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by 뉴미 posted Dec 21, 201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세상 읽기] 서울로 7017 위에서 / 홍은전

홍은전

작가,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어느 날 나는 서울역이 내려다보이는 ‘서울로 7017’ 위에 서 있었다. 노후화된 서울역 고가를 공원으로 탈바꿈하면서 서울시는 5명의 ‘우수한’ 홈리스를 정원사로 취업시켰노라 광고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원에서 눕거나 구걸하는 행위를 금하고, 이 ‘우수하지 못한’ 홈리스들을 감시하는 청원경찰 16명을 두었다. 이런 이중성은 무척 서울스럽다. 나는 막 동자동 쪽방촌에서 나와 어안이 벙벙하던 참이었다. 가난한 그 동네가 서울역 근처인 것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근처일 줄은 또 몰랐다. 당연히 도시의 후미진 뒤편 어디쯤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골목을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서울역의 얼굴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것이었다.

 

‘동자동사랑방’과 ‘홈리스행동’이 만든 홈리스 생애 기록집 <생애조각을 모으다>를 읽었다. 죽은 사람들 18인에 대한 기록이었는데 고인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한 것이었다. 기록 작업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고인이 수년 동안 살았던 고시원의 총무는 고인에 대해 ‘정말로’ 아는 게 없었고, 제법 친했다던 지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 사람, 자기가 고아라고 했는데 죽고 난 뒤 보니까 가족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엄청난 것들이 태연하게 조합된 이런 이야기들. “그분이 한동안 안 보이다 나타났는데, 무료급식소 가던 길에 경찰 불심검문에 걸려서 한 달 동안 교도소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기록자들은 자신들이 모은 조각이 고인의 생애를 구성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며 자책했으나, 나는 생애의 조각조차 가난한 그것이 바로 가난의 생애인가 하고 생각했다. 젊은 시절 도로도 깔고 아파트도 지었던 사람들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를 잃었고, 일자리를 잃자 잠자리도 잃었다.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 없어 술에 의존한 채 거리와 쪽방, 수용시설 사이를 전전하는 그들에겐 죽음조차 일찍 닥쳐왔고, 가난한 가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면 위탁업체에 맡겨져 화장장으로 직행했다. 부고 없는 죽음. 어떤 이가 말했다. “친구라고 해봤자 절름발이에, 알코올 중독자이지만 우리의 추억이 그렇게 무시당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서울로 7017’ 위에서 서울역을 내려다보았다. 뒷덜미에 노을이 내려앉은 옛 서울역이 아름다웠다. 저곳은 최상근씨가 돌아가신 자리. 그는 늘 화단 옆에 앉아 있었다고 했다. 어느 아침, 광장의 물청소를 피해 지하철역 2번 출구 뒤쪽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그날 오후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되었다. 그가 죽고 난 후 그의 작은딸이 화단 한쪽에 술 한잔 부으며 울고 갔다 했다. 1997년 이맘때, 이제 막 서울에 도착한 나는 당시 대우빌딩이었던 서울스퀘어를 처음 보았다. 그것은 믿을 수 없이 거대해서 울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거리에 흔한 노숙인과 그들을 투명인간처럼 대하던 ‘서울 사람들’의 무심한 얼굴. 그 무심함조차 닮고 싶어 했던 20년 전 소녀가 떠오르자 문득 참을 수 없이 슬퍼졌다.

 

뒤를 돌면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촛불의 거리다.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와 1000명이 넘는 무연고자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이 거리에서, 집 없는 이들에게 주거비를 지원하는 데엔 고작 26억을 쓰면서 이들을 추방해 격리하는 수용시설에는 237억의 예산을 쓰는 이 현실에서, 촛불은 어디까지 왔나. 다음주, 밤이 가장 긴 동짓날을 맞아 거리에서 죽어간 홈리스를 위한 추모 행사가 열린다. 다시, 촛불 하나 들어야겠다. 연대와 후원을 바란다. 하나은행 389-910001-18304(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23022.html#csidxbdc0ca33c8e08d8af8f4241691c515a 

TAG •

  1. “30주년 맞은 노들, 한국 장애해방운동의 받침돌이죠”

    “30주년 맞은 노들, 한국 장애해방운동의 받침돌이죠” [짬] 노들장애인야학 김명학·천성호 교장 “유감스럽게도 없어요. 나를...
    Date2023.05.12 Reply0 Views398 file
    Read More
  2. [고병권의 묵묵] 죄 없는 시민은 죄가 없는가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입력 : 2022.03.04 03:00 수정 : 2022.03.04 03:02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50일 넘게 장애인들의 출근길 시위...
    Date2022.03.28 Reply0 Views846
    Read More
  3. [김명학의 활동일지] 2020년도 투쟁은 계속 됩니다.

