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야학 교사 우준이가 수업시간에 발표한 글이 너무 찡해서... 함께 읽어보려고요^^ (노들야학)
사
나는 왜 노들야학 실습생이 되었는가
“안녕하세요. 노들야학 실습생 정우준입니다.”
안녕하세요. 2015년 1학기 노들야학 실습생 정우준입니다. 이 인사를 받으신 분은 다양한 생각을 하실 것 같습니다. ‘무슨 실습을 한다는 거지?’, ‘너가 무슨 실습생이야, 야학 교사지’, 혹은 ‘실습생이라고 따로 하는게 있어?’ 이 모든 질문은 일리가 있는 지적들입니다.
다들 졸업한 줄 알고 있는 저는 여전히 대학을 다니고 있고, 사회복지학과 학생으로 재학 중입니다. 제 신분이 실습생인 까닭은 제가 사회복지학과 학생의 신분으로 노들야학에서 실습을 진행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존에 계속해서 야학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실습생이 된다고 뭐가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2008년 이후 잠깐의 휴직 기간을 제외하고는 노들야학의 교사로서 생활했습니다. 2015년에도 여전히 야학 교사인건 맞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보면 실습은 야학 교사로서의 맡았던 역할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습이라는 ‘의무’적인 활동을 계속해서 해왔던 일로 쉽사리 대체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닙니다. 아마 이 이야기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는 것이 이번 실습에 제일 큰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왜 노들야학의 실습생이 되었을까요?’
지금까지 진행한 실습의 중간 평가는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생각한 것을 풀어놓는 것으로 진행해 보려 합니다. 노들야학 교사 정우준과 사회복지학과 학생 정우준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노들야학 교사 정우준
지금 4학년인 저는 곧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지을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대학 입시 이후 가장 큰 결단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꺼낸 까닭은 노들 야학을 처음 만난 것이 수능을 마치고, 무엇을 공부할까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있었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갓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이었던 저는 당시 아차산에 있는 정립회관에 위치하고 있었던 노들야학에 신임교사가 되었습니다. 집 근처라는 지리적 장점과 예전에 보았던 『버스를 타자』라는 동영상이 노들야학에 첫발을 디딜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처음에 별 생각이 없었던 노들야학에 저는 빠르게 매료되었고, 고3의 겨울과 대학교 1학년의 봄까지의 대부분의 시간을 노들야학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노들야학에서의 경험은 당시 진로를 고민 중이던 저에게 사회복지학과로 자연스럽게 이끌어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능과 입시 사이의 기간 동안 노들야학이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들야학에 처음 방문한 뒤 얼마 후에 노들야학은 정립회관에서 퇴거당하였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천막을 치고 수업을 진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곳에서 장애인, 이주노동자, 주변의 노숙인, 철거민,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분의 가족들까지. 자신이 직면하지 않은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주고자 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경험했던 익명의 도움들로부터 사회의 기초적인 가치이자 사회복지의 기본인 ‘연대’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연대의 감각이 저를 사회복지학과에 오게 한 것이죠.
그렇게 2007년 11월에 방문 이후 잠깐의 멈춤이 있었지만 계속해서 야학에서 교사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2007년 고등학교 시절의 마지막을 노들과 함께하고, 그로부터 앞으로의 전망이 생겨난 것처럼 2015년 대학교 시절의 마지막을 노들야학과 함께 함으로서 다가올 미래를 계획하고자 하는 것이 실습의 목표라고 하면 너무 억지스러운 것일까요?
사회복지학과 학생 정우준
그렇게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08학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생활을 시작했죠. 하지만 학교생활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본, 제가 느낀 사회복지와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들 간의 괴리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제가 노들야학에서 보았던 것은 자신의 존엄을 위해 당사자와 그 당사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 간의 연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굉장히 추상적인 것이었죠. 하지만 존엄과 연대를 위한 강한 실천들 속에서 존엄의 확보와 그 존엄을 위해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헌신하던 모습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이었습니다.
어렴풋한 이미지와 당시에 매우 인상 깊었던 몇몇의 장면들이 머릿속에 꽉 차있던 저에게 학교 수업은 너무나 지루했습니다. 나와 타인의 존엄과 권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같았지만 학과 수업은 사회복지가 아니라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한 공부같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노들야학에서는 당사자와 연대하는 사람들 간의 위계적이고 인위적인 구별을 느끼지 못했던 반면, 학교에서의 수업은 사회복지사라는 도움을 주는 사람과 당사자라는 도움 받는 사람이 너무나 분명하게 구별한 채로,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키워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원조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생각은 매우 주관적이고, 오류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사회복지현장실습 수업에서도 ‘사회복지의 가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가치라는 것이 매우 객관적인 용어인 정의, 연대 등으로 이야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업 때도 이야기한 바와 같이 내가 사회복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복지는 X이다’라고 정의해야지 만이 그것에 알맞은 행동과 그 행동을 실천하는 곳에서 헌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들야학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사회복지기관이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배운 사회복지, 제가 생각하는 사회복지는 그 곳에서의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사회와 싸우고, 그 싸움을 통해 더 성장하는 수많은 사람이 있는 곳. 그리고 그 싸움의 현장에서 직접적인 자신의 문제가 아님에도 함께 위로하고,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는 곳. 저는 이러한 곳이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고, 그 곳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당사자이건 당사자가 아니건 가장 훌륭한 사회복지 실천가라고 생각합니다.
