓨터교실 보조강사로 일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지원서를 나눠줍니다.

그러면 그 중에서 4명을 뽑아 각 수업에 들어가 수업보조를 하며 컴퓨터를 좀 더 익힐 시간을 가집니다.

보조 강사까지 마친 학생 중에는 근처 학교에 컴퓨터 교사로 취직을 하기도 합니다.


도서관에는 3천여권의 책이 있어 학생들과 주민들이 책을 빌려가기도 합니다.

한국처럼 대문 활짝 열어놓고 운영할 수 있는 네팔 상황이 아니기에 주로 프로그램 수강생들과 수료생들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도서관 이용자들도 늘고 있어 우리는 올해 새 책을 좀 더 갖추고 싶습니다.

 

도서관은 주로 공부방 아이들의 독차지가 될 때가 있습니다.

조금씩 도서관 이용 방법을 익히고 배우며 아이들은 공부와 놀이를 함께 합니다까롬볼 놀이도 즐기고 기타도 둥기둥기 칩니다.

 


저는 사실 교육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음...무엇을 애써 바꾸려 하거나 애써 가르치려기보다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의 어떤 모습이 보기 좋으면 그걸 따라하고 싶을 테고 그걸 따라하다 보면 몸에 베게 되고....


근데, 저는 지금까지 사무실 책상에만 앉아서 돈 계산하고 보고서 쓰느라 정작 하루에 자그마치 삼백명 씩이나 드나드는 사람들을 볼 기회는 정말 적었답니다.


아, 그래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사무실을  떠나기로!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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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방 아시스 선생님이 영어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어동화책을 네팔어로 바꿔 읽어주고 있다.

스물 세살 청년, 아시스도 한국어 시험에 합격한 뒤, 한국행을 기다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아시는 네팔도 참 좋아하고 아이들도 참 좋아하고 공부방 선생 일도 좋아하는데, 집이 너무 가난해 한국에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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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하는 네팔 아이들. 공부방 아이들이 춤경연을 벌였다. 남자아이들은 부끄러웠는지 아무도 없었고

모두 여자아이들만 나와 춤을 추었다. 동네 꼬맹이들도 기웃거리는 작은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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