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서 활동하는 노들장애인야학교사 최근정 선생님께 지난 5월15일날 은행계좌 모금액을 송금하였습니다.
총금액은 1,245,000원입니다.
모금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병조, 김은희(피콕), 김진수, 김선아, 박준호, 네팔지진후원, 노들장애인야학 딩동이네, 문애린, 박경석, 박하순, 전장야협, 이보람(피콕), 이수지(피콕), 장애여성공감,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태애경, 한혜선, 허신행, 홍은전(구교현))
(네팔에서 근정선생님으로 부터 온 편지입니다. 편지를 보낸 날짜는 5월12일입니다. )
『나의 미카엘』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문장이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 때 '나'는 아파트에서 아래 정원을 내려다 보고 있었을 겁니다.
새해 아침이었는데, '내'가 정원을 내려다 봤을 때, 그 순간 나무에 걸려있던 양은 냄비가 파지직 두 조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 말합니다.
나무에 걸려 있던 양은 냄비가 부서진 것은 순간이지만 그 순간이 이루어지기까지 끊임없는 준비가 있었을 거라고.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고 햇빛이 내리 쬐었고 밤이었다가 날이 밝아 아침이 되고 다시 저녁이 되는 그 시간을 지나
양은 냄비는 그 순간, 파지직 부서졌다고.
어제는 우리 센터 사람들과 함께 다딩에 갔습니다.
쌀 만 킬로, 이십오킬로짜리 사백포를 싣고 구십킬로 거리에 있는 다딩을 가는데 무려 세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한국 속도와 한국의 도로로 치자면 한시간이면 갈 거리입니다.
콧속과 귓속에 흙먼지가 들어가는 가파른 언덕을 돌아 닿은 다딩.
높고 큰 산 안에 돌과 흙과 물로 지은 집이 거기 있었습니다.
다딩으로 가는 길
다딩에서 돌아오는 길
무너진 집들을 보았습니다.
더 참담한 건, 무너지려는 집들이었습니다
기우뚱, 기대듯 쓰러져 있는 건물을 본 뒤론 내내 모든 건물이 왼쪽으로 기울어보였어요
기우뚱, 쓰러질 듯 기대어 있는 그 건물을 보는 마음이 참으로 참담했습니다.
순간, 양은 냄비가 파지직 소리를 내며 두 조각 났지요
순간
순간
순간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가볍게 나는 이 말을 썼던가요!
여러 사람들이 걱정하여 안부를 묻는 글을 보냈는데 지난 한 주는 너무 참담하여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실 접근 자체가 공포스럽고 식은땀이 났고 계단이 자꾸 울렁거리고 바닥이 스펀지처럼 푹푹 꺼지는 느낌에
까무러쳐 하루종일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무 근심없이 린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그 마음
썬토스가 태워주는 오토바이에 앉아 버스 뒤꽁무니에 적힌 재미있는 문장이나 보던 그 아침
아, 어쩜 이리 많을까, 지리산 정상보다 더 해 하면서 바라보았던 별들
우리집 일층에다 동네 녀석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자며 커겐과 라진과 함께 즐거워했던 밤
신문을 읽을 수는 없지만 소문을 듣습니다
참 온순하고 따듯한 네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다시 합니다
다투고 헐뜯는 이야기가 잘 없습니다 이 난리 중에도 사람들은 서로 어루만지고 달랩니다
간혹 길에서 오토바이와 차가 사람과 오토바이가 부딪히면 그 전보다 예민해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도 없으면 어떻게 견디겠나요
도와주십사하고 메일을 보내고 그 글을 한겨레21에도 실었습니다
많은 분들 덕분에 제 통장에 오늘 이천만원이 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 커겐 라진 프라바 버럿 써힐렌드라가 모여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루 한 끼를 먹고 돌을 깨거나 농사를 지어 사는 돌라카 지역 이천백집에 쌀 십킬로 달(콩) 이킬로 소금 일킬로 식용유 한 봉지를
나누기로 했습니다 한 집당 우리 돈으로 칠천 오백원 정도입니다
네다섯 식구 일주일도 안 돼 끝날 쌀 십킬로를 나누는데도 천오백만원이 넘게 들어갑니다
시아버지, 커겐, 라진, 프라바, 버럿이 모레 돌라카로 가려고 합니다
운송비를 아끼기 위해 물품은 된다면 돌라카 근처에서 구입하기로 했고 사람들도 최소 인원으로 꾸렸습니다
정 그 곳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카트만두에서 싣고 가기로 했고요
커겐이나 저 둘 중에 한 사람은 린이를 돌봐야해서 힘센 커겐이 가기로 했습니다
여진도 있고 어제 오늘 천둥도 치고 센 비도 내립니다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있습니다
재건,
다시 일어선다,
다시 일어서야 하는 네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