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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의 장애학 연구노트-10]
“장애인에게 들어가는 국가 자원을 회수하라!”




20세기로의 전환기에 사회적 다윈주의는 유럽 전역에 걸쳐 인기를 끌었으며 독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저명한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1899년에 출간해 베스트셀러가 된 『우주의 수수께끼(The Riddle of the Universe)』에서 “어떤 생명이 전혀 쓸모가 없게 된 경우까지도 모든 상황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연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누가 살아야 하고 누가 죽어야만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원단의 선임을 권고하였지요.


1905년에 알프레트 플뢰츠(Alfred Ploetz)의 주도하에 설립된 독일인종위생학회(German Society for Race Hygiene) 또한 모든 정당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습니다. 예컨대 사회민주당의 지도자인 칼 카우츠키(Karl Kautsky)는 낙태의 결정을 개별 여성들에게 맡겨놓는 것에 반대했으며, 같은 사회민주당 소속으로 베를린대학교 사회위생학 교수였던 알프레트 그로트잔(Alfred Grotjahn)은 부적자의 단종수술을 옹호하였습니다. 그렇긴 해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할 때까지 인종위생학자들의 활동은 주로 포지티브 우생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패전의 경험은 독일 내에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였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산업의 파괴, 베르사유 조약(Treaty of Versailles) 이후 부과된 엄청난 배상금, 뒤이어 찾아온 전 세계적인 대공황은 독일 전역에 걸쳐 사회적 불안정과 고통을 야기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독일의 전문직 중산계급은 우경화되거나 극단적 민족주의에 빠져들었고, 비생산적인 인구가 가져오는 경제적 부담에 관한 주장은 점점 더 영향력을 획득하게 됩니다.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직후인 1920년에 법률가인 칼 빈딩(Karl Binding)과 정신과 의사인 알프레트 호헤(Alfred Hoche)는 『살 가치가 없는 생명의 말살에 대한 허용(The Permission to Destroy Life Unworthy of Lif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던 바가 있습니다. 이 책은 장애인들을 ‘인간 밸러스트(human ballast)’1)로 묘사하면서 그들이 가져오는 경제적 부담을 강조하고, ‘자비로운 살해(mercy killing)’를 그 해결책으로 제시했습니다.


빈딩과 호헤의 입장은 출간 당시까지만 해도 대중적이지 않은 다소 극단적인 주장에 속했지만,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의견이 수용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1933년 나치 정권의 등장 역시 패전에 뒤이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분위기를 배경으로 했다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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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국가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음을 강조하는 나치의 선전물 중 하나. 선천성 질환이나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소요되는 일일 5.5마르크의 비용이면 건강한 일가족이 하루를 살아갈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14349681111262.jpg

▲유전성 장애를 지닌 사람 한 명이 60세까지 생존하는데 50,000마르크가 필요하며, 이러한 비용이 독일 노동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을 묘사하고 있는 포스터.




나치 체제에서 이루어진 초기의 조치들 중 하나는 장애인과 환자들을 위한 시설로부터 자원을 회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우생학에 대한 정당화는 흔히 자원을 절약해야할 필요성에 의존했고, 장애인을 돌보는 것은 돈 낭비로 간주되었지요. 이로 인해 어떤 정신장애인 시설에서는 의사 한 명당 무려 500명에 이르는 장애인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그 비율이 1:160 정도였는데 말이지요.


그리고 이처럼 장애인에게 들어가는 비용의 부담과 그 무익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나치의 집권 후 학교에서 사용되었던 한 수학 교과서에는 아래와 같은 문제들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문제 94)
독일제국의 한 지역에 4,400명의 정신질환자가 국립병원에 수용되어 있고, 4,500명이 국가의 원조를 받고 있으며, 1,600명은 지방병원에, 200명은 간질 환자를 위한 시설에, 그리고 1,500명은 복지시설에 있다. 그리고 국가는 이러한 시설과 환자들에게 최소한 매년 천만 마르크를 지불하고 있다.

Ⅰ. 국가가 1년에 환자 1인당 부담하고 있는 평균 비용은 얼마인가?


Ⅱ. Ⅰ번 문제로부터 계산된 결과를 사용하여, 다음의 각 경우에 국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얼마인지 구하여라.
 A. 868명의 환자가 10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면?
 B. 260명의 환자가 20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면?
 C. 112명의 환자가 25년 이상 거주하고 있다면?

 

문제 95)
정신병원 하나를 짓는데 6백만 마르크가 든다. 정신병원을 짓는데 들어간 비용으로 한 채 당 1만 5천 마르크가 소요되는 주택은 몇 채나 지을 수 있는가?2)



또한 안과 의사인 헬무트 웅거(Helmut Unger)는 안락사를 지지하는 내용을 담은 『사명과 신념(Sendung and Gewissen)』이라는 소설을 썼는데, 이를 각색하여 제작한 영화 「나는 고발한다(I Accuse)」는 전국적으로 상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3)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흐름 속에서 ‘쓸모없는 식충이(useless eater)’, ‘살 가치가 없는 생명’, ‘인간 밸러스트’와 같이 장애인을 격하하는 표현은 나치의 선전뿐만 아니라 각종 대중매체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용어가 되어갔습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각주 1) 밸러스트는 안전하게 항해를 하기 위하여 선체를 물속에 더 잠기게 할 목적으로 화물 이외에 싣는 중량물을 말한다. 돌이나 모래가 이용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밸러스트 탱크(ballast tank)에 해수를 채운다. 즉 여기서 밸러스트는 언제든 버려져도 상관없는 무익한 존재를 비유적으로 지칭한다고 할 수 있다.

 

각주 2) Robert Proctor, Racial Hygiene: Medicine Under the Nazis,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8, pp. 183~184.

 

각주 3) 2년마다 베니스에서 개최되어 온 대규모의 국제 미술 전람회인데, 1932년에 처음 영화제를 부속 행사로 함께 진행하였다. 이후 1935년부터는 영화제가 독립되면서 오늘날의 베니스국제영화제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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