    우리들의 투쟁을 통해 우리의 바람들을 하나 하나 쟁취해서, 좀더 살기 좋은 곳으로 함께 만들어 봅시다. 노들장애인야학 김명학. - 권익옹호 활동일...
    Date2020.09.22 Reply0 Views1148 file
    Read More
  4. [세상읽기] 꽃님씨의 복수

    홍은전 ㅣ 작가·인권기록활동가 갇힌 존재들에 대해 생각할 때면 언제나 꽃님씨가 떠오른다. 꽃님씨는 서른여덟에 장애인시설에 들어갔다 3년 ...
    Date2020.05.14 Reply0 Views676 file
    Read More
  5. 경향신문 [시선] 잠재적 가해자와 페미니스트

    내가 무척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 K. 그는 노들장애인야학에서 함께 활동하는 동료 교사이기도 하다. 언젠가 교사회의 뒤풀이 자리에서 사람들이 &ldqu...
    Date2020.04.23 Reply0 Views616 file
    Read More
  6. [고병권의 묵묵] 다시 최옥란을 기억하며

    [고병권의 묵묵]다시 최옥란을 기억하며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경향신문에서 보기 링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
    Date2020.03.31 Reply0 Views517 file
    Read More
  7.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 홍은전

    한겨레 [세상읽기] 어느 발달장애인의 생존기록 기사입력2019.08.05. 오후 6:40 최종수정2019.08.05. 오후 7:00 홍은전 작가·인권기록활동가 3...
    Date2019.08.12 Reply0 Views921 file
    Read More
  8.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만나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를 만나다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지향하는 연대 등록일 2016.11.15 12:04l최종 업데이트 2016.11.17 16:2...
    Date2019.01.11 Reply1 Views2535 file
    Read More
  9. [고병권의 묵묵] 열두 친구 이야기

    [고병권의 묵묵]열두 친구 이야기 고병권 |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경향신문 오피니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
    Date2018.12.06 Reply0 Views644 file
    Read More
  10. [한겨레] 장애인 시설 밖 생활, 녹록지 않지만 살 만해요

    ?자장애인 시설 밖 생활, 녹록지 않지만 살 만해요 장애인 시설 밖 생활, 녹록지 않지만 살 만해요 입력 2018.11.15 15:43 수정 2018.11.15 17:23 [한...
    Date2018.11.25 Reply0 Views649
    Read More
  11. [경향신문]“처벌 감수하며 불법 집회 여는 건, 무관심보단 욕먹는 게 낫기 때문”

    ? “처벌 감수하며 불법 집회 여는 건, 무관심보단 욕먹는 게 낫기 때문”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입력 : 2018.11.05 18:16:00...
    Date2018.11.25 Reply0 Views478
    Read More
  12. [경향신문 포토다큐] 느리지만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꿔온 노들야학 25년

    [경향신문 포토다큐] 느리지만 함께··· 세상을 조금씩 바꿔온 노들야학 25년 뇌병변장애를 가진 이영애씨(52)가 서울 동숭동 노...
    Date2018.11.25 Reply0 Views558
    Read More
  13. 국회 안에서 쇠사슬 목에 건 장애인들 "예산 확대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국회 안에서 쇠사슬 목에 건 장애인들 “예산 확대로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기습 시위&rs...
    Date2018.11.06 Reply0 Views419
    Read More
  14.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돈만 아는 저질 국가”에 날리는 5만원짜리 ‘똥침’ 등록 :2014-04-08 15:50수정 :2014-04-10 09:36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
    Date2018.08.15 Reply0 Views748
    Read More
  15. "리프트 대신 승강기"…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http://bit.ly/2Men1QE ​​​​​​​"리프트 대신 승강기"…장애인 이동권 보장 '지하철 시위' [JTBC] 입력 2018-08-14 21:39 수정 2018-08-1...
    Date2018.08.15 Reply0 Views650 file
    Read More
  16. 선심언니 이야기 - 경과보고

    [긴급 진정 기자회견] 우리 야학학생 선심언니, 살려주세요! 폭염속에 장애인 죽음으로 몰아넣는 복지부 활동지원24시간 보장거부 인권위 긴급진정 기...
    Date2018.08.06 Reply0 Views473 file
    Read More
  17. No Image

    mbc 뉴스투데이_마봉춘이 간다_노들야학 급식마당 행사 :) 소식입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214&aid=0000844748&sid1=001 [뉴스투데이]◀ 앵커 ▶ 보통 학교가 문 닫을...
    Date2018.06.08 Reply0 Views469
    Read More
  18.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구형에 대한 나의 항변

    박경석 노들장애인야학 교장 구형에 대한 나의 항변 [기고] 장애인 차별에 맞서온 박경석 교장 2년 6개월 구형에 반대하며   등록일 [ 2018년01월15일...
    Date2018.02.19 Reply0 Views893 file
    Read More
  19. 어차피 깨진 꿈

      홍은전( 작가·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집시법 위반으로 2년6개월 형을 구형받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최종 선고일이 모레로 ...
    Date2018.02.06 Reply0 Views560 file
    Read More
  20. 박경석이라는 계보

    김원영( 변호사·장애학연구자)   박경석이라는 계보   “물러서지 맙시다. 여기서 물러서면 또 수십년씩 집구석에 처박혀 살아야 합니다.”   노들장애...
    Date2018.02.06 Reply0 Views533 file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