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4.09 22: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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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금
왕양명의 전습록 읽기
"떨리네요." "날씨가 좋죠?" "혹시 요즘 꽃 피어있는 것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오늘 꽃이 피고 지는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문성환 선생님의 <왕양명, 전습록 읽기>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자의 설명처럼 '왕양명'이라는 사상가는 교육장 내의 재소자들에게 뿐 만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왕양명이라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산 사상가일까? 그리고 그는 어떤 말을 했을까? 강의자는 그의 삶에서 어느 부분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왔을까? 강의자가 말하는 왕양명의 사상과 말은 이곳에서 강의를 듣는 나와 재소자분들에게 어떻게 다가오게 될까?' 이러한 궁금증으로 강의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린 시절 왕양명은 몇가지 특이한 내력을 갖고 있었다.
첫째, 양명은 14개월 만에 태어난다. 한마디로 뱃속에서부터 어머니 속을 썩혔다는 말이다. 그의 태몽은 할머니가 구름 속에서 신인이 북과 피리를 불면서 건네주는 갓난아기를 받는 꿈이었다.
둘째, 양명은 당시 사대부 명문의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셋째, 양명은 다섯 살이 되어서도 말을 못했는데 한 스님이 그의 첫 이름자 '운'자를 다른 자로 바꾸라 했고 이에 '인'으로 이름자를 바꾸자 양명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넷째, 어릴 적 양명은 '왜 공부해야 합니까?'라고 자신의 과외선생에게 질문했다. 이에 그의 과외선생은 '과거에 합격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하자 양명은 이를 거부하고 자신은 '성인이 되기 위해 공부하겠다.' 라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순응보다는 광자의 삶을 택했다. 사대부, 장자라는 이름들을 버리며 살았다. 여기서 '광자'라 함은 반항과는 다른 뜻이다. 이는 산자의 삶에서 매 순간 나에게 가장 떳떳한 선택을, 가장 좋은 삶으로의 선택을 의미한다. 즉, 그의 사상은 '양지로의 삶' 자기의 마음이 가장 편안하도록 하는 삶을 뜻했다. 여기서 마음의 편안함은 순응이나 적응을 뜻하지 않는다. 마음이 빛나고 밝은 상태 오히려 매순간 차이들의 반복을 의미했다. 양명의 이러한 광자의 삶은 그의 취미에도 잘 드러났다. 그의 취미는 임협, 기사, 불교, 도교, 그리고 문예창작이었다. 그는 앉아서 하는 공부보다 길거리에서 삶과 부대낌 속에서 공부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광자로서의 삶은 죽음까지 이어졌다. 그는 길 한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의 생애와 삶에 대해 한 시간 남짓 강의가 지날 무렵 교육장 안에는 나른한 점심의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졸고 계신 분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강의 다섯째 날이 되어서 강의록을 펼치시고 계신 분의 숫자가 늘기도 했고, 한두 분은 안경을 준비하고 오신 분도 생겼다.
'양명의 이야기를 듣고 난 탓이었을까? 일주일을 매일 같이 오가며 함께 한 시간들이 쌓인 탓일까?' 쉬는 시간 나는 준비한 떡과 유과를 건네 드리며 재소자들에게 말을 건넸다. 물론 '말을 걸기 위한 말'들도 뒤섞였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말이 쉽게 붙었다. 이에 재소자 분들도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아, 이거 유과 맛있네.' '뭐 이런 걸 사옵니까. 선생님.' 나와 함께 간식을 나눠주시던 인상파 한 분은 말했다. '이거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나눠주니까 무슨 배식 같아서 기분이 좋진 않네.' 그리고 우리는 다시금 '양명이야기'를 들으러 자리에 앉았다.
양명의 '치양지'로의 사상은 위기와 고난을 먹고 자랐다. 30대에 왕양명은 자신의 일생에서 극과 극을 오간다. 당시 중국의 황제들은 자신들의 왕권에 대한 경계대상으로 사대부들을 보았다. 한편 무종 때 양명은 그의 특유의 열정과 의리로 부당한 권력인 환관 유근에 대해 맞선다. 이에 그는 혹독한 매질과 함께 유배지로 보내진다. 37세 용장이라는 유배지에서 양명은 새로운 집이 아닌 굴속에 기거함은 물론 유근이 보내는 자객의 위험까지를 안고 지냈다. 이러한 혹독한 상황과 불안 속에서 양명은 격물의 이치를 깨닫는다. 37세 인생의 바닥을 딛고 올라선 그의 삶이 그의 사상으로 이어졌다.
'양명은 사물에 이르는 것은 '내 마음' 을 '바로잡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라고 강의자는 강의를 이었다. 그는 죽는 순간 자신의 제자가 그에게 무슨 말씀을 남기겠냐는 물음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마음이 빛나고 밝은 데, 다시 무슨 말을 더하겠느냐?'
나름의 해석으로 풀어보면 '매 순간에 나는 내 마음에 거리낌 없이 모든 것을 내놓거늘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양명에게 '죽음'이라는 말로 대신 되는 '삶' 이외의 '삶'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문득 나는 내 옆에 앉아있는 '방짱 재소자'를 보았다. 아니, 나와 오일 째 만나고 있는 이곳 생활에 빠삭한 민첩하고 카리스마는 넘치며 동작에는 절도가 있는 하지만 웃을 때는 어쩔 수 없는 순박함이 드러나기도 하는 한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 분은 강의와는 상관없는 곳에 해당하는 부분을 펴놓고 있었다. 나는 내 마음을 다해 말했다.
'저기 형, 지금 그 페이지 아니예요.'
그 분은 웃으며, '순임금 참 재밌는 사람이네.' 하고 혼잣말로 말했다.
'마음이 닿으면 통한다'
문성환 선생님의 양명의 강의는 무거웠던 내 마음의 추를 내려놓게 했듯이
재소자들의 마음에도 닿은 듯했다. 몇몇 분들은 진지한 눈으로 필기까지 해가며 강의자가 말하는 양명의 삶과 문장을 자신들의 노트에 적고 있었다.
어떠한 생각이 우리에게 전해졌고 그들에 노트엔 무엇이 쓰였을까?
옆의 방장 형은 문성환 선생님이 말하신 양명의 '효'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어떠한 긍정을 혹은 물음을 했을까?
물론 자세히 그 내역을 알 순 없다.
다만 나에겐 '스스로의 마음'을 아는 것은 무엇인지?
'마음'은 '생각'과는 어떻게 다를까? '타자와 마음'
'믿음과 마음의 차이는 뭘까?' 하는 이러한 물음들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