1학년을 마치고 4년이라는 긴 휴학의 끝에 다시금 온 학교에서 저의 진로는 대학원 진학이라는 확고한 목표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큰 역량 속에 더 많은 실천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대학원은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인 것입니다. 하지만 4학년이 된 지금 수단보다 우선적으로 정의해야할 목적, 즉 사회복지가 무엇이며, 그것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명확하게 확정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사회복지는 이것이다’라고 이야기했지만 굉장히 추상적이고 모호하단 걸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수단이 목적을 우선해버리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원 진학 이전에 사회복지가 무엇이다라는 것을 조금 더 가시화하고 싶습니다. 사회복지란 말조차도 몰랐을 때, 사회복지의 가치를 체감하게 해주었던 곳에서 다시금 사회복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꼭 사회복지라는 단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사람들이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무엇이고, 살기가 좋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장소로서 노들야학이 가장 적합하단 것이 제 생각입니다.
노들야학 실습생 정우준
지금까지 거창하게 실습지를 노들야학으로 선택한 이유를 써내려왔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반성을 하는 것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한 것들을 잘하고 있냐? 라고 물었을 때 매우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들야학에서 했던 좋은 경험들 속에서 다시금 새로운 사유와 답변을 기대했던 것은 과거의 경험을 얻었을 때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과거의 제 모습을 알았던 사람에게도 현재의 제 모습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변명을 해보자면, 사실 지금보다 더 노력하지 않았던 과거를 갱신하기 위해서 실습을 하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07,8년의 저에게 노들야학은 삶의 중심이고, 그곳에서 모든 것들을 해내갔다면, 지금의 저에겐 너무나 다양한 삶의 공간들이 생겨난 것 같습니다. 과거와 다르게 학교도 열심히 다니고, 인문학 공부를 하러 수유너머N에도 오랜 시간을 보내고, 대학원 준비를 위해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들야학은 수업만 겨우 하고, 교사회의만 가는 정도지요. 아마 실습을 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수업만 겨우 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 지속된다면 앞서 말한 야학 교사 정우준과 사회복지학과 학생 정우준의 성장은 그리 크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인 장치로 조금 더 노력하고 참여할 수 있는 실습생의 신분을 택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려 합니다. 수업만 겨우 했던 지난 학기에 비해서 참여가 조금은 늘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자랑해보려 합니다.
중간평가와 앞으로의 포부
거창한 포부와 변명을 끝으로 중간 평가를 마무리 지으면 안 될 것 같아 현재까지 느꼈던 바와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중간 평가 자리를 마치고자 합니다.
실습 지도교수인 김경미 교수님이 계속 물어본 바에 대한 답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맨 앞에 던졌던 실습을 통해 새롭게 배운 것이 무엇이 있느냐에 대한 물음입니다. 질문을 주셨던 자리에서도 말씀드렸고, 아마 이 글을 보시는 다른 분들도 느끼시겠지만 ‘새로운 것’을 배운 것은 없습니다. 다른 실습생 친구처럼 기획서를 쓰거나 프로그램을 실제로 진행하거나, 복지관 시스템을 익히는 활동들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 노들야학에서 사업 쓰는 모습을 보고, 여러 행사들을 준비하는 것이 앞서 말한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됩니다. 같이 실습을 하는 학생이 어린이날 행사를 준비하듯이 노들야학에서 후원주점을 준비하고, 대상자의 욕구조사를 실제로 하듯이 야학 학생과 만나고 욕구를 듣는 활동이 그간의 노들야학 활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점에서 자원봉사로는 경험하지 못하는 실습생의 경험을 저는 미리 해봤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복지관의 시스템과 공식화된 매뉴얼을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이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 저에게는 당장의 실천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고민들보다는 제가 사회복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립하는 것이 우선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전에 야학 교사들이 했던 한 질문이 생각납니다. ‘사회가 좋아져서 모든 장애인이 학교 교육을 받는다면 노들장애인야학은 사라져야할까? 그렇다면 노들야학이 없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닐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우리는 노들야학은 단순히 검정고시를 도와주는 곳이자 이용시설이 아니라 ‘장애’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실천기관이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 실습수업에서 강의와 기관 방문을 통해 사회복지에 대한 새로운 실천방법이나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 하고 있는 모습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교하긴 어렵지만 제가 실습을 진행하고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노들야학이 그 곳들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복지기관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실천하였던 종교기관과 개인들의 결사체로부터 생겨났습니다. 노들야학은 장애의 문제를 고민하며, 실천하고 있는 사회복지 최전방의 새로운 실천 기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곳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실습이라는 좀 더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기회 속에서 몇 년간 소홀했던 태도를 갱신하고 싶습니다. 그 갱신 속에서 과거에 이뤘던 열정들이 새롭게 다가오고, 그 새로움이 선택의 순간 앞에서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될 것이고 경험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